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삼십육계] 제 17계 포전인옥(抛轉引玉)...
類以誘之 擊夢也
비슷한 것으로 유혹하는 것이 어리석은 이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포전인옥(抛轉引玉)의 출전은 송나라때 씌어진 <전등록>에 수록된 당나라의 시인 상건과 조하의 시를 짓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조하는 당대의 저명한 시인이었다. 그가 지은 시를 따서 따로 조의루라 불리울 정도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소주의 시인 상건이 그를 무척 흠모하여 그의 시를 얻기를 갈망했었다.
그런데 마침 조하가 소주를 방문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소주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명승의 하나인 영덕사를 방문할 터였다. 상건은 기회다 여겨 조하가 찾기 전에 영덕사에 먼저 가서 자신이 지은 시 두 구절을 적어 그 앞에 걸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하는 시인이었다. 시인이 시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조하는 누가 쓴 것인지도 모르는 시 두 구절을 보고는 시심을 일으켜 나머지 두 구절을 지어 채워 넣었다. 마침내 상건은 그 뜻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조하의 시구는 과연 훌륭했다. 상건이 쓴 앞의 두 구절에 비해 조하가 쓴 뒤의 두 구절은 더 훌륭했고 그래서 조하에 의해 한 편의 멋진 시가 완성될 수 있었다. 한참 못 미치는 시구로 한참 더 훌륭한 시를 얻어낸 것이다.
결국 이를 두고 많은 문인들이 이르기를 돌(상건의 시구)을 던져 옥(조하의 시구)을 얻었다고 일컫게 되었으니, 서툴거나 작은 의견이나 문장으로 고견이나 훌륭한 작품을 얻어내는 관용구로 여기게 되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포전인옥이다.
<백전기략>의 <이전편>에는 또 이렇게 쓰고 있다.
"무릇 적과 싸우고자 할 때 그 장수가 어리석어 변화를 모른다면 이익으로써 그를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이익을 탐내어 그 불리함을 모른다면 복병으로써 그를 무찌른다. 그러므로 병법에서 말하기를 이익으로 적을 유인한다고 하는 것이다."
초나라가 이웃한 교나라를 공격하자 교나라는 강대한 초나라와 직접 맞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판단하고 성으로 들어가 농성하기 시작했다. 험준한 지형과 굳건한 성곽에 의지해 버팀으로써 초나라 군대가 물러나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나라의 전략이 맞아떨어져 초나라는 무려 한 달 넘게 이렇다할 성과 없이 교나라의 성곽 아래에서 시간만 보내게 되었다. 그때 대부 막오굴하가 초나라 왕에게 건의했다.
"성을 공격하여도 함락시키지 못하니 작은 이익으로 적을 유혹하여 승리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초나라 왕이 그 방법을 묻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교나라 성안은 한 달 가량 포위당하면서 나무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병을 보내어 나무꾼처럼 나무를 하게 하면 적은 반드시 성문을 나와서 나무를 약탈하려 할 것입니다. 우선 며칠간은 그들로 하여금 작은 이익을 얻게 한 뒤에 그들이 큰 뜻을 잊고 많은 병사를 보내어 성을 나와 나무를 빼앗으려 할 때에 먼저 아군의 병사를 매복시켰다가 그들의 뒷길을 끓어버리고 군사를 모아 그를 공격한다면 승세를 타서 적의 성을 빼앗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척 훌륭한 계책이지만, 그러자면 먼저 상대가 그 계략에 넘어가 주어야 한다. 과연 교나라 왕이 그러한 이쪽의 의도에 넘어가 줄까? 초나라 왕의 의문에 막오굴하는 다시 이렇게 대답했다.
"대왕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교나라가 비록 작으나 경솔한 경향이 있습니다. 경솔하다는 것은 생각이 얕은 것이니 꾀하고 꾸미는 바가 적다는 뜻입니다. 이같은 달콤한 미끼가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속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나무를 대신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으니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 할 수 있겠지만 고대의 나무는 건축자재이면서 무기를 만드는 재료이면서 또한 연료였다. 아니 밤에 불을 밝히려 해도 나무가 중요하게 쓰였다. 그런데 성안에 나무가 없다? 이것은 요즘 석유 없이 전쟁을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초나라의 대부 막오굴하가 노린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나무가 없으면 어떻게든 구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무를 구할 수 있도록 해주자.
