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성을 지닌 시간이야말로 '영혼적 존재' |
탄생게(誕生偈)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흔히 '우주 만물 중 내가 가장 높은 존재'라고 알고 있는 탄생게의 참뜻은 우리 인간만이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말이다. 시간 속에 있으면서 시간을 초월하고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함축한 것인데 종종 잘못 해석돼 안타깝다.
인간은 시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 몇 시냐고 묻는다면 시계만 있으면 누구든지 대답한다. 그러나 시간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별로 없다. 왜냐하면 국가별로 시간이 다르고, 지구와 태양계의 시간이 다르고, 태양계와 은하계의 시간이 또한 다르기 때문. 하물며 깨닫지 못한 세계와 깨달은 세계의 시간은 오죽 다르겠는가.
이러니 우리는 시간 모를 우주 공간에서 시간을 여행하는 한낱 여행객일 뿐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시간 속을 물 흐르듯 떠돌아다니며 죽을 때까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먼지로 변해간다. 그러나 용맹 정진하여 시간의 개념을 확연히 깨닫게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고대로부터 현자들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시간에 대한 금언을 나열하면 도서관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렇듯 소중한 시간이지만 무심코 낭비하며 살아간다. 시간이란 항상 존재하기에 생각없이 써버려도 무한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이 무한하게 쓸 정도로 시간은 항상 존재한다. 여기서 항상 존재한다는 말은 영원성의 의미와 결부된다. 시간은 영원하고, 영원한 존재는 신이다. 시간이야말로 신적 존재, 즉 신(神)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항상성과 영원성을 갖는 시간이야말로 신이요, 영혼이다. 이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암울한 시간 여행자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래 전 한 소년은 할머니의 뒤를 따라 산사(山寺)로 향했다. 깊은 산 중턱에 있는 절의 일주문을 향해 걷던 중 오솔길에서 문득 상념에 빠져들었다. '아, 머지않아 시간이 지나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겠지. 그러면 나도 나이는 어리지만 언젠가 할머니의 뒤를 따라 가게 될거야. 그렇게 할머니도 가고 나도 가면 무엇이 남을까. 남는 것은 오직 시간 뿐이겠구나.'
삶의 무상이 뇌리를 스치자 소년은 슬픔에 한숨을 내쉬었다. 온 곳 모를 바람이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훑고 지나갔다. 소년은 다시 의문에 휩싸였다. '할머니도 나도 없는 세상이지만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겠지. 그러면 할머니는 새 몸을 받아 이곳에 태어나실 거야. 나도 할머니처럼 어디선가 새 몸으로 태어나겠지. 그럼 이것이 시간의 흐름에 맞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됐다. 소년은 오솔길을 걸으며 위인전에 나열된 인물의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를 생각해냈다. 어느 고승은 물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났다.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존재한 인물이요, 불도를 높게 세운 분이었다.
또 어느 과학자는 출생 연도는 분명하나 사망 연도가 없었고 세계적인 작가 역시 출생 연도와 출생 지역이 불분명했다. 그들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 역사를 바꾼 후 사라진 것일까. 혹시 자유자재로 시간을 조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깊은 고민으로 저만치 뒤떨어져 걷던 소년은 "길진아!"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오솔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석가탄신일을 경축하는 범종이 산등성이를 타고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