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고사성어 - 중석몰촉(中石沒鏃)
中:가운데 맞을 중. 石:돌 석. 沒:잠길 몰. 鏃:화살 촉.
[출전]《史記》《韓詩外專》〈卷六〉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전한(前漢)의 이광(李廣)은 흉맹한 흉노족의 땅에 인접한 농서[?西=지금의 감숙성 동부 일대] 지방의 무장 대가(武將大家) 출신으로, 특히 궁술(弓術)과 기마술이 뛰어난 용장이었다.
문제(文帝) 14년(B.C. 166), 이광은 숙관(肅關)을 침범한 흉노를 크게 무찌른 공으로 시종 무관이 되었다. 또 그는 황제를 호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혼자서 큰 호랑이를 때려잡아 천하에 용명(勇名)을 떨치기도 했다. 그 후 이광은 숙원이었던 수비대장으로 전임되자 변경의 성새(城塞)를 전전하면서 흉노를 토벌했는데 그때도 늘 이겨 상승(常勝) 장군으로 통했다. 그래서 흉노는 그를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어스름한 달빛 아래 초원을 지나다가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덮치려는 호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위기의 순간 일발필살(一發必殺)의 정신으로 활을 당겼다. 화살은 그대로 명중했다. 그런데 화살을 맞은 호랑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화살이 깊이 박혀 있는 호랑이 형상의 큰 바위였다. 그는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활을 쏘아 보았지만 화살은 돌에 맞는 순간 튕겨 나갔다. 아까와 똑같은 정신으로 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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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 장군이 중시한 것
호랑이 모양의 바위에 화살을 꽂아 석호장군(石虎將軍)이라고도 불리는 이광에게는 남다른 리더십이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 한나라에는 그와 함께 정불식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지휘방식이 매우 대조적이었다. 이광은 전투행동으로 들어가지 않을 때는 그다지 군기에 대해 까다롭지 않았고, 정불식은 항상 엄격한 군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평판이 높았다.
이광의 군대는 행군 중에 정연하지 않고 제멋대로 대형을 이루었고, 호수나 풀밭이 나오면 병사들은 마음껏 쉴 수 있었다. 야간에도 본대는 그다지 엄중한 경계를 하지 않아서 심지어 경계병조차 세우지 않을 정도였다. 대신 척후병을 먼 데까지 내보내고 있기 때문에 본대가 기습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또 사령부의 연락문서 따위도 최대한 간단히 했고, 없어도 되는 것은 생략해 병사의 부담을 가볍게 했다.
이와 달리 정불식 장군의 부대는 평시와 전시를 불문하고 항상 일사불란한 통제 하에 있었다. 행군할 때도 보조를 맞추어서 걷도록 엄명하고, 대오를 흐트러뜨리는 일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또 사령부에는 어떤 일이든지 세밀하게 기록하여 보고하게 하고, 자질구레한 모든 내용도 문서로 작성하게 했기 때문에 문서 담당자는 언제나 긴장했다.
정불식은 통제가 잘 된 자기 부대를 많이 자랑하면서도, “이광은 병사들을 제멋대로 굴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일단 유사시에 병사들은 이광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도 결코 따라갈 수가 없다.”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이광은 엄격한 군율로 병사들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높은 덕망으로 병사들의 진심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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