(고뉴스=김성덕 기자) 며칠 전 중앙부처 공무원과 식사를 같이 했다. 이런저런 담소 중에 노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고급 공무원들은 노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고 공무원 조직이 많이 바뀌었죠. 부처 간에 업무 교류하는 시스템도 그렇고, 조직도 혁신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언론 대하는 태도만 해도 과거에는 문제가 생겨도 그냥 넘어갔잖아요. 이제는 당당하게 언론에 얘기도 하고…또 대통령이 권위적이지 않으니까 우리하고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것은 좋은 점이죠.”
“그런데 말이죠. 사람을 피곤하게 해요. 무슨 평가다 뭐다 해가지고 닦달하고, 그런 게 다른 정권에 비해 심하죠.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요 근래 인터넷에서는 ‘노무현 댓글달기 놀이’가 성행하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비판적인 기사 하단에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이 어김없이 붙는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노무현 때문이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노무현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는 것도 노무현 때문이고, 비가 적게 오는 것도 노무현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을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타도, 식당을 들어가도, 술자리에 가도, 사람 셋만 모이면 ‘노무현 때문 현상’은 쉽게 포착된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노무현 머피의 법칙’에 걸렸다.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자. 나와 같이 밥을 먹은 공무원은 노 대통령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니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게 아니냐는 평가를 했다. 여기에 ‘노무현 머피의 법칙’의 숨은 해답이 들어있다.
문제의 포인트는 노 대통령이 대단히 논리적이고 냉철한 사람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노무현의 눈물’로 대변되는 그의 감성이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표피적인 것일 뿐 그를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아니다. 그는 이성의 힘을 믿는 ‘이성주의자’다. 따라서 그는 체질적으로 ‘패거리 문화’, ‘형님 문화’를 싫어한다. 노무현은 그 흔한 계보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대통령 중에 유일한 인물이다.
이제 ‘노무현 머피의 법칙’ 퍼즐을 맞춰 가보자.
민주당 분당을 예로 들면 상식적으로 봤을 때 노 대통령은 가만히 있어도 될 일을 해서 괜히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민주당에 남아 있는 정적 몇 명만 몰아내면 될 일 아닌가. 그런데 그는 분당을 택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 후보라고 치켜세웠던 추미애와도 돌아섰음은 물론, 호남과의 결별의 단초가 됐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情)의 세계’가 아닌 ‘논리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온 지역감정 타파와 전국정당을 만드는 일은 ‘형님 문화’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는 이성과 논리로 이를 추진한 것이다.
대북송금 특검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논리의 세계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DJ정부가 돈을 좀 주고서라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이와 관련, 그는 대통령 당선자 시절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나서 ‘벌 받겠습니다’라는 자세를 보여야 국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노력들이 없으면 내가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 결국 법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말했었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해 대연정을 제안한 것도 쉽게 풀린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만 얘기할 수 없는 비논리가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형님문화, ‘좋은 게 좋다’라는 정(情)의 세계를 단숨에 뛰어넘으려고 하니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문상을 가야하지 않느냐는 건의에 노 대통령은 “일면식도 없는 내가 왜 가야 하나”라고 말했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자살을 했을 때도 노 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굳건한 논리의 세계가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 그것은 앞서도 설명했지만, 노 대통령 특유의 이성주의적 사고방식에 있다. 거기에는 내 편이라고 해서 봐주거나 허용할 수 없는 냉엄함이 있다. 지지자들로부터 욕을 먹고,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원칙과 철칙을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그것은 노 대통령이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안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고 새로운 실험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이고, 그를 선택한 대한민국의 운명이다.
그러려면 이제 우리 국민들도 논리의 세계로 그를 좀 봐줄 필요가 있다. ‘주는 것 없이 미운’식의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로 실패한 것인지, 보수언론으로부터 저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하는지, 꼼꼼하고 냉정하게 따지는 논리적 안목을 가지는 여유로움을 가져보자.
어차피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 혼란은 반드시 우리를 암흑으로 몰아넣는 혼란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혼란일수도 있다. 긴 호흡으로 노무현 정권을 바라보자. ‘정의 세계’로 똘똘 뭉친 우리 사회에 ‘논리의 세계’를 가진 노 대통령의 등장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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