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음의 변화가 삶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큰 변화를 꿈꾸지만 조그만 일상의 변화로부터 큰 즐거움을 얻을 때가 많다. 여러 일화를 통해 구명시식이 만능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80년대의 일이다. 한 공무원이 초췌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저는 매일 밤마다 제 상사를 죽이는 꿈을 꿉니다. 상사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항상 트집을 잡고 저를 못 살게 굽니다. 오죽하면 제가 지방으로 전출을 희망했는데도 보내주질 않는 겁니다. 상사와 저는 전생에 무슨 악연일까요?"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말했다.
"안경을 하나 쓰십시오. 유머러스한 안경으로요." 그는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 "저는 시력이 좋아서 안경이 필요 없는데요?"
나는 아무 말 말고 그냥 그렇게 해보시라고 권했다. 한참 만에 그가 다시 나를 찾았다.
"신기한 일입니다. 저를 대하는 상사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뿔테 안경을 하나 썼을 뿐인데 말입니다."
첫눈에 본 그의 눈매는 매우 날카로웠다. 마치 사무라이의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눈매로 상사를 쳐다보니 상사는 부하가 자신을 무시하는 줄 알고 못살게 굴었던 것이다.
"제 눈이 남에게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몰랐습니다. 거울을 한 번 제대로 보았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요"라며 돌아갔다.
우리가 코미디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보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남을 누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서 나보다 못난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장사를 잘하는 비법 중의 하나도 찾아온 손님들보다 주인이 어수룩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위계질서가 분명한 공무원 사회에서 상사를 깔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으니 그는 험한 직장생활을 자초했던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남편의 구명시식을 청했다. "살이 낀 것이 틀림없습니다. 분명히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구명시식을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남편이 가정을 소홀히 하고 겉도는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집에는 항상 처가 식구들이 드나들며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게 싫었던 것이다. 대놓고 싫다고는 말을 할 수 없어서 퇴근 후, 날마다 찜질방을 전전하다보니 항상 밤늦게 들어갔던 것이다.
"아주머니께서 구명시식 하려고 준비했던 돈 있으시죠. 그 돈으로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함께 가서 거창한 외식을 한번 하시고, 좋은 호텔에 시댁 식구를 묵게 해보세요." 뒤통수를 긁으며 돌아가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옛날 실화가 떠올랐다.
며느리가 절에 찾아와 스님에게 큰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스님, 제가 얼마든지 부처님께 시주를 할 테니 제발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좀 풀어주십시오." 고부갈등이 심각해서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이다. 스님은 며느리를 꾸짖어 돌려보냈다.
"이 돈은 냉큼 가져가시오.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릴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 정성스럽게 공양드릴 돈으로 문제의 해당자인 시어머니께 불공드리듯 정성껏 공양하십시오. 며느리와 시어머니 두 당사자가 풀어야할 일이지, 어디 절간의 부처님께 공양한다고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연필을 깎는 데 도끼를 쓰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한 잔의 물을 엎지르면 우주 전체가 목마르고, 한 송이 꽃을 꺾으면 우주의 일부분이 꺾이는 것이다. 자기 마음하나 조금만 바꾸면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체감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