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방송국에서 '티베트의 소금 계곡'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중국 원난성에서 생산된 소금을 말이나 야크, 당나귀에 싣고 티베트, 미얀마, 인도 등지로 운송한다. 주요 이동로인 차마고도(茶馬古道)는 험난한 산악과 협곡으로 악명 높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개미허리 산길은 어른 한 사람 간신히 디딜 수 있는 폭이고, 발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니 당나귀도 내딛기를 주저할 정도다. 만약 기후라도 급변해서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몰아치면 한 무리의 카라반은 흔적 없이 산중에 매몰되고 만다. 소금은 인간과 가축의 생필품이기에 상인들은 목숨을 걸고 생사의 여정을 나선다. 위험한 협곡을 만나면 그들은 하늘과 땅에 기도를 한다. 죽느냐 사느냐. 이보다 더 처절한 기도가 있을까. 그래서 국적을 막론하고 신의 은총을 가장 애타게 찾는 이들은 어부와 상인(사업가)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업가에게 부는 곧 신의 선택이다.
A씨와 B씨는 국내 유명 대학 선후배지간의 사업가였다. 그런데 두 사람 사업의 시작과 끝은 너무도 상반되었다.
A씨는 테헤란로의 벤처 거리에 사무실을 얻으면서 출발했다. A씨의 아이템은 프리젠테이션에서 참석자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유수의 대기업 최고 관리들과 실무자들로부터 구매 상담이 줄을 이었다. 주식 공개도 앞두고 있었다. 제품 판매보다도 주가 상승으로 더 많은 수익이 예상되었다. 그는 벤처열풍 속에서 잘나가는 젊은 회장이 되었다. 사업상 연회를 구실삼아 연일 흥청거리며 밤 문화에 흠뻑 젖었다. 머리가 좋으면 아이디어를 팔아 얼마든지 거부가 될 수 있는 나라,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대박에 흡족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눈앞에선 극찬을 아끼지 않던 바이어들이 웬일인지 구매를 계속 미뤘다.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여도 힘이 부족한데 회사에서는 지분 싸움이 벌어졌다. 그는 법정을 오가며 경영권 방어에 온 신경을 써야했다. 판매가 잘 돼도 남의 회사가 될 판. 판매 부진과 지분싸움이 알려지고 결국은 부도가 나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정도 풍비박산이 났다. 믿기질 않았다. 하루아침에 가정을 잃고 수십억 원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이다. 화려했던 몇 개월이 신기루 같았다. '가만히 있었으면 그 돈 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는데….' 밀려오는 후회를 곱씹으며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이젠 지난 일을 엔간히 우스갯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왜 실패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론상으론 실패할 수 없는 확실한 이익이 보장되는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운이 안 따랐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중견기업에 다니던 B씨가 지방에 위치한 외국합작기업에 한국 지사장으로 자원했다. 그런데 창립 2주년도 안된 180여명의 중소기업은 극심한 노사갈등과 국가 간 문화차이로 바람 잘 날 없었다. 오죽했으면 1년 반 만에 3명의 사장이 바뀌었을까. B씨가 인수 받은 자산은 '갈등' 그 자체였다. 얼마든지 더 좋은 조건으로 골치 썩이지 않는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회사의 엄청난 기술 잠재력과 앞선 마케팅에 주목했다. 사원들만 인화하면 위기가 기회라고 확신했다. 일일이 사원의 경조사를 챙기며 같은 식구로서 거리를 좁혔다. 자존심 강한 한국인의 특성을 살려 한국에서 처음으로 생산 라인별로 소사장제를 실시했다. 본사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외국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연봉제 대신 호봉제를 실시했다. 사석에서 지킨 약속도 철저하게 지켜 신뢰를 쌓았다. 마침내 30억달러 수출 탑을 수상했다. 누적해서 퇴직할 때까지 무려 30조원을 벌어들였다. 그는 수출기업의 신화로 추앙받고 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조건이 좋은 A씨가 B씨 보다 더 성공했어야 한다. 사업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A씨와 B씨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돈 버는 목적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A씨는 대박으로 왕창 벌어서 황혼기를 화려하게 즐기기 위해서였고, B씨는 외국의 선진 기술을 배우고 외화획득으로 보다 많은 사람이 잘살게 하기 위해서였다. 큰 부자는 하늘이 만든다고 했다. 하늘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A씨와 B씨의 사업 중 누구를 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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