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學산책

[스크랩]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와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

kongbak 2012. 1. 6. 14:13

 

 

양자물리의 기초를 만든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이중성의 양립에 관한 완벽한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상보성complementarity이라고 불렀다.

 

이 개념은 '완전히 채우다'라는 뜻의 라틴어 콤플레툼completum에서 유래했다.

 

 

                       

     A.  <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 >

 

 

                        -  글쓴이 : 소광섭(서울대 교수·물리학)

 

 

1. 머리말

상보성 원리는 보어가 1927년에 양자역학의 해석을 위한 틀로 도입한 개념인 바,

원자현상의 입자-파동 이중성 및 위치-속도 측정의 불확정성 등을 이해하는 인식론적 바탕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 원리는 물리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현상과 사회현상 등에까지 광범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지혜이며 조직의 원리라고 까지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신체의 제어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상호대립적으로 작용하지만,

또한 둘이 다 있어야만 완전해지는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다른 예로 거의 모든 동물들은 눈과 귀를 상보적인 정보창구로 갖추고 있다.

눈과 귀는 상보적이긴 하지만 상호 대립적인 측면은 없으므로 적절한 예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묘하게도 빛에 의존하는 눈은 사물을 주로 입자적 형태로 파악하고

(이유는 빛의 파장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귀가 의존하는 소리는 파동의 형태로 정보를 전달해준다.

그래서 눈과 귀는 물리학의 입자와 파동을 이용하는 적절한 예로 볼 수 있다.

보어는 그의 상보성 원리를 빛을 이용한 치료사들의 모임에서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물리학 밖으로의 이 원리를 확대한 첫 대상으로 생명현상을 고려했었다.

 그 후, 중국의 음양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태극도를 집안 문장으로 삼기도 했다.

이 글은 이 순서를 따라 먼저 상보성 원리를 보어의 전기에서 간추리고 요약하여 설명했고,

이어 생명현상에의 적용을, 끝으로 음양사상과의 관련성을 논의하였다.

2. 상보성 원리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행렬방정식을 발견한 후 이것으로 원자세계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실험적으로 예측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원자 현상들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막연하고

때로는 절망스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코펜하겐에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몇 달씩 집중적인 논의를 계속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지친 나머지 논의를 잠시 중단하고, 1921년초 보어는 부인과 함께 노르웨이로 스키를 갔다.

2주간의 스키여행 후 원자세계의 역설적 수수께끼들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해법을 갖고 코펜하겐에 돌아온 보어는 이른바 '상보성'(Complementarity) 이란 개념을 도입하였다.

돌아오자마자 하이젠베르크를 찾은 보어는 거의 두 달 동안 끊임없이 토의와 연구에 몰두하였다. 각종실험 상황에 일일이 적용하여 이 아이디어의 적합성을 검토해보아야만 했다. 날카로운 비판력으로 특히 유명한 파울리(Pauli)와도 연락을 해가면서 상보성 가설의 문제점이 있는지를 빈틈없이 따져나갔다.

그 해 봄이 되어 '상보성 원리'의 이론이 완성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디락 (Dirac)은 "물리학자의 세계관에 대한

굉장한, 어쩌면 사상 최대의 변화를 몰고 왔다." 라고 말했으며,

오펜하이머(Oppenheimer)는 '인류의 사상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 이라고 표현했다.

'상보성 원리'는 쉽게 말하자면 원자 세계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두 종류의 상반되는 명제가 동시에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서로 모순되는 두 관점이 상호 보완적으로 합쳐서 사용할 때에

원자 현상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호 모순이면 둘 중의 하나만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으로 버려야 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논리인데,

 이것이 미시 세계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우리의 지식 활동의 기본 문법인 논리가 무너지는 듯한 감을 주는 것이다.

상보성 원리는 입자-파동의 이중성에 대한 인식론적 이해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고전물리의 개념틀에서 보면 입자와 파동은 상호 배타적이어서 하나의 현상에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자 현상은 역설적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전자는 입자로 행동한다. 전자는 공간상의 한 점을 차지하며, 이 점에 에너지-질량이 모여있다.

텔레비전의 스크린상에 그림을 그려내는 것은 전자가 부딪칠 때 형광을 내는 것이다.

