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風水地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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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살아 있는 생명으로 대하는 전통적 지리과학. 만물이 기(氣)로 이루어졌다고 보아 만물 중의 하나인 땅도 지기(地氣)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지기에 대해 음양과 오행, 그리고 주역의 논리로 체계화한 것이 풍수지리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어 서양의 지리(geography)가 지리의 영역을 차지하기 이전까지의 진정한 전통지리는 풍수지리였다. 19세기까지 실학자들의 지리관과 동학과 같은 개벽사상의 밑바탕이 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미신으로 격하되었으며, 이러한 외세에 의해 왜곡된 풍수지리가 제모습을 찾기 전에 다시 서양의 지리에 의해 묻혀졌으며, 풍수지리는 풍수라는 봉건시대의 속신으로 버려지게 되었다. 풍수지리는 인간이 일찍부터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터득된 지혜에 근본을 두고 있다. 특히 농경을 시작한 후부터 작물의 재배와 성장에 관계되는 땅의 성격과 분포의 차이를 기의 차이로 이해하면서 풍수지리는 이론적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 여기에 춘추전국시대 이후 기의 변화와 동정을 음양으로 파악하는 음양가의 성장이 인간의 개별 경험적 수준에 머물던 기에 대한 인식을 학문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렸으며, 이후부터 풍수지리서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비·눈·바람 등의 기후현상, 토양, 수분, 지형, 생태계내의 물질순환 등 모든 자연현상을 기의 작용으로 파악했다. 현존하는 풍수지리서 중에서 최고(最古)의 것으로는 동진(東晉)의 곽박(郭璞)이 지은 〈금양경 錦襄經〉이다. 한반도에서도 일찍부터 땅에 대한 기의 인식이 발달했으나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학문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땅에 대한 독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삼국시대 이후 중국으로부터 풍수지리가 전래된 후 중국과는 다른 우리식의 풍수지리를 발전시켰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우리의 독자적 풍수서가 저작되기도 했다.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동외산선문(桐畏山禪門)의 도선(道詵)이라는 선승에 의해 한반도 풍수지리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도선에게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비보사상(裨補思想)으로서 중국과 다른 한반도 풍수지리의 특성이다. 즉 주어진 땅의 지기에 의지에서 살 뿐만 아니라 나무를 심거나 가산(假山)을 만들고 사찰과 탑 등의 입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땅의 지기를 인간의 삶과 조화되도록 하는 것이 비보로서 한반도 풍수지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고려시대에는 비보문제를 전담하는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비보와 같은 땅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는 고려시대 풍수지리에서 지기쇠왕과 그에 따른 국도의 천도문제를 제기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풍수지리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고려의 도읍인 개성을 벗어나기 위해 계룡산·모악산 등과의 비교를 통해 결국 한양이 도읍지로 선정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건국 후에 새로운 도읍 선택에 골몰한 것은 고려시대에 문종·숙종·예종·공민왕 등이 모두 풍수지리 논리를 고려의 개혁에 이용하려 했던 전통을 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태조는 왕조의 정통성 문제를 민중들의 사고 속에 깊이 뿌리내린 풍수지리를 이용해 정면돌파한 것이다. 즉 지기가 왕성한 한양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앞날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어 신생왕조의 안정을 도모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성종 이후 문물이 안정되면서 개혁적 풍수지리의 사상성은 점차 몰락하고 좋은 터를 골라 가문과 개인의 부와 권력을 탐하는 수단으로 풍수지리를 이용함으로써 풍수지리는 이기적인 터잡기 잡술로 여겨지게 되었다. 타락한 풍수지리를 비판하고 건강한 지리관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실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외세의 침략으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풍수지리는 오늘날에도 저속한 옛 관습을 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풍수지리는 기본적으로 지기로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땅에 인간이 어떻게 잘 조화해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땅은 좋고 나쁜 것이 없고 스스로 그러한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다. 여기에 인간이 조화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이 조화하기 어려운 땅이 인간의 눈에는 좋지 못한 땅으로 보일 뿐이다. 자연 그 자체로서는 선악의 판단에 구애되지 않는 것이다. 땅과 조화할 수 있는 기반은 인간이 땅의 기를 느껴서 자신과 잘 맞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문명을 만듦으로써 점차 자연과 멀어졌고 이에 따라 인간의 본능적인 능력으로서의 기감(氣感) 능력은 상실되었다. 기감이 상실된다면 풍수지리의 이론체계는 쓸모가 없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론이 만들어졌다. 직접 땅의 기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땅의 여러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지기를 파악하려는 모든 노력이 풍수지리의 이론을 형성하고 있다. 간접적인 지기에 대한 접근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땅의 모양을 눈으로 봄으로써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이 형국론(形局論)이다.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연화부수형(連花浮水形)·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 등 어떤 지역의 땅을 호랑이·소 등의 짐승이나 매화·연꽃 등의 식물, 또는 사람 등의 모양으로 규정하고 땅에 비유된 동식물들의 생태적 특징을 가지고 생기(生氣)가 모이는 혈(穴)을 찾는다. 학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면 알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가 된다. 만약 생기를 느낄 수 있다면 굳이 학 모양을 그리지 않고서도 알이 놓이는 곳을 기감으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기가 수반되지 않은 형국론은 공허하며 이런 점에서 명당을 찾는 일은 땅과 긴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갖지 않고서 단지 어떤 도식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생기를 바탕으로 한 형국론은 땅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풍수지리의 정신을 대중화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삼천리 방방곡곡 풍수지리는 형국명이 붙지 않은 곳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보다 체계적으로 길지(吉地)를 찾는 노력으로 간룡법(看龍法)·장풍법(藏風法)·득수법(得水法)·좌향론(坐向論)·정혈법(定穴法) 등의 경험적 지기인식을 위한 이론체계가 있다. 