실제 교나라 왕은 그것이 초나라의 계략이 아닌가 조심하면서도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몇 차례 초나라 병사들이 해 놓은 나무를 수월히 약탈하게 되자 마음을 놓고 자주 더 많이 나무를 약탈하려 하게 되었다. 당장의 이익이 눈앞에 보이자 초나라의 위협을 잊게 되고, 몇 번의 성공으로 그 실패가 치명적일 수 있음을 무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초나라가 노리던 바였다.
교나라 군사가 더 이상 아무런 조심성 없이 나무를 하던 초나라 병사들을 공격하게 되자 초나라왕은 마침내 엿새째 되는 날 나무를 하던 병사들로 하여금 교나라 군사를 유인하도록 했다. 교나라 군사들이 나무를 빼앗으려 하자 고함을 지르며 도망치는 나무꾼들의 모습에 그들을 쫓기 시작한 교나라 군사들은 결국 초나라 군사들의 매복에 걸려 퇴로마저 차단당한 채 대부분 괴멸되고 말았으니, 그 기세를 몰아 마침내 초나라는 교나라의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전국칠웅의 세 나라인 위와 조와 한은 원래 삼진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로써 서로 인접해 있는 탓에 사이가 안 좋으면서도 서쪽으로 강대한 진을 마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때때로 서로 협력하여 대항하던 미묘한 관계에 있던 나라들이었다. 그래서 진은 위를 공격하기에 앞서 이들 삼진이 서로 단합하지 못하도록 조를 꾀어 업성을 댓가로 동맹을 맺게 되었다.
그것은 진과 조 사이에 위치한 위에게 있어 양면으로 적을 맞게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계책을 논의해 보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국칠웅 가운데 최강인 진과 삼진 가운데서도 군사력에서 가장 앞서는 조의 협공을 막아낼 만한 힘이 위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두려워하는데, 유독 장군 묘망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다.
"원래 조와 진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익을 나눠가질 계산으로 손을 잡고 있을 뿐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익으로 유혹한다면 서로 갈라서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 전쟁은 진이 주도하는 것으로 조는 단지 한 손 거들 뿐이니 그 이익이 매우 적어 이익으로써 유혹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러면서 묘망은 사신으로서 당대의 세객으로 이름높은 장의를 보낼 것을 천거했다.
묘망의 예측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장의가 위왕의 사신자격으로 조왕을 만나 업성을 양도할 뜻을 내비치자 조왕은 냉큼 장의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업성은 지키기가 무척 어려운 곳으로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적에게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어차피 지키기도 힘든 땅, 대왕께서도 진과 손을 잡고 위를 공격하려는 뜻이 땅에 있으니, 저희 왕께서 만일 전쟁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 땅을 양보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명분이야 훌륭했다.
"전쟁은 참으로 흉험한 것이라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많은 생명이 죽어나갑니다. 그래서 장수가 있는 곳에는 가시나무만이 자라고, 군대가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고 합니다. 저희 왕께서는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리는데 백성이 그런 고난을 겪는 것을 어찌 보고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평화로써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도 더없이 바라던 바였다.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진과 손을 잡고 있지만 진이야 말로 조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적일 터였다. 위를 멸망시키고 그 땅과 백성을 차지하게 되면 더 강해지게 될 터인데,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공짜로 땅을 얻을 수 있다면 - 더구나 그 땅이 진과 손을 잡고 전쟁을 일으켜 얻게 될 것이라면 전쟁을 않고 얻는 것이 최선일 것이었다. 물론 조나라의 계산에서 그랬다.
정작 조왕이 진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약속한 대로 업성을 접수하고자 장수와 병사를 파견했을 때 위의 장수 묘망은 군사를 배치하고 진영을 굳건히 하여 조나라 장수와 병사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약속한 대로 업성을 받으러 왔습니다."
"내게는 이 성을 지킬 책임이 있는데 어찌 함부로 성을 넘겨줄 수 있겠는가?"
"귀국의 왕이 허락한 일입니다."
"그런가? 그러면 증거를 보이시오!"
"비밀스런 약속이라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귀국의 사신으로 왔던 장의가 분명 그리 말했습니다."
"장의라고? 그러면 그에게 가서 물으시오. 나는 그런 말을 들은 바 없소!"
