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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산에는 왜 오르는가 *-

kongbak 2007. 3. 14. 09:55

                  

 

                                          "산에는 왜 오르는가"
        
산악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등산은 길이 끊긴 데부터 시작된다. 아니 일부러 기존의 길(방식)을 버리고 자기만의 길(방식)을 찾아 오르려고 한다. 길이 없는 그곳은 매우 불확실한 세계다. 오직 자신의 판단과 선택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한다. 불확실한 것과 맞서 얻어낸 성취감,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이 감동은, 오르는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더욱 커진다. 어떤 물질과 명예와도 바꿀 수 없는 이 기쁨이야말로 산이 도전자들에게 주는 가장 크고 값진 선물이다.

 

사람이 산에 오르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등산을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부류다. 산삼을 캐러가는 심마니나 그림을 그리러 가는 화가, 건강을 위해 산행을 하는 중년, 전투의 승리를 위해 산을 오르는 군인들…. 이런 사람들에게 등산은 하나의 수단이다.그런가 하면 등산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수봉 등반부터 백두대간 종주, 히말라야 고산 등반 등 일부러 험한 산을 찾아 투혼을 불사르는 사람들이 있다.

 

산악인이라 불리는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은 “왜 사느냐”는 질문처럼 우문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산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산악인들이 높고 험한 산을 찾는다. 그렇다면 산에서의 성취감은 오른 산의 높이와 비례할까. 등산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8000m 산이 7000m급 산보다 더욱 불확실하고 어려운 대상이고, 6000m급 산은 그보다 훨씬 쉽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산은 한라산(1950m)이며, 설악산(1708m)은 그보다 오르기 쉬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낮은 북한산(826m)과 인수봉에서도 수없이 어려운 난관에 직면하며 그것을 극복하면서 더 큰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등산의 성취감은 높이보다는 선택한 길과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끊임없이 눈사태와 폭풍설이 몰아치는 6000m급의 어떤 산은, 셰르파들의 도움을 받으며 인공산소통에 의존해 오르는 8000m급 어떤 산보다 더욱 불확실하며 그래서 오르기 어려운 대상이 된다. 그래서 산의 높이는 그 산을 오르는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사실 등산의 어려움은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렵다. 등산은 외적으로는 위험하고 격렬한 육체활동이지만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주관적인 내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등산을 기록 스포츠로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할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계량화된 잣대를 들이댄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선택한 것이 산의 높이다. 높이를 등반성과의 척도로 보면 당연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가장 가치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년에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한국원정대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9개 팀이나 된다는 소식은 바로 높이라는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잣대와 무관하지 않다. 산에서의 성취감은 정상이라는 ‘결과’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일탈과 극복의 ‘과정’을 거쳐야만 얻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자기 스스로 오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인수봉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면 그 정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도감과 추위뿐일 것이다.

 

등산은 산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어려움과 맞서서 얻는 깨달음이다. 등산의 세계에서는 그래서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소중하고, 산의 고도(altitude)보다 산에 대한 태도(attitude)가 더 중요하다.

 

               - 산악인 남선우 월간 MOUNTAIN 발행인 -

출처 : -* 산에는 왜 오르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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