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About 직관력

kongbak 2012. 9. 23. 15:38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후배장교들이 미국에서 같은 과정을 공부했다. 그들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3학년에 편입해 전공과목을 더 공부한 후 모교에 돌아가 수학과 교수를 했다. 이들은 석사과정에 들어오자마자 과목들이 쉽다며 여유를 부리다 별로 좋지 않은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한.미간에 공부하는 방법이 틀렸던 것이다. 같은 연배의 장교가 한국과학원에서 유사한 분야의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사관학교 수학과 과장을 하다가 시스템공학 석사과정으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그는 학교 당국에 박사과정을 허락해 달라고 졸랐다.

본교의 석사 졸업생이 박사과정에 입학하려 해도 3가지 조건이 요구됐다. 4점 만점에 3.8 이상의 성적을 올려야 하고, 석사 논문이 우수하다고 인정되고, 그 학생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교수가 3명 이상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교수들은 어째서 그 학생을 박사과정에 밀어주려 하는지에 대해 박사위원회 측에 설명을 해야 했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만 하는 박사과정을 그는 겁도 없이 허락해달라고 한 것이다. 이 학교는 6개월 간의 학기제가 아니라 3개월 간의 학기제였다. 첫 학기에 이 학생은 모두가 이미 한국과학교육원(KAIST)에서 배운 것이라 쉽다며, 건성건성 했다. 하지만 그가 안다는 건 겨우 암기한 절차에 따라 계산을 빨리 하는 손재주였다. 교수는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고, 깊이 있는 공부는 스스로 참고서를 통해 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교실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 쉽다고 자만했다. 시험지에 응용문제가 나오자 허둥지둥했다. 그 후 8개 학기까지 그는 4점 만점에 겨우 3.1을 얻어 가까스로 졸업을 했다.

내가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동년배의 장교 두 사람이 석사과정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단 10분이 아쉬운 상태에서 한 시간 정도를 내서 기초부터 설명해 줬다. "네 설명을 들으면 이렇게 쉬운데 교수들은 왜 어렵게만 가르쳐 주냐?". 그들은 기말시험을 보고 나와 모두 A학점을 맞았을 거라며 좋아들 했다. 며칠 후 결과를 보니 두 사람 다 C학점을 받았다. 파고들어야만 응용문제들을 풀 수 있었지만 이들은 겉 개념만 대강대강 공부한 후 시험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꽤 많은 장교들이 석사과정 중간에서 탈락하여 조기 귀국을 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구태여 부각시키는 것은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되새겨 보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는 우수했던 학생들이 왜 미국에 와서는 헤매는가? 혼자서 생각하고 도전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가정교사를 두거나 학원에 다닌 학생들, 여건이 좋아 일류 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언제나 일류 선생님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 머리에 입력했다. 머리 좋은 선생님이 새 과목을 분해하여 이해시키고, 다시 조립하여 전체를 조감해주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스스로 공격하는 훈련을 전혀 기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능력을 기른 게 아니라 시험에 나올 문제를 달달 외우고 숙달하는 식으로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장점이 있었다면 바로 일류 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3류 학교나마 꾸준히 다닐 수 없었던 잡초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혼자 상상하고 혼자서 깨우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응용능력이 길러진 것이다. 그들보다 덜 배웠고, 문제 푸는 속도가 느리고, 그래서 대입성적이 다소 낮았겠지만 생각하는 능력만큼은 그들보다 우수했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소화능력을 기르는 것, 바로 이것이 공부가 아닌가. 인체의 소화능력은 조직체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 약품은 단지 조직체의 소화능력을 일시적으로 도와주는 데 있다. 공부도 이래야 한다. 미지에 대한 개척능력, 새로운 것에 대한 소화능력은 본인 스스로 키워야 한다. 단지 선생님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식 교육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창의력을 기르려면 오히려 학교에 다니지 않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창의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같은 반에 몰아넣고 그들에게 맞는 선생님을 배당해야 한다. 창의력이 우수한 학생들이라면 학원 등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할 것이다. 스스로 파고들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훌륭한 선생님의 역할일 것이다. 파고든다는 건 내용을 훤히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이론의 밑에 깔린 철학을 개발해야 한다. 교과서와는 다른 자기 고유의 방법으로 똑같은 공식이나 정리를 증명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개발해야 한다. 요점을 정리하여 손에 익숙 시켜야 한다. 손이 생각을 따라주지 않으면 표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없다.

이해만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수학의 철학적 메커니즘을 피 속에 용해시켜 상식세계로 전환해야 한다. 모든 수학적 공식과 정리에는 물리적 해석(physical interpretation)이 따라야 한다. 영어회화를 배울 때, 책에서만 달달 외우다가 미국에 가면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표현 하나하나를 외울 때마다 실생활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말과 장면을 매치 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면 미국에 가서 비슷한 장면이 나올 때 즉시 영어 표현이 나온다. 수학도 이와 꼭 같다. 수학세계를 현실세계로 매치 시키지 않으면 그 수학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수학공식과 정리를 노트나 책에서만 푸는 것은 배움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 끌고 나와 해석하고,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직관"(Intuition)은 이러한 과정에서만 자란다. 직관력을 키우지 못하면 발명 능력도 없다. 이를 더러는 훈련된 예측력(Educated Guess)이라 부른다. 배우고 음미하고 터득하려는 노력은 예리한 직관을 키우는 데(Sharpen Intuition) 절대적인 과정이다. 공식을 재창조(Regeneration)하고, 응용하고, 새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사람은 공식을 숭상하고, 일생 내내 남이 만들어 낸 수학 모델만 찾아 헤맨다. 수학공식, 정리(Theorem)는 훈련된 예측(Conjecture)에서 출발한다. 그 예측을 증명해나가는 것이 수학적 발명이다.

통계학의 "회귀분석"(Regression Analysis)이나 "LP"; 이공계를 공부한 이들은 모두 다 안다 할 것이다. "아, 그런 거? 아주 기초적인 것이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껍데기만 공부한 사람이다. 그들이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위 두 가지는 엄청난 철학적 의미, 광범위한 개념 및 응용분야를 가지고 있다. 간단한 절차와 요령을 원숭이 식으로 배운 후에 그걸 주제의 전부라고 아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학문에 첩경은 없다. 왕도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단거리 경쟁을 연속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장거리 경쟁으로 틀을 잡았다. 좋은 점수를 목표로 한 게 아니라 좋아하는 과목에서 희열을 느끼며 시간에 대한 계산 없이 몰두했다. 몰두하다보니 직관력이 길러졌고, 그 직관력에 의해 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사회현상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독특한 해석을 내리며 일반상식과는 다른 지만원 식의 처방을 내린다.

개선은 과학이다. 과학의 기초는 관찰이다. 이론(Theory)이 없는 관찰은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 이론 없는 경험도 그렇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보는 사람에 따라 "본 것"이 다르다. 각자는 머리 속에 들은 것만큼만 보는 것이다. 직관력을 기른 사람이 한 시간에 볼 수 있는 것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일생 내내 보지 못할 수 있다.

체계적인 이론은 없지만 한 분야에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 이런 이들을 더러는 전문가라고 부르지만 나는 원주민이라 부른다. 비록 많은 사정은 알고 있지만,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토박이에 불과한 것이다. 때때로 접하는 기업체 주인들에게 나는 말한다. "남이 풀다 풀지 못한 문제가 있으면 제게 가져와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