스크린을 확대해 보면 전자 하나하나가 부딪치어 점광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전자가 입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자들간의 충동실험을 해보면,

당구공들의 충돌처럼 에너지와 운동량이 바뀌는 것을 보아도 역시 입자임을 알게 된다.

한편 드브로이 파동이나 쉬뢰딩거 방정식이 보여주듯이 전자는 파동임을 의심할 수 없는 측면들이 있다.

파동의 가장 극명한 실험은 간섭 현상인 바, 두 개의 파동이 만날 때 나타나는 물결 무늬의 모양들이

전자의 실험에서도 뚜렷이 관찰되는 것이다.

보어는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개념이 서로 상반되지만 이 둘을 다 써야만 원자세계의 이상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입자성과 파동성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란 것이다.

보어의 말을 빌리면 "처음 보기에 입자와 파동 현상들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일지라도,

 원자세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일상적 언어로 애매모호함이 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둘 다를 상보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상반되는 양측면을 함께 잡아야만 미시세계의 경험을 제대로 기술할 수 있으면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예측은 고전물리에서와는 달리 확률적으로만 할 수 있도록 특성이 달라지긴 했지만.

상보성 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원리는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 이다.

전자나 광자같은 알갱이들은 위치와 속도(또는 운동량)을 정확히 측정함으로써 상태를 알 수 있고,

방정식에 따라 그 후의 상태를 계속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고전물리학적 자연지식체계의 기저를 이루고 있었다.

원자현상에서, 예를 들어 수소 원자에서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계속 추적하여 궤도를 그려낸다는 것은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을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측정하는 실제적 실험을 분석해봄으로써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한계를 수치로서 표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불확정성 원리이며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확정 원리가 수학적인 진술인데 반하여, 상보성 원리는 철학적이고 포괄적인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확정성 원리를 이해하는 인식론적 틀을 제공한다고 볼 수도 있다.

알갱이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행위와 속력을 측정하는 행위가 서로 방해되는 때문에 동시에 엄밀히 측정할 수 없지만, 이 알갱이에 관한 지식은 두 요소의 정보가 함께 있어야 완전하게 되므로 이들은 상보적 관계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위치에 관한 지식과 속도에 관한 정보가 서로 보완적이란 뜻이다.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입자와 파동, 위치와 속도 등 상반적인 개념과 량들을 종합하여 원자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자연에 관한 우리의 지식체계의 혁신을 가능케 했다.

상보성은 자연법칙에서 요구되는 필수불가결의 논리적 도구가 된다고 그는 보았다.

보어가 그의 상보성 원리를 처음 발표한 것은 1927년 9월 이태리의 코모호수 (Lake Como)에서

볼타(Volta)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물리학회의에서 였다.

그의 발표 논문제목은 "양자가설과 원자이론의 최근 발달상황" (The Quantum Postulate and the Recent Development of Atomic Theory) 이었는데 물리학적이면서 철학적인 논문이었다.

슈뢰딩거(Schrodinger)와 폰라우에(Von Laue)는 보어의 해석이 설득력도 없고, 결정적 결론에 이르지도 못했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회의에는 없었으나 곧이어 개최된 (1927년 10월)

 '제 5차 솔베이 물리학회'(the Fifth Physical Conference of the Solvay Institute)에서

 양자물리의 인식론적 측면에 대해서 보어와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아인슈타인, 쉬뢰딩거 등은 보어의 상보성원리나 불확정성 원리가 제시하는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았다. 그것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바탕인 확실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었던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의 통계적 특성은 물리계에 대한 불완전한 기술(記述)에 기인함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상보성 원리를 부정할만한 가상 실험상황들을 제시했고,

보어는 그때마다 날카로운 분석으로 확률해석의 타당성을 입증해보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자연의 실재성과 물리계의 완전한 파악에 대한 그의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양자역학 해석에서 확실성과 확률성의 이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3. 상보성 원리와 생물학적 비유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물리학적 진술보다는 철학적 진술에 더 가깝기 때문에 양자물리의 계속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물리학 밖의 과학철학 등에서 더 많이 논의되어 왔지 않나 싶다.

1932년 8월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빛치료법에 관한 국제학회" (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Light Therapy)의

개막연설에 초대된 보어는 '빛과생명' (Light and Life)란 제목으로 상보성 원리의 의학에의 적용을 시도했다.

