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한국도 '태양 혁명' 주도세력이다

kongbak 2008. 8. 20. 14:19
한국도 '태양 혁명' 주도세력이다
▲ 논설위원

지난 6월 16일 에트리(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중대한 발표를 했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런 발표가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ETRI는 ADD(국방과학연구소) 등과 함께 소리 없이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통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IT 기술은 거의 대부분 ETRI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금까지 ETRI 연구 업적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10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날 ETRI의 발표 역시 혁명적인 것이었다.

ETRI는 앞으로 7년 후에 태양광 발전을 석유 발전보다 싸게 하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태양광 발전은 원료가 공짜고, 시설비가 싸고, 가동·유지 비용이 없거나 적고, 송배전 시설이 필요 없다. 지구적 문제가 된 탄소 배출도 없다. 그러나 태양광은 아직 발전 효율이 떨어져 단가가 비싸다. 1㎾/h의 전기를 만드는 데 원자력은 40원, 수력은 85원, 화력은 50~205원의 원가가 드는데 지금의 1세대 태양광 기술로는 발전 단가가 500원이다. 만약 이 태양광 기술이 2세대로 발전해 발전 단가가 70원이 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태양광 에너지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ETRI는 그 2세대 태양광 기술의 원천 특허를 확보했으며 '태양광 발전 연구 본부'를 출범시킨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그 꿈의 '70원 시대'를 앞으로 7년 후, 2015년에 열 수 있다고 했다. 이 추세로 나아가면 결국엔 태양광이 석유 대신에 지구의 에너지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때 경제적으로, 국제 정치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혁명이다. 그 혁명이 어느새 우리 눈앞에까지 다가왔다. ETRI의 발표는 우리가 그 혁명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고, 태양광 발전 설비라는 거대 시장에서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가 아직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분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된다. 미국 100여 개 기업이 공동으로 캘리포니아주 전체가 사용하는 전력의 두 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태양열 발전소를 그곳에 짓기로 하고 이미 부지를 확보했다. 그 기업들 중에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와 같은 세계적 투자회사들, 셰브런, PG&E와 같은 세계적 에너지 기업들, 구글과 같은 인터넷 기업들이 망라돼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태양광 발전에 뛰어드는 바람에 "실리콘 밸리가 솔라(Solar) 밸리가 됐다"(뉴욕타임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태양광 발전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일본은 내년에 오사카 앞바다에서 세계 최대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건설 공사를 시작한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사하라 사막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워 유럽 전체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자고 제안하자 EU와 영국 브라운 총리가 곧바로 지지했다. EU 에너지연구소는 "사하라와 중동 사막의 태양광 0.3%만 전력화해도 유럽 대륙 전체가 쓸 에너지가 나온다"고 뒷받침했다. 독일은 태양광 발전 설비 시장에서 이미 앞서 가고 있고, 중국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태양광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앨 고어 전 부통령은 10년 이내에 미국에서 석유, 석탄, 가스를 이용한 발전을 전면 중단하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 세금을 '버는 것'(Earn)에 매길 것이 아니라 '태우는 것'(Burn)에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에서 이 제안은 더 이상 황당한 소리가 아니다. 미국 민주당은 물론, 주요 언론들도 '역사적 연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도 '저(低)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이 선언을 보면서 왠지 무슨 구호(口號)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선언에 대해 "대운하 하려는 음모"라고 비난한 야당에 대해선 할 말도 없다.

태양광 발전 기술의 핵심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절묘하게도 우리나라는 그 두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올라 있다. 지금 우리는 인류의 에너지원이 바뀔 수 있는 역사적 분수령에 서 있으며, 우리 앞에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국가적 기회가 다가와 있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인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