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 (28) 현대판 평강 공주 ]

kongbak 2007. 3. 9. 10:54
[ (28) 현대판 평강 공주 ]
현명한 부인은 남편 살리고 자신도 살려

차길진 법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는 최근 사람의 유형을 수재, 영재, 천재 이렇게 3가지로 분류했다.

 수재란 지식습득 능력이 뛰어난 유형으로 흔히 학교 석차에서 전교 수석을 다투는 등 학습 성적 우수자들이다. 의사, 변리사, 판사 등 시험을 통과해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특수 직업에 종사한다.

 영재란 종이접기, 사물놀이, 판소리, 시(詩), 조각, 암산, 트로트(노래)처럼 한 분야에서 최고를 이루는 유형이다. 약간 바보스러울 정도로 천진하며 다방면에서 호기심이 왕성하다. 학교 성적과 무관해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천재란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처럼 소우주인 인생의 비밀을 탐구하여 마침내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유형이다. 보통은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사는 은둔 성인(聖人)이나 도인(道人)이 훨씬 많다.

 보통 우리가 대학입학 '영재 학교'에서 양성하는 인재는 사실 '영재'가 아니라 '수재'다. 이 세 유형이 특성을 살리면서 조화를 이뤄야 사회가 갈등이 적고 서로 발전한다. 수재의 단점은 지식 행정 시스템을 벗어나는 창의력에 취약하다는 것. 영재의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 수재가 저명인사로서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기 때문에 영재들을 무시하거나 정해진 법과 규범으로 창의적인 행위를 규제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천재는 당대의 다수에 의해서 늘 이방인 취급받아서 기인이나 이단자의 멍에를 쓰곤 한다. 인간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자기취향을 법제도로 고집하면 사회가 불행해진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사람은 이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 먼저 자기 자신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한다. 각자의 특성을 무시하고 영재가 수재가 되려 한다거나, 부모가 자식에게 강요하면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의 지위와 재능의 산물을 잘 나누어 조화롭게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대판 평강공주라며 차 법사가 성공한 예술가 일화를 들려주었다.

 유명한 의사를 아내로 둔 남편이 있었다. 부인은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먹고 돌아다녔다. 부인이 성화를 내자 남편이 사업을 한다고 나섰지만 뭉텅이 돈만 날렸다. 부인은 곰곰이 생각했다. 결혼 전 예술적으로 비상했던 남편이 왜 점점 저렇게 변했을까.

 부인이 어느 날 남편을 불러 앉혀놓고 뭔가를 갈기갈기 찢었다. 남편이 뭐냐고 물었다.

 "제 의사 면허증이에요. 이제 당신이 우리 식구 먹여 살리지 않으면 모두 굶어죽어요."

 남편은 아연실색했다. 사실 남편은 아내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본인도 학창시절 수재 소릴 들었지만 아내에 훨씬 못 미쳤다. '능력' 대신 돈이나 지위, 명예로 만회하려 했다. 대박을 노려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마누라가 방에 들어앉겠다고 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전과 다른 점은 부인에 대한 열등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살리기로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국내외에서 알아주는 예술가가 되었다. 부인은 병원에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의료봉사활동으로 복을 쌓았다.

 차법사가 말을 맺었다.

 "만약 부인이 똑똑한 체하고 남편을 구박해서 남편의 열등감이 폭발했다면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현명한 부인은 남편도 살리고 자신도 살립니다. 요즘 해외 유학생들이 국내에 돌아와서 적응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사례를 많이 접합니다. 수년간 연구실에 갇혀 책 공부만 하고 그 나라 문화를 접할 기회도 없이 국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지만, 문화가 메말라있으니 글자 번역은 해도 사람의 마음 통역은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바보가 되고 만 거죠. 문화는 도서관에서 공부한 학자가 아니라 그 나라 식료품가게 주인이 더 잘 압니다. 똑똑한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훌륭합니다."

작가/김영수(paanmiso@hoo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