생명이 없는 물질만을 다루는 물리학자가 생명에 관해서 논한다는 것이 상당히 위험스런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물질과 생명을 완전히 분리해서 보는 시대는 이미 종언을 고할 때가 됐다고 느꼈던 보어는

 '빛치료사'들의 모임에서 연설할 용기를 내었다.

여기서 그는 일반인들에게 상보성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빛은 일종의 파동 현상이다. 그런데 어떤 물리실험에서는 빛이 입자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역설적 상황은 물리학 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물리학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광량자 하나의 궤적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조사하려는 광량자의 운동에 관찰행위가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 현상에 관한 완벽한 지식을 얻으려는 생각은 포기할 수밖에 없으며, 오직 확률적 정보를 얻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설명은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과학사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 필수 불가결한 것처럼 보이던 개념의 근본적 한계를 인식하게 되면
그때까지 상호 배타적으로 보였던 현상들의 합리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더 광범하고 강력한 새로운 관점이 얻어진다.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생명현상의 연구에 비유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을 시도했다.

상보성 원리의 인식론적 의의를 관찰행위가 대상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정보획득의 한계에 있다고 본 그는

 생명체의 관찰에서도 유사한 한계가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과정을 철저히 분석해내려고 하다 보면

조직을 절단하고 죽은 샘플로 만들 수밖에 없게 되며,

이것은 결국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무생명의 물질을 연구하는 것이지 생명체를 연구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생명의 고유한 특성을 연구하려면 생명체의 계를 살아있도록 유지해야 되고

그러려면 물리화학적 구조와 과정에 관한 정보획득을 위한 관찰은 제한되게 마련이다.

이것은 원자의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서 본 구조를 완벽히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유사하게

생명현상 고유의 물리화학적 과정에서도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 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보어는 이 비유가 심리학적 관찰의 경우 더 잘 들어 맞는다고 했다.

원자물리에서 관찰대상(원자)은 관찰도구 (빛)의 작용에 의해서 근본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관찰되기 전의 원자 자체를 알 수도 없고 따라서 논할 수도 없다.

심리분석에서도 질문이나 조사행위 자체가 그 사람의 정신이나 생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관찰이전의 심리 상태를 알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상보성 원리가 제시하는 관찰의 한계에 대한 인식론적 의의는

생물이나 심리문제에 까지도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 국제 빛치료사 회의에서 청중들의 반응은 실망스러울 정도였으며,

전혀 이해를 못한 가운데 예의상 박수를 쳐준 정도였었다.

그러나. 이 강연이 전혀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날의 강연장에는 코펜하겐 연구소원이었던 델부르크(Max Delbruck)란 독일의 젊은 물리학도도 참석했는데

 그는 이 강연에 깊은 인상을 받아 강연 원문을 얻어 자세히 공부를 했다.

그는 생물학 연구로 방향을 바꾸어 세계적 명성을 얻게끔 되었다.

이 강연후 30년쯤 지났을 때 델부르크가 꼴로뉴의 '유전학 연구소'(the Institute of Genetics in Cologne)를

 창설하면서 개소식 연사로 보어를 초청하여

'빛과 생명-재고찰' (Light and Life-Revisited)의 강연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4. 음양과 상보성 원리

보어는 그의 과학적 업적과 덴마크 문화생활에 미친 공로를 인정 받아 귀족 작위를 받게 되었는데,

귀족 가문의 문장을 선정함에 있어서 방패에 태극도를 그려넣고

그 위에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 (CONTRARIA SUNT COMPLEMENTA)란 문귀를 새겨 넣었다.

이것으로 그가 상보성원리를 자신의 삶과 학문을 대표하는 철학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고,

 또한 그가 동양사상 특히 주역과 음양에 크게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어는 1937년 중국을 방문하였고 이때 음양사상에 감명을 받았으며

 이것이 그가 동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상보성의 개념은 음양사상의 물리학적 적용이라 할 수 있고 뒤집어 말하면 음양사상은 상보성 원리를

일반화하여 모든 자연현상, 나아가 모든 인간 문화생활에서의 본질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어 보이는 두 요소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는

전래의 음양사상이 현대물리학에서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은 놀랄만한 점이라 하겠다.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해석 원리가 곧 상보성이라 할 수 있겠다. 입자-파동, 위치-운동량 등 현상인식을 위한

 개념의 짝이 상호 대립적이면서 서로 보완적으로 둘 다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음양사상에는 입자-파동, 위치-운동량 같은 물리적 개념이 적용되기에는 약간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그보다는 동과 정, 열과 한, 남과 여, 팽창과 수축, 밝음과 어둠 등 논리적으로 상반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의

 역동적 조화에 더 관심이 모아졌다고 보겠다.

