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불길한 예감이 검은 바다로

kongbak 2007. 12. 18. 16:57
불길한 예감이 검은 바다로

우리는 사라진 것을 그리워한다.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가 어느 순간 없어져버리면 허전하다.

 2004년 말, 먼 친척의 조카가 졸업 기념으로 태국 푸껫에 간다며 들떠 있었다. 순간 예감이 좋지 않아서 스키장을 권했다. 조카는 마지못해 국내 스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얼마 후 남아시아에서는 거대한 쓰나미로 하루아침에 수십만 명이 몰살당하는 대재앙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기분 나쁜 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올여름부터 쓰나미 때와 비슷한 좋지 않은 예감이 있었다. 후텁지근한 여름, 한 분이 휴가를 간다기에 "이번 휴가는 서해안 쪽으로 가는 게 어떠세요. 태안반도가 어떨까요?"라며 내가 구체적인 지역까지 거론하자 그가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이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태안반도 만리포는 송림이 우거지고 넓은 백사장이 참 아름답지요."

 가지 말라고 말리던 쓰나미 때와는 달리 이번엔 가보라고 떠밀어서 그는 태안반도 근처의 섬에서 가족과 여름휴가를 보냈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올해 가을, 나는 여러 명의 지인 앞에서 또 태안반도 얘기를 꺼냈다.

 "이번에 시간나면 우리 태안반도에 하루 머물면서 바람이나 쏘이러 갑시다. 금빛 낙조에 바람 부는 해안 송림이 참 좋은 곳이지요."

 하지만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늦가을이면 동해안의 바닷가도 한적하고 가는 시간도 비슷하게 걸려 좋을 텐데 왜 굳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태안반도 바닷가를 가자는 것인지. 나는 그동안 같이 가보지 않은 곳이니 한번 가보자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끝내 태안반도에 가지 못했다.

 지난 12월 7일, 불길한 예감이 기어코 현실로 벌어지고야 말았다.

 크레인 바지선이 대형 유조선과 충돌, 약 1만500㎘의 원유를 이틀통안 바다에 쏟아 붓고 멈춘 것. 태안반도를 중심으로 서해안 수백 킬로는 순식간에 죽음의 검은 기름띠로 뒤덮였다.

 태안반도 해안은 갯벌이 많은 서해안임에도 썰물 때 일시에 드러나는 드넓은 금빛 고운 모래와 소나무 해안이 일품이다. 갈매기 울고 황금빛으로 물든 일몰을 후광 삼아 은비늘 바닷물이 반짝거리고 사각거리는 해수욕장을 걷노라면 '만리포 사랑'을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낭만의 해안. 그러나 지금은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물고기와 물새들이 썩는 죽음의 벨트가 되었다.

 다행히 인명손실은 없었지만 해양생물들의 피해는 막지 못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적 노력에도 수많은 대형 어장은 폐쇄되고 생태계 복원은 적어도 10년에서 10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생태계 파괴는 그 지역의 산업도 침체시킬 것이 뻔하니 생태계 파괴가 곧 인간 파괴라는 잊지 말아야 할 쓰라린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그 맑게 찰랑거리던 파도와 희고 고운 모래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오늘도 흥얼거려본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그립고 안타까워 울던 밤아 안녕히, 희망의 꽃구름도 둥실둥실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