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바흐

[스크랩] "이대로 가면 우리는 조만간 공동체 붕괴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kongbak 2013. 1. 26. 12:10

서울 공대 정년 퇴임 이면우 교수의 조선일보 인터뷰 일부 (2011.3.21) 

 

"인재(人災)는 분란을, 천재(天災)는 단합을 가져온다."

―일본의 비극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재(人災)는 분란을 가져오고 천재(天災)는 단합을 가져온다. 이번 일본 비극에는 이 두 가지가 다 있다. 천재는 지진과 쓰나미이고 인재는 원자로 연쇄 폭발이다. 지진과 쓰나미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숙적(宿敵) 감정마저 녹여내고 있다. 반면 원자로 폭발은 일본 내부에서도 이미 논란이 되고 있고 결국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 논란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공학도로서 이번 일본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일본이 이같은 공포와 충격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배워야 할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솔직히 그런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났다면 우리가 어떤 수준의 모습을 보이게 될지는 다 아는 것 아닌가? 그것을 생각하면 좀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데 나는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 활(活)단층의 작용을 보면서 우리 사회 내부를 생각했다. 땅속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단층이 있고 그 중에서도 사회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는 활단층, 즉 단층화를 주도해 급기야 지진을 일으키는 단층이 있다고 본다. 이 사회 기득권층이다. 사법연수원생들 떼쓰는 것 봐라. 싹수가 노랗다."

― 서울 공대 교수는 기득권층 아닌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기득권층의 범위는 훨씬 크다. 지금 우리 교육제도가 이기적인 기득권층을 양산해내고 있다. 고등학생 부모들, 교육제도가 어쩌니 하며 불만인 듯하지만 결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아이들이 볼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아이 대학 들어가고 나면 입 싹 씻어버린다. 그러면 그 과제는 고스란히 중학생과 그 학부모들에게 옮겨간다.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당국도 이제 학생과 학부모 다루는 데 도가 텄다. 해마다 입시제도 바꾼다 해도 누구 하나 제대로 대들 수가 없다. 그때마다 '고기 냄새나는 걸레'(새 입시제도) 하나 던져주면 서로 뜯어먹으려고 난리피우다가 결국 당국의 손에 놀아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공대에 할당된 '얼(spirit) 빠진 학생' 4년 학점 관리해서 내보내면 나 같은 공대 교수의 '임무'는 끝이다."

―사회 위기, 교육 위기, 이공계 위기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총장은 글로벌 랭킹 높이기에, 교수는 논문 발표 '건수'에, 학생은 학점과 '스펙' 관리에 정신이 없다. 정작 대학에 교육이 없고 배우고 가르치려는 혼이 빠져 있다. 위기가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조만간 공동체 붕괴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자연의 쓰나미는 공동체 의식이라도 강화시키지만, 사회의 단층화로 인한 인공 '쓰나미'는 공동체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질 않는다. 사회과학 공부한 교수들 뭐하나?"

"대학은 썩을 대로 썩었다."

―41년 교단에서 서울 공대생들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60년대 선배들과 우리들은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최고의 열정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흥분 상태였던 것같다. 국가와 사회 건설에 일조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70년대와 80년대 학생들은 우리만큼 고생은 안 하고 컸지만 산업의 역군이라는 정신이 있었다. 2000년대부터는 학점 관리의 도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학생들 탓할 수도 없다. 공대 학부생 5500명 가운데 10% 이상이 고시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물리학과 다니던 학생이 다시 입시를 봐서 서울 의대에 입학한다.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자연대와 공대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돈 잘버는 변호사 의사 한의사 되겠다고 작심한 아이들에 비하면 미련한 '최후의 변절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딱해보이기도 한다. 눈치 빠르게 진작 돈 버는 쪽으로 갈 것이지 서울 공대는 왜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法故創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