따라서 사물의 인식과 지식에 관한 한계보다는 사물존재의 특성을 파악하는 원리로서 음양사상의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상보성 원리와 음양사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상보성 원리를 물리계의 관찰에 수량적 표현을 한 것이 불확정성 원리이고, 이 후자에 바탕하여 구성한 수학적 방정식 체계를 양자 역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양자역학을 생명현상에 응용하면 유전 인자들의 복제 기작이나

돌연변이의 확률 등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나란하게 음양사상도 구체화의 과정을 밟을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데로 써보면 음양사상의 기호적 구체화가 주역이 되고,

이 주역의 인체에 적용이 한의학이라 할 수 있을까? 즉, 다음과 같은 비교가 성립할 수 있을까?

수식화
상보성 원리 ---------------→ 양자역학 ------------→ 분자생물학

기호화
음양 사상 -----------------→ 주역 ---------------→ 한의학

음과 양을 이진법적 기호내지는 숫자로 파악하면 주역은 단순히 2의6승=64 개의 기호의 복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천년을 두고 주역을 연구하고 그에 빠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옴은 무슨 연유일까?

이에는 무엇인가 깊은 진리가 숨어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이를 알아내려는 것은 마치 상보성 원리와 파동함수 기호를 받은 원시인이

그로부터 양자역학을 명상으로 얻어내려는 일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한편 그 사람이 상보성 원리와 분자생물학적 법칙을 받았다면 어쩌면 양자역학을 찾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런지도 모르겠다. 같은 맥락에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면,

음양사상과 한의학의 지식으로부터 주역의 숨은 진리를 밝혀낼 수 있을 런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경우는 주역을 열심히 공부하면 한의학까지도 문리가 트인다고 하는데,

그 반대로 한의학을 합리적으로 이해한다면 주역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제안해 보는 것이다.

상보성 원리나 음양사상은 자연과학이나 의학에 한한 것이 아니라

넓게 경제, 문화, 사상 등에 까지도 그 함의가 논의될 수 있다.

한 예로 이명현 교수(서울대 철학과)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상호 배타적인 관계 속에서만 이해되어 온 부분과 전체의 근대적 범주도 이제 설 곳이 없어졌다.

 그것은 전체의 구조를 내재한 부분(개체)과 전체의 구조를 인식하는 개체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의 근대적 형이상학적 개념은 현실적 적합성이 없다.

자유는 개체의 활성화의 원리로, 평등은 전체의 균형의 원리로 탈바꿈 되어야 한다.

욕망의 대상을 무제한하게 획득함으로써 삶의 기쁨을 추구하던 소비 지상주의의 삶의 철학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자연이 더 이상 인간의 삶의 보금자리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연이 숨쉴 때 인간이 웃을 수 있다.

 독존과 유아의 문법은 청산되어야 한다.

 삶의 질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근대적 경성 국가 (硬性國家)가 사라져가는 국경 없는 세계경제 시대에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문법이 요청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들의 관계가 지배와 종속, 정복과 투쟁의 관계가 아니라

맞물림의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음양은 맞물림의 전형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대적 모순과 부정의 사유로부터 벗어나 맞물림의 관계를 통한

더불어 있음의 새로운 차원의 사유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  글쓴이 : 소광섭 (서울대 교수·물리학)

(참고 문헌)
1. Niels Bohr : The Man, His Science, and the World They Changed by Ruth Moore, The MIT Press, 1985
2.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 카프라 지음, 이성범·김용정 옮김, 범양사 출판부, 1989
3. 송희성 : 양자역학, 교학연구사, 1984
4. 근대성과 한국문화의 정체성, 기조 발제 (이명현), 철학연구회편, 1996.

