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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古典은 문명 이상의 지혜" 플라톤·맹자로 미래 읽는 그들

kongbak 2012. 9. 4. 18:11

조선닷컴

입력 : 2012.02.03 03:07

“허허 난들 왜 오역이 없겠어요. 지금도 낯이 화끈거릴 때가 있지요. 늘 몸을 낮추고 묻고 또 묻는 수밖에 없지요.”

고전에 청춘을 바친 번역의 달인들도 ‘오역의 추억’을 묻는 말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40년 희랍로마 고전 원전을 우리말로 옮겨온 천병희(73) 단국대 명예교수와 35년 동양고전 해석에 정진해온 성백효(67) 고전번역원 명예교수가 잇따라 신간을 냈다. ‘갈리아 원정기’(숲)와 ‘통감절요’(전통문화연구회). 전공 분야도, 살아온 길도 다르지만 고전의 향기를 말할 때 취한 눈빛, 원로의 사라져감에 대한 탄식과 커가는 후학들에 대한 기대와 격려를 풀어놓는 모습은 한가지였다.

"대학때 빠진 고전, 애당초 대가 안 바랐다"
40년 희랍로마 고전 번역가, 신간 '갈리아 원정기' 낸 천병희 교수

대타로 플라톤 '국가' 맡아 번역 입문, 등장인물 이름 혼동해 오역했던 적도… 후학들이여, 질문을 망설이지 말라


천 교수의 공부방은 조촐하다. 책상 위 2개의 스탠드 아래 큼직한 컴퓨터 화면이 거울처럼 놓였고 주변에 2종의 희랍어 원전과 3권의 희랍어-영어 대역본, 국어사전, 영어사전이 있다. 왼쪽 책장에도 독어-희랍어 사전(事典)과 각종 참고서들이 빼곡하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부터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서양 문화의 젖줄에 해당하는 70권 정도의 고전들이 읽기 쉬운 우리말로 태어난 곳이다. 서울대 독문과를 나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독문학과 라틴·희랍 문학을 공부한 그는 서울대 전임강사와 단국대 교수 등을 지냈다.

―'갈리아 원정기'는 어떤 책인가?

"기원전 1세기 중엽 카이사르가 지금의 프랑스 지방을 정복한 이야기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쪽으로 확장했는데 카이사르는 반대로 가서 결국 로마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전쟁문학의 고전이자 솔선수범 리더십의 기록이다."

―어쩌다 서양 고전에 빠졌나?

"대학 2학년 때 그리스 문학시간에 플라톤의 '향연' 중 에로스의 본질을 둘러싼 대화를 읽었다. 정확한 뜻은 몰랐지만 그런 주제를 두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 뒤에도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심오한 논의가 살아가는 데도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번역에 뛰어든 계기는.

"갑작스럽게. 1972년 휘문출판사가 '세계의 대사상'을 내는데 첫 권인 플라톤의 '국가' 번역자에게 사정이 생겨 후반부를 맡게 됐다. 박사 논문 쓰느라 못 하다가 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왜 고전이 중요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몸으로 하는 일인 사람은 타고난 노예'라 했다. 정신적 가치를 믿는 사람이 많아져야 사회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는 요즘 플라톤의 국가를 다시 펴들었다.“ 이제 번역하고 싶은 것은 거의 다 했다. 그래도 가만 있을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순간까지 고전을 붙들고 씨름할 것”이라고 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특별히 좋아하는 고전이나 저자는?

"호메로스 저작이다. 남한산성으로 산책할 때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이 언쟁한 것이나 헥토르와 아내 안도르마케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요즘은 플라톤의 국가를 다시 잡았는데 감명깊다. 어렵긴 하지만 표현이 신화를 빌려선지 가슴에 더 와 닿는다."

―번역의 어려움이라면.

"고전 번역은 힘든 데 비해 보상이나 평가는 적다. 애당초 인세 받아서 뭘 한다는 생각은 안 했고, 하고 싶은 것이니 내 식대로 해보자는 생각에서 지금껏 왔다."

