處世

法古創新

kongbak 2013. 3. 8. 09:43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2013년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성어]法古創新(법고창신)

 

[字解]

法 법 법

古 예 고

創 비롯할 창

新 새 신

 

[意義]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出典]

연암집(燕巖集) 권 1 초정집서(楚亭集序)

 

[解義]

옛 것을 법도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인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성어이다.

그 주인공은 열하일기(熱河日記)로 잘 알려진 북학파의 거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며, 출전은 연암집 권 1 초정집서(楚亭集序)이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다.

중국의 경우 법고(法古)라고 하면, 옛 것을 모방한다는 뜻이 강하며 법도로 삼는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예컨대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을 보면, “순법(循法: 옛 법을 좇음)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고, 법고(法古: 고대의 예제를 좇음)의 학문으로는 오늘을 다스릴 수 없다”고 하여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법고창신’의 뜻이 옛 것을 법도로 삼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니,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 엇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왜 그는 굳이 옛 것을 마다하고 약간 어색해 보이는 ‘법고창신’이란 말을 새롭게 만든 것일까?

일단 그 본문을 살펴보자. “옛 것을 본받는 사람들은 옛 것에 구속되어 벗어나지 못함을 근심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이들은 그 불경(不經)됨을 걱정한다.

실로 능히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화할 줄 알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도 능히 전거(典據)가 있다면 이 시대의 글이 옛 시대의 글과 같게 될 것이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본문을 읽으면서 금세 아셨을 것이다.

법고는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또한 창신 또한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다.

법고는 말 그대로 옛 것을 모방하는 것이니 그 안에 빠져 나올 수 없게 될 수 있을 것이며, 창신은 자칫 지나쳐 기이함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문학사상과 관련된 말이니, 역대 시가나 산문이 법고를 주장하다 진부함에 이르고, 창신을 주장하다 난삽(難澁)함에 이르렀음을 익히 알고 있었을 터이다.

 

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니, 지나친 창신은 차라리 법고가 지나친 것만 못하다고 한 것을 보면 법고에 흐른 듯하나, 그의 참신(斬新)하다 못해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로 혁신적인 문투나 내용을 보건대 그가 얼마나 창신에 힘썼는지 능히 알 수 있을 듯하다.

 

각설(却說)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그의 문학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과연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가?

전통이란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튀어나오는 ‘법고창신’, 그 핵심은 단지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계승하여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다면 여전히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썩은 흙에서 지초(芝草)가 나오고, 썩은 풀이 반딧불로 변화한다.”

 

박지원은 같은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누가 썩은 흙이나 풀을 찾고자 할 것인가?

그러나 또한 향내 나는 지초나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이 어찌 썩은 흙이나 풀이 없다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