 

 

 

 

B. < 양자 역학과 카오스 이론 >

 

 

질서와 혼돈은 서로가 상보성을 가진 말이다..
Cosmos(질서) 와 Chaos(혼돈)는 우주을 지탱하는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질서가 오래되면 혼돈이 생기고 혼돈이 생긴뒤에는 질서가 생성된다.
이런 수 많은 반복을 하면서 인류는 조금씩 진화한다.
보수와 개혁이란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먼저, 물리학에서 카오스이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 고전물리학에는 뉴우튼의 F = ma 공식이 있다.
둘째, 근대물리학에는 아인쉬타인은 상대성이론 E  = mc ( 자승) 이 있다.
세째, 여기에 대응하는 닐스보어의 상보성 이론이 등장한다.
네째, 한단계 더 발전한 하르젠버그의 불확정 이론이 등장한다.
즉 자유전자가 공간속에 분명히 있긴 있데, 불확실하게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 세상은 불확정성 이론때문에 통계가 많은 것을 결정하는 방법이며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한단계 더 들어가 양(성)자역학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소립자이론인데, 이것은 더 이상 쪼갤수 없는 쿼크를 말한다.

소립자의 세계를 완전히 미분해 보니, 물질이 되었다가 에너지로 다시 되고 이런  운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즉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과 같은 원리이다.

이 쿼크는 세가지 색으로 되어있는데 신기하게도 적청황의 삼태극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워낙 빨리 회전을 하고 있어 뿌연 연기처럼 회색으로 보인다.

 

 

 

C. 세계는 연기〈緣起〉의 망 속에서 형성되는 전체
 
 

양자역학의 기초마련에 결정적 역할
유명한 보어-아인슈타인 논쟁 촉발
“변함없는 자성 지닌 독립실체 없다

 

보어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1885년에 태어났고 77세의 나이로 1962년에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코펜하겐대학의 생리학 교수였고, 그의 동생은 수학자이면서 덴마크 국가대표 풋볼 선수였으며

닐스보어도 풋볼을 굉장히 좋아해 두 형제는 같은 클럽에서 경기를 했다고 한다.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고 두 자녀는 어려서 죽었으나 나머지 넷은 훌륭하게 자랐으며,

그 중 아게 닐스 보어(Aage Niels Bohr)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7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며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철학자 회프딩을 통해 키에르케고르의 저작을 읽었으며, 양자역학의 기초와 양자역학의 철학적 해석에 전념했던 보어의 철학과 과학은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1903년에 입학한 코펜하겐대학에서 처음에는 철학과 수학을 공부했으나, 1905년에 덴마크과학문학학술원이 주최하는 대회에서 표면장력의 성질에 관한 일련의 실험으로 입상하면서 철학을 그만 두고 물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1911년에 크리스티안센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박사후 연구원으로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저명한 물리학자 톰슨과 연구하려 하였으나 미숙한 영어와 톰슨의 무관심 등이 겹치면서 러더포드와 연구하기 위해 맨체스터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1913년에 러더포드의 이론을 근간으로 원자구조에 관한 모형을 제안했으며, 이는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에 관한 실험적 사실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보어의 원자모형에는 전자 궤도와 전자 에너지 준위의 양자화, 빛 에너지의 양자화, 전자와 빛의 상호작용에 의한 에너지 흡수와 방출 등의 가설이 포함돼 있다. 이는 빛의 복사 이론을 원자모형과 연결시킨 것으로서 고전양자론(Old Quantum Theory)이라고 불리며 나중에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는 것이었다.


보어는 1916년에 코펜하겐대학 교수가 되었고 1921년에 이론물리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이 되었으며, 1922년에 원자구조와 원자에서 방출되는 에너지 연구에 대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보어가 설립한 코펜하겐의 이론물리연구소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이론물리학의 세계적 중심지였으며,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하여 그 당시 세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 대부분은 이곳을 거치면서 보어와 공동 연구를 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양자역학은 흑체복사를 설명하는 프랑크의 가설(1900)에서 시작하여 아인슈타인의 광량자설(1905), 보어의 원자모형(1913), 드브로이의 물질파 가설(1924), 파울리의 배타원리(1925), 보른, 하이젠베르크, 요르단 세 사람이 발전시킨 행렬역학(1926), 슈뢰딩거의 파동역학(1926), 디락의 상대론적 양자역학(1930) 등 아주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양자역학은 지금까지 인류가 가졌던 자연에 대한 이론 중 가장 정확하게 자연을 기술하는 이론이며, 현대물리학의 거의 모든 부분과 관련되는 기본 이론이기도 하다. 정확성과 보편성을 두루 갖춘 자연과학이론이지만, 이에 대한 철학적 혹은 세계관적 해석은 지금까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물론, 양자역학이 다루는 대상이 극히 미시적인 것이어서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환경과 아주 다르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런 미시세계에서 비롯된 반성적 사유가 우리 삶의 공간인 거시세계와 크게 연관되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거의 느끼지 못하는 무상(無常)을 죽음이라는 삶의 특수한 체험을 통해 느끼지만, 이 죽음에서 비롯된 무상이라는 반성적 사유는 결국 일체가 예외 없이 무상하다는 보편적 사유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보어에서 시작된 양자역학이 암시하고 있는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양자역학은 우리가 지니는 세계관에 대해 여러 면에서 근원적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 글에서는 중첩과 측정, 얽힘 상태, 이중성과 상보성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영향 받아


