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들의 무서운 교육열
※독자분들 중에서 더 많은 칼럼을 보시고자 요청하시는 분이 계셔서 일반 칼럼 사이사이에 기존에 출판되었던 <영혼을 팔아먹는 남자 이야기.1999>내용중 일부도 동시에 연재합니다. 제가 영혼에 대해 천착해온 길을 짚어보실수 있고, 영혼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살필 수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하루는 롱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유태인 할머니가 찾아왔다. 그 할머니와 같이 온 며느리는 우리 나라 여성이었다. 두 분은 별로 표정의 변화가 없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나를 찾아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였는데 바로 자신의 집에 항상 돌아가신 남편의 영혼이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영혼을 천도해서 나타나지 않게 할 수 없겠는가’하는 것이 말씀의 요지였다. 그러나 나로서는 왜 돌아가신 아버지가 매일 밤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이 사는 집에 나타나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며느리가 들어간 유태인 집안은 소위 미국에서는 출세한 집안 중의 하나였다. 아들을 많이 둔 할머니는 아들들 모두 훌륭한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굵직굵직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딸은 뉴욕에서 좋은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지내고 있을 정도여서 주위에 있는 유태인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명문 집안이었다. 물론 우리 나라 사람인 며느리의 남편도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직장에 나가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이 집안에 이상한 일이 생기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찾아오신 유태인 할머니는 자신의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렇게 남편의 영혼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수년 전 남편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남편이 소위 거액의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자식들을 모두 일류 대학까지 공부시킬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보험을 즐겨 들고 확실하게 이를 이용하는 유태인들의 특성상 이러한 막대한 보험금을 타서 자식들 교육을 시킨 것은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많은 유태인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대부분 이상하다 싶을 만큼 미신, 곧 영혼의 세계를 믿고 있었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과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으며 아마도 수천년 전부터 장사를 해 온 민족으로서 나만이 잘나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날씨도 좋아야 하고, 그리고 운세도 맞아야 성공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여하튼 유태인들은 느낌이나 영혼의 세계를 실제 세계 이상으로 경의하는 기본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일상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이러한 영혼의 세계와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유태인들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나에게 할머니가 하신 여러 가지 이야기는 나에게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나는 유태인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분의 남편은 사고를 당해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고, 바로 ‘자살’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교묘한 테크니컬한 사고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나는 유태인 할머니에게, “당신의 남편은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입니다.” 라고 이야기하자 그 할머니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자살하기 직전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부인에게도 자신의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신체이상에 의한 사고사로 알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 유태인 할머니에게 남편의 고의적인 테크니컬한 자살을 이야기하자 그 할머니는 ‘며느리와 자식들이 알면 안 된다’고 말하며 사실을 이야기하지 말아 줄 것을 원했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의 남편은 왜사고사를 가장해 교묘하게 자살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보험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고 그리고 자신은 막대한 교육비는 물론생활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몇 백만 달러짜리 고액의 보험에 가입한 후, 자식들의 교육과 가정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벌려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유태인들의 교육열을 한 마디로 상징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경찰이나 보험 회사측에서도 의심스러운 점을 찾아내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숨 안 쉬고 죽어 질식사 내지는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에게, 자살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놀랐던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남편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구명시식을 했을 때 나는 두 번 놀라야만 했다. 구명시식을 통해 나타난 그 할머니의 남편의 영혼 뒤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여러 영가가 함께 나타난 것이다. 바로 그들은 똑같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한 유태인들의 영가였던 것이다. 며느리가 대신 참석한 구명시식 제단앞에서 나는 왜 유태인들이 미국에서 성공한 민족이 됐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강한 마음을 가진 민족으로 유명하다. 우리 나라 교포들 중에도 많은 수가 그들의 건물에 들어가 장사를 하거나 또는 살고 있으나 법을 앞세워 몰인정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 그들이다. 자기들 민족말고는 모두가 적이며 어떤 때는 사악하다 싶을 정도로 남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강한 민족성 뒤에는 이같은 강한 교육열이 있었으며, 그러한 것들이 모두 오늘의 미국 사회 유태인들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에 사는 유태인들도 우리 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우리 나라의 어린이 교육기관에는 ‘지기 싫어하는 유태인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교육열에 자극을 받아 아이를 보내는’ 사례까지 있다. 그들은 또한 우리 나라 사람들을 ‘코이쉬(Kowish:유태인의 주이쉬와 코리안을 합친 말)’라고 부르며 자기들과 비슷한 동류 의식을 가지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과연 교육열이 세계 최고라는 한국에서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교묘하게 사고사를 위장해 자살을 시도할 만한 우루 나라 아버지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나 자신도 지금 현재로서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꼭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혼의 세계에서 자살한 사람의 영혼은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부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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