그러나 이미 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으로 진왕은 분노하여 조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거꾸로 위와 동맹을 맺고 조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으니 이미 조로서는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업성은 커녕 자칫 위를 대신해 조가 망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내몰린 것이었다.
결국 조는 진의 공격을 막기 위해 - 그리고 위가 진과 동맹을 맺고 조를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위에 성 다섯 개를 내 주고 다시 동맹을 맺어 진에 대항하게 된다. 그야말로 성 하나를 얻으려 하다가 도리어 성 다섯 개를 내주게 되었으니, 위의 입장에서 성 하나로써 오히려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 적잖은 땅까지 얻게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에 일본군은 어떻게 해서든 바닷길을 열기 위해 다시금 육군으로 하여금 호남으로 진격하도록 하는 한편, 이제껏 분산되어 있던 수군을 하나로 모아 연합함대를 결성하여 해적출신인 구키를 대장으로 일거에 조선수군을 격멸하고자 꾀하게 되었다. 이때 대장 구키 유키타카가 이끌던 함대가 42척,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끌던 함대가 73척, 모두 117척에 달하는 대선단이었고, 규모로만 본다면 모두 55척에 불과했던 조선수군의 두 배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본군의 기도는 벌써 사전에
결국
문제는 어떻게 와키자카의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까지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문제에 있어
그 뒤의 상황은 굳이 설명할 것이 없을 정도로 뻔하다. 와키자카의 73척 함대는 소수의 유인함대를 쫓아 한산도 앞바다로 들어왔고, 와키자카의 함대가 포착되자 섬의 그늘에 숨어 있던 조선수군의 판옥선이 모습을 드러내 와키자카의 수군을 포위하고, 그리고 거북선의 돌격에 이은 공격, 그리고 전멸. 사실상 전멸이었다. 73척의 전선 가운데 47척이 격침되고 12척이 나포되었으니. 겨우겨우 도망에 성공한 배가 겨우 14척, 이로써 연합함대를 결성하여 회전으로써 조선수군을 격멸하고자 했던 일본군의 의도는 철저히 좌절된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틀뒤인 7월 10일에는 안골포에서 구키의 함대가 다시 조선수군에 격파당함으로써 남해에서의 제해권은 완전히 조선수군의 수중에 들어온다.
다만 문제라면 부산포해전을 비롯 이후로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독일군은 연전연승 승승장구하며 기세가 오를대로 올라 있었고, 소련군은 연전연패 끝에 많은 병력과 물자를 잃고 겨우겨우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소련을 지배하던 독재자 스탈린의 이름을 딴 스탈린그라드도 독일군에 의해 함락이 임박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를 지키던 소련의 지휘관 추이코프는 매우 신중하고 인내심이 강한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그리고 후방으로부터 집결중인 병력과 장비를 동원해 크게 한 방을 노리고 있던 주코프는 대담한 전략을 구사하던 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었다. 별로 전략적 가치도 없는 스탈린그라드 공략에 히틀러가 집착하고 있을 때 주코프는 겨우 집결한 병력과 물자를 가지고 스탈린그라드를 지원하기보다는 스탈린그라드에 고착된 독일의 제 6군을 포위 섬멸하는 대담한 작전을 구사한다. 말하자면 스탈린그라드는 스탈린그라드를 공격중인 독일군에 내던져진 미끼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확실했다. 별 이득도 없는 시가전에 독일군이 묶여 있는 사이 주코프가 지휘하는 소련군은 독일 동맹군의 취약한 연결점을 공격하여 독일군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일군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꼼짝없이 스탈린그라드라고 하는 거대한 함정에 갇히게 된 뒤였다. 그 다음은 모두가 아는 대로. 6군은 그대로 고립된 채 고사당하다 마침내 항복하고 말았고, 코카서스까지 진출했던 독일군은 황급히 퇴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독일군으로서는 최초의 꽤나 치명적인 패배였다.
나중에 독일군이 소련군에 몰리게 되었을 때 히틀러도 스탈린그라드를 흉내내 각 도시에 소수의 병력을 배치하여 시가전을 동반한 방어전을 통해 소련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작전을 사용했었는데, 그러나 낚시줄이 부실하면 미끼만 따이고, 낚시꾼이 부실하면 낚시꾼까지 함께 잡아먹히는 법이라, 오히려 각 도시에 남겨진 병력들만 고립된 채 각개격파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포전인옥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된다는 교훈이라고나 할까?