양자계의 특이한 점은 거의 대부분 양자상태가 중첩상태이기 때문이다. a와 b라는 두 가지의 가능한 상태가 있다면 a와 b의 중첩상태도 또한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중첩의 원리인데, 이는 양자역학의 기본 가설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상태와 식당에서 밥 먹는 상태가 가능하다면 이 두 상태가 겹쳐져 있는 상태도 가능하다는 것인데, 거시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양자계를 기술하는 양자상태는 언제나 중첩상태다.


중첩상태에 대해 측정을 하면 그 중의 어느 한 상태로 측정결과가 나타난다. 타석에 선 야구선수의 상태는 범타와 1, 2, 3루타, 홈런의 모든

 가능성을 지니는 중첩상태지만 공을 치고 난 상태는 그 중의 어느 하나가 되는 것과 비교될 수 있으며, 이는 측정이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 도모나가는 양자계를, 누가 보기만 해도 부끄러워서 행동이 달라지는 수줍은 처녀와 같다고 했다. 은행잔고를 알려고 하는 바로 그 행동 때문에 은행잔고가 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측정에 의해 측정 대상이 변한다는 일은 일상의 이상적인 측정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보어가 속한 코펜하겐 학파는 측정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양자역학은 측정결과의 확률만을 알려주며 이것만으로도 양자이론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양자계는 근본적으로 확률론적이라는 입장이다. 보어와 달리, 물리이론이 확률적이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인슈타인은 보어와 생각을 달리 했고, 유명한 보어와 아인슈타인 사이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달이 떠 있듯이, 사물은 관찰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신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아인슈타인의 실재성(實在性, Reality)이라고 하는데, 물리이론은 마땅히 이러한 실재성을 완벽하게 드러내야 하며 그렇지 못한 양자역학은 불완전한(incomplete)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Einstein, Podolsky, Rosen 세 사람은 논문(EPR논문)으로 발표했으며, 이는 아마 물리학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논문일 것이다. 이 논문에서 사용한 양자상태를 ‘EPR 상태’ 은 ‘얽힌(entangled)상태’라고 한다.


이론 물리학자 벨은 1965년에 아인슈타인의 실재성이 옳다면 자연현상이 만족해야 하는 부등식, 벨의 부등식을 만들어 냈다. 이에 대한 정교한 실험적 확인은 1982년에 이루어졌으며, 이 실험에 의하면 벨의 부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실험결과는 양자역학이 예측하는 것과 일치하였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믿었고 우리의 상식과도 일치하는 실재성이 옳지 않으며, 양자계의 측정 결과는 측정 대상 자체의 속성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강한 상호 연관의 망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는 자신의 변화하지 않는 자성(自性)을 지니는 독립된 실체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과 상호연관이라는 연기의 망 속에서 형성되는 전체라는 것을 엿보게 해 주는 대목이다.


양자계의 특성 중 주목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二重性, duality)이다. 이중성이란 파동이라고 생각했던 빛이 입자의 성질을 보이기도 하고 입자라고 생각했던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보이기도 하듯이, 모든 물체가 파동성과 입자성의 두 가지를 모두 보이는 것을 말한다. 고전역학에서 파동성과 입자성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어서, 이런 현상은 양자역학의 기초를 만들었던 물리학자들을 당혹케 하였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구축하려 했던 보어는 모든 물체는 입자성을 더 보일 수도 있고 파동성을 더 보일 수도 있으며

이 두 성질이 서로 보완적이라는 상보성(complementarity)을 제시하면서 이를 우주의 기본적인 성질이라고 보았다.


