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친구'라고 한다. 굳이 동년배가 아니라도 좋다. 팔십 노인과 열살 어린이도, 왕과 광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남자에게 친구는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의형제요, 여자에게 친구는 비밀 없는 자매 같은 사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친구는 줄어든다. 어렸을 때는 네다섯 명, 많게는 열 명이 몰려다녔건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단짝 친구 몇 만 남더니 이제는 친구란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 왜 친구는 늘지 않고 줄기만 할까. 얼마 전 교수에 임용된 남자가 찾아왔다. 오랜 강사시절을 힘들게 이겨낸 그에게 고민은 따로 있었다.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강사시절엔 친구들이 밥도 사주고 격려도 해줬다. 적은 강사료를 걱정하며 집에 놀러오면 애들 용돈도 챙겨줬다. 역시 친구 밖에 없다며 고마워했는데, 막상 교수가 되니까 아무도 자기를 만나주지 않았다. 전화너머로 '축하 한다'는 말 뿐 바쁘다며 얼른 끊었다. 어렵게 자리를 마련하면 계산서는 항상 그 차지였다. 제일 성공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는 꼭 마지막에 '사람이 겸손해야 한다. 어려웠을 때를 잊으면 안 된다. 잘난 척 하면 나중에 망신당한다'며 뼈 있는 말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제가 교수가 되서 배가 아픈 건지. 친구들이 변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울상으로 앉아 있는 그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일단 과거에 친구였다고 현재도 친구일 수는 없다. 우정은 영원하다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정은 변한다. 첫째 처지가 달라져서다. 옛날에는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학력 차이, 빈부 차이, 신분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콤플렉스가 생기면 시기, 질투가 생겨 친구가 될 수 없다. 둘째,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서 그렇다. 친구라면 무조건 믿어줘야 한다. 친구에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아무 대가 없이 털어주고 잊어버려야 한다. 만약 친구가 배신했다면 친구가 아닌, 친구가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믿은 자신을 탓해야 한다. 셋째, 성격을 배려해야 한다. 태생이 질투심이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겐 아무리 잘 해줘도 소용이 없다. 고마운 줄 모르고 조금만 심사가 뒤틀리면 남의 탓을 하기 때문이다. 친구라면 잘못된 성격까지 배려해줘야 한다. 절대 찍어 누르지 말고 잘 맞춰야 하며, 농담처럼 가벼운 말도 조심해야 한다. 친한 사이일수록 마음의 상처를 주는 법이다. 가장 좋은 친구사이란 뭘까. 처지와 조건을 떠나 친구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떳떳해야 한다. 알렉산더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빛나는 우정의 시작은 이랬다. 디오게네스의 명성을 들은 알렉산더대왕은 친히 그를 찾아왔다. "필요한 것이 있는가?"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나는 아테네인도 그리스인도 아닌 세계시민입니다. 내게 비친 햇빛을 가리지 않으면 고맙겠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돌아서서 말했다.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황제가 아니라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구나." 이후 그는 황실의 아첨꾼보다 디오게네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