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맛은 전통의 힘

kongbak 2007. 9. 3. 21:00
[(42) 맛은 전통의 힘]
식문화 경쟁력 높일 지혜 필요

얼마 전 리처드 기어나 기네스 팰트로 같은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앞다투어 찾는다는 뉴욕의 한국 음식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용 수저를 맡겨두고 재래식 비빔밥이며 잡채 등을 즐기는 인사들이 많다고 하니 단골 중의 단골이 아닐까 싶다.

 이런 현상은 갑자기 일어난 유행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큰 흐름의 일부로 봐야 한다. 어떤 문화보다도 맛 문화는 순식간에 이뤄질 수 없는 전통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캐나다의 몇몇 도시는 중국 본토보다도 고유의 맛을 잘 내는 중국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현재 캐나다의 토론토에 20만 명 이상, 밴쿠버에는 15만 명 이상의 홍콩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이 홍콩의 고급 식문화를 향유하다가 홍콩의 중국 반환에 따라 캐나다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홍콩의 맛은 끊어졌고 캐나다에 상륙한 것이다. 예술에 가까운 미각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캐나다의 식문화는 예상치 못한 문화적인 축복을 받은 셈이다.

 또한 식문화는 단지 음식만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각의 음식은 먹는 방식이 있고 담는 식기가 있으며 고유어로 부르는 명칭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부수적으로도 그 나라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베트남 쌀국수 식당을 갈 때 무심코 보게 되는 시클로라는 베트남 인력거나 고유의 삿갓모자는 낯설어야 할 풍경임에도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되지 않았는가. 비빔밥이나 스시라는 말도 각각 음식의 고향을 훌쩍 넘어 쓰인지 오래이다. 젓가락의 사용도 이미 동양인만의 전유물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렇게 음식이 사람을 따라 국경을 넘나드는 한편으로 사람도 음식을 따라 국경을 넘나든다. 최근 미식가가 늘어나면서 골프 여행뿐만 아니라 식도락을 위한 해외여행도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해외에 나가서 먹고 마시느라 쓰는 돈이 한 해에도 어마어마하다고 하니 새삼 식문화의 힘이 대단함을 느낀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해외에서 미처 잘 알지 못하는 맛있는 음식이 참으로 많다. 소를 부위별로 세분화해 먹는 것으로는 세계적으로도 우리 민족을 따르기 힘들다. 일전에 세계적인 요리대회에서는 서양인에게는 신기한 소스, 참기름을 쓴 한국인이 큰 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맛을 알리는 과정에서 일정 시간이 흐르면 우리나라도 그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알려지는 것이다. 문화가 반드시 보고 듣는 것만으로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멕시코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 화끈하고 매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우연은 아니지 않은가. 문화는 영과 오감이 상호작용해서 이뤄내는 복합체이다.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한 것에는 많은 성공 요인이 있겠지만 결과뿐만 아니라 세세한 과정을 보여준 요리 장면들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그 덕분에 한국 요리 배우기 붐도 일었다고 하니 시청각이 미각까지 자극한 셈이다.

 뮤지컬로도 국경을 넘어 성공하려는 '대장금'의 인기 행진을 보며 기쁜 한편으로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초기부터 해외 성공이 점쳐진 드라마였던 만큼 애초에 한식당 프랜차이즈와 연계하여 시도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 식문화의 세계적 경쟁력은 최고의 미식가들과 요리사들이 몰려드는 뉴욕에서도 이미 입증되고 있으니 말이다.

 음식의 맛이 국가까지 멋스럽게 브랜드화 하는 것에는 많은 노력과 시일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결합할 때는 놀라운 속도의 강력한 파급력을 갖게 된다. 그것을 현명하게 활용하고 이렇게 좋은 타이밍을 살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You are what you eat'라는 서양 격언이 있다. 그가 먹은 것은 바로 그 사람이 된다. 즉 누군가 먹는 음식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게 되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세계적 브랜드화의 열쇠는 가까운 곳,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다. 미각은 가장 느리게 퍼지지만 가장 오래 머무는 문화적 자극이 아닐까. 시간이 사람은 데려가도 맛은 남겨두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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