간룡법은 우리 땅의 연원인 백두산, 즉 태조산에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마을 뒷산, 즉 주산(主山)에 이르는 산맥이 힘있게 끊어지지 않고 잘 달려왔는가를 보는 것이다. 풍수지리에서는 지기의 흐름인 산맥을 용(龍)으로 본다. 생기가 넘치게 뻗은 용을 보통 좋은 것으로 판단한다. 간룡의 요체는 조산(祖山)에서 주산을 거쳐 혈장에 이르는 맥의 연결이 생기발랄한가를 보는 것이다. 장풍법은 주산을 중심으로 명당주변의 산세를 살피는 방법이다. 명당주변의 산세가 포근하게 사람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무정하게 돌아앉았거나 외면하는 산세는 좋지 못하다. 가장 전형적인 장풍법은 사신사(四神砂)의 구조를 살피는 것이다.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남주작(南朱雀)·북현무(北玄武)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형태는 서울을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서울의 명당을 주재하는 것이 북현무인 주산이며, 북악산이 이에 해당된다. 북악산은 다시 조산인 북한산에서 맥을 이어받았다. 주산은 혈장 뒤에 우뚝 솟아 위엄을 갖추고 명당의 얼굴이 된다. 좌청룡·우백호는 주산의 좌우에서 주산을 호위하면서 명당을 감싸는 모양을 갖추어야 좋다. 서울에서의 청룡은 낙산, 백호는 인왕산이다. 남주작은 조산(朝山)인데 말 그대로 임금인 주산에 대해서는 신하와 같은 산으로서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듯 한 모양이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관악산이 이에 해당하는데 조산으로서는 다소 기가 센 것이 흠이다. 그리고 주산과 조산 사이에 책상과 같은 산이라 하여 나지막한 안산(案山)이 있는데 서울 남산이 이와 같은 산이다. 장풍법을 살핌으로써 명당의 크기를 볼 수 있는데 사신사의 구조가 만드는 넓이가 크면 도읍이나 고을 및 마을이 입지할 수 있는 명당이 되고 국면이 협소하면 음택이 입지하는 땅이 된다. 즉 풍수지리에서 음택과 양택 풍수지리의 구분은 오직 명당의 크기에 좌우되는 것이다. 간룡과 장풍법을 통해 대략적인 명당의 범위가 확정되면 어느 부분이 생기가 모이는 혈처(穴處)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혈을 정하는 것이 정혈법이다. 땅에도 몸과 같이 경락(經絡)의 체계가 있고 혈이 있다. 이 혈기는 경락을 타고 흐르던 기가 잠시 멈추는 기의 정거장과 같은 장소이다. 그러므로 한방에서 침을 혈에 놓게 되는데 혈을 벗어나면 효험을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명당에서 혈을 찾는 것도 침구술과 같이 털끝만큼의 차이가 있어도 명당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될 수 있다. 그만큼 정혈은 어려운 것이다. 서울의 혈처는 경복궁이 된다. 명당의 중심이 혈이기 때문에 도읍이나 마을의 가장 중요한 기능들이 이곳에 입지하게 된다. 간룡법·장풍법·정혈법이 주로 산, 즉 용맥에 관련된 사항에 주목하는데, 풍수지리란 말에서 이미 상징되듯이 물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특히 중국의 풍수지리에서 중시되고 있다. 명당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서 물길을 보는 것이 득수법이다. 자연에 직선의 날카로움이 드물듯이 풍수지리에서도 조화와 부드러움을 좋아한다. 산의 흐름도 부드러우면서 힘있는 모습으로 꿈틀꿈틀 흘러야 하지만 물도 마찬가지로 직선으로 빠르게 흘러서는 안 되며 뱀이 기어가는 모습처럼 구불구불 유장하게 흘러야 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산의 흐름과 조화되어야 한다. 자연의 운행은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가 그러하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도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명당에 배치하는 기능들의 방향에 따라서 기의 영향도 상당히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입지하는 존재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방향이 결정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좌향론이다. 좌란 혈의 뒤쪽 방향을 말하며, 향이란 혈에서 앞을 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좌향은 지기와 천기(天氣)의 조화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경험적 지기의 인식을 위한 논리는 서로 조화되고 협동적으로 지기 파악에 사용된다. 그러나 역시 풍수지리에서 중요한 것은 땅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살아 있는 것은 그 특징을 알아서 적절히 대할 때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그 개성을 무시하고 죽은 것과 다름없이 대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땅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는 논리이며 이 양자의 존속을 조화와 균형이라는 데서 찾고 있다. 실제로 땅의 해석에 동원되는 모든 이론체계는 음양의 상보적인 이해와 오행의 순환적 변화의 원리를 토대로 형성되어 있어 조화와 균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풍수지리는 땅에 대한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땅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다소 은유적·비유적인 표현을 빌리기 때문에 현대과학의 엄밀한 서술양식과 비교해 소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연과학적 사실, 특히 생태학과 같은 지식체계에 풍수지리의 논리가 매우 잘 부합된다. 풍수지리는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자연에 대한 지혜의 축적이기 때문에 현대과학이 부분적 확실성에 치중하는 데 비해 풍수지리는 포괄적이고, 과학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선도하는 사상이 될 수 있다. 현대의 환경문제는 지구의 죽음을 염려한 것이고 지구의 종말에 따른 인간의 몰락을 걱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현대과학이 자연에 대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확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과학 지식의 확대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지식의 응용으로 자연을 이용하여 쾌락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데 더욱 열중했기 때문에 과학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문제가 급격히 커져 마침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 자체의 붕괴를 초래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대과학의 왜곡된 성장을 올바르게 되돌리는 데 풍수지리와 같은 유기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전통사상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韓東煥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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