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 (33) 항룡유회 ]

kongbak 2007. 3. 25. 16:44
[ (33) 항룡유회 ]
욕심이 과하면 후회할 일 생겨

용(龍)은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예로부터 최고 자리를 상징했다. 중국인들은 봉황, 기린, 거북과 함께 용을 '사령(四靈)'이라 여기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 최고 통치자를 상징하는 용은 왕권다툼에서 하늘이 선택한 상징이 되기도 했다. 후삼국을 통일하려던 왕건은 백성들에게 역성(易姓)혁명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묘안을 냈다. 하늘이 선택한 왕조임을 내보이기 위해 왕건의 태모갑을 깎아서 용린(龍鱗), 즉 용 비늘처럼 만들어 전시하고 고려 왕조 대대로 계승해 전했다.

 주역(周易)의 건괘(乾掛)는 왕성한 기운이 넘치는 용(龍)을 6가지 효의 형태를 빌어 초효(初爻)에서 상구(上九)까지 설명하고 있다. 이를 간단하게 네 단계로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잠룡(潛龍). 연못에 깊이 잠겨있어 드러나지 않는 용이다. 용이 날기 위해서는 큰 바다가 아니라 작은 물에서, 즉 고요한 산이 아니라 인간들이 부대끼는 시장에서 큰다는 의미다. 작은 물에서 온갖 고초를 감내하면서 덕을 쌓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오기부리며 조바심을 내어 성급하게 굴면 이무기로 전락하고 만다.

 다음은 견용(見龍)이다. 비로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서 자신의 쓰임을 알리는 단계다. 이때는 명성이 있다고 해서 군림해서는 안 되며 늘 언행을 조심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보든 보이지 않든 성실한 자세로 선행을 해도 자랑하지 않고 덕을 베풀어야 한다.

 비룡(飛龍)은 하늘을 나는 용으로 건괘의 극치다. 그동안 쌓은 덕으로 말미암아 만인의 찬양을 받는다. 정치가는 제왕에 오르고, 덕을 갖추었으니 훌륭한 신하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보필한다. 무슨 일을 해도 만사형통인 형상이다.

 마지막이 항룡(亢龍)이다. 승천한 용이다. 절정의 경지를 말한다. 명성과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이 괘의 설명에는 높이 오른 용이니 후회가 있을 것이라고 되어있다. 즉 달도 차면 기운다는 것.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며 거칠 것이 없을 때 욕심을 내서 더 오르려 한다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를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한다. 공자(孔子)도 항룡(亢龍)을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비룡에서 그치면 되는데 항룡을 욕심내는 게 인지상정이다. 비룡 단계에서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차길진 법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는 마음을 비우는 것에 대해 최근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구명시식을 18년 동안 한 자리에서 하다 보니, 작은 임대 건물이 낡아서, 찾아오는 이에게 불편하여 불사를 통해 신축건물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막상 거액의 불사를 받으려하니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돈 씀씀이에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건물 신축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영혼의 집을 크게 하기로 마음을 돌리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불사금을 되돌려주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어디까지가 비룡이고 항룡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땐 한 생각 바꿉니다. 돈을 더 벌고 싶을 땐 있는 돈이라도 고맙게 여기고, 더 큰 지위를 원할 땐 그동안 높이도 올라왔다고 생각합니다. 극상(極上)이면 자멸(自滅)하고 항룡은 후회하게 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얻기 위해 저를 찾지만 이미 가득 찬 마음으로 오기 때문에 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을 비워야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인생은 꿈입니다. 꿈속에서 황금을 얻었지만 눈뜨면 황금이 없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것이 한 푼 가치 없는 것이라고 뼈저리게 느낄 때 비로소 자기를 돌아보고 생과 사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습니다."

작가/김영수(paanmiso@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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