구한말 구일본제국이 조선을 침략할 때도 먼저 차관을 제공하고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등 우호적인 얼굴로써 조선에 접근했었다. 물론 그때 구일본제국이 제공한 차관은 대한제국을 옭죄는 족쇄가 되었고, 일본에 유학한 유학파들은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동조하게 되었다. 한때 민족주의자를 자처했어도 결국은 민족개조론에 넘어가 친일파로 돌아선 이가 대부분이었으니, 투자한 이상을 거둬들였다 할 수 있겠다.
하긴 포전인옥의 가장 훌륭한 예로 아시아의 어느 나라의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겠다. 건설통도 아니고 기획계통도 아니다. 재정쪽을 맡다가 제왕적인 재벌총수의 눈에 들어 월급쟁이 회장이 되어 기업을 이끌다 끝내 그 기업을 도산에까지 이르게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단 큰 기업의 회장이고, 드라마도 나오고 자서전도 나오고 이름도 제법 높아지고 보니 어느샌가 명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도시의 시장이 되었고, 막무가내의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추진되고. 그리고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눈에 대단하게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온 말 경제살리기. 경제대통령.
사실 대단한 업적이랄 만한 것도 없었다. 내놓은 업적이라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구멍투성이에 부실이 부스스 떨어져 내리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이미 해 놓은 것이 있고, 내세울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근거로 떠들 수 있는 프로파간다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 나라의 국민들은 세세한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르고 뭐가 자세한 어떤 내용이 있는가도 모르고, 그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믿은 거다. 어리석은 자를 다스리는 것은 미끼로써 유인하는 것이라, 그로써 근래 보기드문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예가 어디 있을까.
물론 포전인옥에는 이런 살벌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포전인옥의 풀전이 되는 조하와 상건의 고사와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더 아름답고 생산적인 포전인옥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브레인스토밍이다. 브레인스토밍의 원리는 간단하다. 아무거나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것을 다른 아이디어가 보완하고, 그 보완한 것을 다시 비판하여 헛점을 찾고, 헛점을 다시 다른 아이디어로서 보완하고, 그렇게 작은 의견 하나가 수많은 생각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어떠한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그야말로 제로에서 유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씨앗 하나가 열매만큼이 되고 함지만큼이 되고 나중에는 산만큼이 되고 땅떵이만큼이 되어 가는 그것이 서로 머리를 모아 계획을 짜가는 과정인 것이다.
굳이 어떠한 형식을 갖출 필요는 없다. 사람은 많고 아이디어도 그만큼 많으니까. 일상의 대화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작은 의견이나 아이디어로서 더 큰 의견과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그로써 더 큰 성과를 이루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고, 그로부터 돌아오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주의깊게, 그러나 대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의견을 내기도 두려워하고 남의 의견을 듣기도 꺼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포전인옥이란 결국 낚시다. 세상일이란 어디에도 결코 공짜가 없다. 모든 것에는 댓가가 필요하고 댓가 만큼 결과도 돌아온다. 낚시 역시 마찬가지다. 떡밥을 뿌려 그 냄새로써 물고기를 유인하고, 미끼를 꿰어 물고기로 하여금 미끼가 꿰인 낚시바늘을 물도록 하고, 그리고 마침내 낚시꾼은 낚시대를 당겨 물고기를 낚게 되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예 미끼조차 없이 가짜미끼로 물고기를 낚는 루어낚시라는 것도 있지만 원래 미끼라는 것이 물고기를 먹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낚고자 하는 것이고 보면 이 역시 훌륭한 미끼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물고기를 낚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적당한 미끼를 던져 유인하는 것, 그러면서도 물고기가 미끼를 물 때까지, 깊이 물어 다시는 뱉어낼 수 없을 때까지 신중하게 기다리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기다리면 물고기는 미끼만 물고 그대로 도망가 버린다. 신중하되 대범해야 하고 치밀하되 유연해야 한다. 미끼를 아까워해서도 안되고 미끼를 너무 함부로 써서도 안 된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강태공의 마음이야 말로 포전인옥의 요체일 것이다. 병법삼십육계의 열일곱번째 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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