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스크랩] 바보 처세술

kongbak 2012. 10. 4. 22:07
            바보 처세술

              

                                     김 금 자


 
   시장 가는 길목에 과일 파는 아저씨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꺼벙이라고 부른다. 어제도 보니 어떤 아줌마와 
잔돈 내어 주는 것을 몰라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만원 주고 6000원어치 과일을 샀으니 4000원 내어주면 될 일을 
그 꺼벙한 눈을 치켜뜨고는 되묻는 것이다. 곁에서 보니 하도 딱해 4000원 내어 주면 맞네요, 하니 그제야 응응, 
하며 거스름돈을 내어 준다. 
이곳에 물건 사는 사람은 거의가 알아서 돈을 지불하고 거스름도 받아간다. 즉 셀프서비스로 사고 값을 지불해 
간다. 이 아저씨는 정말 그런 것도 계산 못할 만큼 셈에 둔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어벙한 행동을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그런데도 이 가게는 늘 사람이 붐빈다. 또한 치마처럼 두른 전대엔 늘 돈이 두둑하다. 잘 차려놓은 
가게보다 더 많은 과일을 판다. 그리고 늦게까지 파는 일 없다. 적당한 양을 준비해 해질 무렵이면 덤을 듬뿍 얹어 
주어 얼른 처분해 버린다. 
바보 처세술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일종의 위장술로 바보가 아니면서 바보인 척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중국 상인들이 상술로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하긴 요즘에도 어떤 회사에선 많은 자격증과 또 많은 경력을 
가진 사람은 꺼려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법하겠다 싶다. 똑똑하면 회사에 득을 주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계산이 빨라 주인이 전도되는 일도 있을 법도 하니까. 아무튼 사람이 너무 똑똑하면 왠지 모르게 가까이 하기에 
자못 조심이 되기도 하고 또는 은근히 주눅도 들게 된다. 
혹 꺼벙이 아저씨도 그런 처세술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바로 
큰길가 새마을금고 자리 이층건물을 샀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바보는 아닌 듯도 싶은데 하는 양은 또 아니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그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겨울 숲을 연상케 한다. 겨울 산은 여름내 
울창하던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 깡마른 몸뚱이를 숨김없이 다 드러내고 있어 그야말로 가난한 숲이다. 
마른나무 사이로 잿빛 하늘이 얼키설키 얼레빗처럼 엉켜 있다. 그런 나무 아래 서서 하늘을 쳐다보면 빗살 같은 손을 
쫙 펴고 있는 마른 가지가 처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성긴 가지 사이로 빈 하늘이 내려와 있어 
더없는 여유로움으로 다가온다. 꺼벙이 아저씨를 보면 그런 겨울 숲을 보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김기창 화백님 그림에도 ‘바보산수’라는 작품이 있다. 그분 그림 중 유독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유명하기도 하다. 
그는 자연 그대로 비어 있음을 잘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 그림은 나 같은 눈에도 아이들 그림처럼 엉성한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아마 그 엉성함이 또 모자라는 듯한 것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또한 처세술이라면 처세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바울은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 
했다. 바보가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가를 짐작이 가고도 남는 말이다. 
예술의 세계라고 다를 바 있을까. 그러한 그림을 그리기까지 얼마나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일을 해야만 했을까. 
글이나 그림도 바보 같은, 즉 천진한 마음이 아니고는 좋은 그림도 좋은 글도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말도 된다. 
물욕과 명예욕도 다 털어낸 빈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때 그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일 게다. 
그것도 또한 바보 처세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들어 물건을 놓은 자리를 까맣게 잊어먹기도 하고 때론 훤히 알던 길도 헤맬 때가 있다. 
며칠 전 서면 지하철에서이다. 다른 차선을 갈아타는 곳 찾느라고 몇 십 분을 뺑뺑이를 돌고 헤매었다. 갑자기 
겁나고 캄캄해지기도 했다. 길 잃은 아이같이 놀란 얼굴로 왔다 갔다 하는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여러 가지로 심각하다면 참 심각한 증세에 시달린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먹는다. 내 의지로는 마음을 비우지 
못하니 하나님은 그 방법 중 하나로 자꾸 했던 일을 잊어 먹게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또 눈도 침침하게 
하여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말게 하고 귀도 닫힌 듯 멍하게 하여 세상소리를 잘라버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생각을 그런 쪽으로 돌리고 나니 한결 편안해 지는 것이다. 잊어버리면 잊은 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눈 비비고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자고 마음 먹는다. 아프면 아픔까지도 버리려 말고 받아들이자는 
쪽이다. 일종의 바보 처세술을 끌어들이자는 생각이다. 좀 억지 같지만 그렇게 하면 덜 우울하고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이다. 
바보는 잘 웃는다. 항시 입을 헤벌쭉 벌리고 누가 창피를 주어도 또 놀리고 아프게 해도 헤 웃는다. 
꺼벙이 아저씨도 늘 웃고 있다. 그 웃음은 물건을 팔아주어 고맙다는 그런 의미의 미소도 아니다. 대가도 없는 
그저 그냥 웃는 것이다. 그의 눈엔 악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모든 게 자기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정말 처세술다운 처세술은 바보가 아니라 정말 바보 같은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2008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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