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대 또는 30대, 40대에 꼭 해야 할 일을 모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혹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씻어 주라 하고, 혹자는 순례여행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다. 언제 저승의 부름을 받을지 모르는 게 인생사. 그래서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로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로 죽은 사람들이 영가가 되어 생전에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들은 무엇인가.
구명시식에서 P씨가 초혼된 아버지와 형 영가들과 대면했다. 선친 영가가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네가 사준 하얀 고무신을 신지 못해서 아쉽다."
선친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갈밭을 갈다가 질환으로 병상에 누웠다. 평생 하얀 고무신 한 번 신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다. 가족들이 선친의 머리맡에 고무신을 사놓으면서 완쾌를 빌었다. 하지만 그 길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가족들은 하얀 고무신을 선친의 관에 함께 묻었었다.
"내가 책을 찢어서 미안하다."
형 영가는 동생 P씨에게 사과했다. P씨의 손위의 형제들은 학교 문턱에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막내였던 P씨만 초등학교도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위의 형들은 돈을 벌고 농사를 짓느라 손마디가 터지는데 막내는 폼 나는 교복을 입고 밤늦게 호롱불의 기름을 낭비하며 책을 읽는 게 영 못마땅해 속이 뒤틀렸던 것.
남겨진 동생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아닙니다, 형님. 저는 맘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형님들 성화에 오히려 정신 차리고 더욱 독하게 공부하여 이렇게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영가가 된 형들은 이제는 막내 동생을 자랑스러워했다. 동생에게 남긴 당부는 남겨진 자식(P씨의 조카)들의 뒷바라지였다. 구명시식을 하는 가장 많은 이유가 자식 때문이다. 자식의 완쾌를 위해서, 자식의 취업을 위해서, 자식의 결혼을 위해서,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죽기 전'이 아니라 '죽으나 사나' 자식 걱정이다. 그래서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기도에서 종교가 비롯되었다고 했을 것이다.
우주의 섭리는 철저한 인과응보지만 이를 넘어보려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간절한 소망. 차길진 법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는 남을 '위한다'는 말은 위선(僞善)일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위할 '위(僞)'자는 사람 인(人)변에 할 위(爲)자가 만든 형성자입니다. 자기 이외의 것을 위한다는 것은 위선이란 뜻이죠. 버스에서 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고 칩시다.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 같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그렇게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고는 못 참는 자신 때문에 한 것입니다. 자식을 위한다, 국민을 위한다, 국가를 위한다, 정의를 위한다, 진리를 위한다…과연 나 이외의 다른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결국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자신 때문은 아닐까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도 결국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야 후회가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차 법사는 구명시식도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이 법당이 낡고 좁은 상가 2층 건물에 20년 동안이나 세 들어 사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니 그 규모에 맞게 더 큰 시설로 확장하라고 성화입니다. 제가 너무 구두쇠라나요. 20년 전이나 다를 바 없는 법당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법당이 신도들을 위한 게 아니라 저의 수행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쓰기엔 넉넉합니다. 면담이나 구명시식 때만, 그것도 선별하여 손님을 초대하는 것일 뿐입니다. 남을 위해 제가 개방하여 베푸는 것 같지만 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구명시식을 굳이 강행하는 것도 그렇지 않으면 제 맘이 편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먼저 행복해야지요. 꽃이 피면 저절로 향기가 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