―번역 요령이 있나.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자료를 찾아보고 전문가한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예전엔 직역에 치중했는데 결국 독자를 배려하는 게 좋은 번역 아닌가 싶다."

―잊지 못할 오역의 순간이 있나.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마부 아우토메돈의 이름을 알키메돈과 혼동해서 옮겼다가 뒤늦게 50대 후배 지적을 받고 바로잡았다. 부끄러운 순간이었지만 고맙게 생각한다."

―번역 후학들에게 조언한다면.

"좋은 주석서들을 두루두루 보고 여러 사람에게 묻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 바란다.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해결하고 넘어가라. 그게 지름길이다."

"하루 16시간씩 하는 번역, 인내의 결정체"
35년 동양고전 번역가, 신간 '통감절요 1~9권' 낸 성백효 교수

현대어로 계속 재번역돼야 하지만 고전 번역할수 있는 인력은 극소수… 밥벌이 이상의 사명감으로 공부해야…

성 교수는 충남 예산 한학자 집안에 나서 전북 익산 서당에서 공부하고 1977년 민족문화추진회(지금 고전번역원) 부설 국역연수원에 입사해 고전번역원 교수까지 지냈다. 작년 2월 은퇴하고 지금은 해동경사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사서삼경, 조선왕조실록 등 50여종의 번역서는 한문 학습자들 사이에 정평이 나있다. 국내 처음으로 완역된 ‘역주 통감절요’는 6년 만의 결실이다.

―‘통감절요’는 어떤 책인가.

“전국시대~오대시대(BC403~959) 약 1300년의 역사책이다. 북송 학자인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5분의 1 정도로 축약한 것인데, 역대 제왕들의 정치에 따라 국가 흥망성쇠가 판가름난 사례와 신하들의 직간과 충고가 나와 있다. 조선조 학자들이 거의 다 이 책을 공부했다. 지금 정치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내용들이 많다.”

―번역은 언제 어떻게 하나.

“낮밤이 따로 없다. 강의나 준비 시간 빼고 하루 16시간 이상 한다. 오늘 인터뷰도 번역 시간을 뺏기는 거다.”

성백효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는“고전은 한번 번역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단 없이 당대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이어져야 살아 숨쉬는 지혜의 보고가 된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오역의 경험도 있나.

“36세 때 일이다. 두보의 ‘음주팔선가(飮酒八仙歌)’에 ‘잔을 들면 성인과 즐기고 현인을 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성인은 청주, 현인은 탁주를 가리키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했다. 지금도 낯이 화끈거린다.”

―고전 번역 상황은 좋아졌나?

“고전번역원이 국가기구로 승격해 여건은 좋아졌지만 원로 한학자들이 타계하면서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 한문학 박사는 많지만 고전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많은 사람이 한문 해독 능력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실력 있는 번역자는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인력을 키우고 신분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고전 번역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선조의 생각을 알려면 한문 고전을 보지 않고는 안 된다. 고전 번역은 한 번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현대어로 늘 새롭게 재번역돼야 살아 숨 쉰다. 안 그러면 곡해될 수 있다.”

―고전시대 성현은 뭐가 다른가?

“자기 심성 수양을 우선했다. ‘맹자’에도 사람들의 병통은 자기 밭은 버려두고 남의 밭을 김매는 것이라 했다. 겸손한 자기 성찰이 있었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요즘은 남 잘못 잡아내는 데 열심이고 자기 잘못은 일단 부인하고 본다. 다들 국가·민족 내세우지만 자기 수양은 소홀하다.”

―번역 후진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밥벌이 이상의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문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깊은 뜻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사전류나 인터넷 자료가 많아졌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한다.”

―고전 독서법을 조언한다면.

“고전을 마주할 때는 차분한 인내력이 필요하다. 보통 서가의 책들을 보면 앞부분은 손때가 묻어 있는데 뒤로 가면 깨끗하다. 끈질김이 없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불변이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 같은 것은 문명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통합적 지혜는 고전에 있다.”
출처 : 충격대예언
글쓴이 : 동방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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