 

“실체 없기에 물리학은 확률적”


이중성은 기본적으로 고전역학에서 빌려온 파동-입자의 개념이 양자계를 기술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나 개념이 사물을 기술하는 데에 부적합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와 개념이 사물을 기술하는 데 적절치 않다면,

 언어와 개념을 통하지 않고 대상을 파악할 수 없는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은 과연 무엇인가.


시인은 총알로는 순수의 표상인 한 마리의 새를 포획할 수 없다고 노래한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새)

 

  우리는 언어와 개념의 총알로 포획할 수 없다는 한계를 모르고,

  내가 보는 그 모습 그대로의 속성을 사물이 지니고 있다고 믿으면서 실체성에 속고 있는 것 같다.
 
   -  양형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D. 불확정성 - 양자물리학 혁명의 연대기 그리고 과학의 영혼을 찾아서

 

                                                -   데이비드  린들리   /  박배식 역   / 시스테마

 

 

 

1927년, 젊은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수세기에 걸쳐 인류가 신봉해 온 과학적 이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양자역학의 급진적 혁명을 수립하고, 물리 측정에서 다른 정보를 포기함으로써 오로지 하나의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했는데,

 이를 '불확정성' 원리라고 불렀다.

과학적 양 혹은 개념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독립적 의미가 없고 그것을 측정하는 실험 방법에 의해 의미가 획득된다는 것이다.

과학이 물리적 세상을 한없이 정확하게 밝혀줄 것이라는 생각을 송두지째 뒤엎는 이 주장은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이 책은 과학 역사에서 가장 의미 깊은 발견의 하나인 양자론이 어떻게 태동하고 진화했는지를 연대기적으로 엮어,

그 과정에서 격돌했던 과학 개념들과 과학자들의 인간적 개성을 동시에 보여 준다.

 이성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불확정성원리가 오류임을 증명하려 했던 아인슈타인과 불확정성원리를 확신했던 하이젠베르크의

대립의 이야기가 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현대 과학의 최대 이슈를 흥미롭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확실성의 종말
20세기 초반 인류의 집합적 세계관에 대변혁을 일으킨 사건과 사건의 주역들에 대한 이야기

 



일반인들의 귀에도 낯익은 아인슈타인의 ‘나는 신이 주사위놀이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나 ‘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바로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 이론과 관련된 것이다. 양자론의 불확정성원리만큼 그 개념이 물리학 바깥 영역에서도 애용되는 과학이론은 없을 것이다. 이는 양자론과 다른 지식 사이에 어떤 공통점, 유사성, 연결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분법적 틀을 깨고 다변적이고 복합적인 가능성을 제안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불확정성원리의 개념과 연관지어지곤 한다. 라캉이나 데리다의 정신분석학, 철학에서도 불확정성원리는 은유적 호소력을 갖는다. 문학비평, 언론학, 인류학에서도 불확정성의 원리는 애용되고 있다. 불확정성원리를 세운 하이젠베르크 자신도 자서전 『부분과 전체』에서 “불확정성이라는 과학 원리가 인간의 정신과 현실 사이의 관게를 규명하는 데 보다 넓은 조망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확정성은 과학의 날카롭고 확고한 객관성과 진실성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하여 과학에의 접근을 이전만큼 어렵지 않게 만들어준 것 같다. 서강대학교소광섭 교수는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2005, 면도날)에서 “불확정성원리는 물리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현상과

사회현상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지혜이며 조직 원리라고 할 수 있다”라고 쓰기도 했다.

불확정성 원리는 엄밀하게 유도된 수식이다
양자역학의 핵심적인 개념의 하나인 불확정성원리는 미시세계에 대한 자연법칙으로, 불확정적인 이론이 아니라 수많은 실험을 통해 옳음이 증명된 확정적 이론이다. 레이저, 전자현미경, 트랜지스터, 원자력 등은 모두 양자론으로 가능하게 된 유용한 기술들이다. 불확정성원리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유도된 수식이다. 이 수식에 따르면 전자의 속도를 측정하려면 전자의 위치를 확정할 수 없고, 위치를 확정하려면 속도가 불확실해진다. 우리의 측정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연 혹은 입자의 성질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속도와 위치가 확정적이 아니면 전자는 어떤 공간 범위에 퍼져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것은 여기 있는데 앞으로 어떤 속도로 어디로 갈 것이다’라는 확정적인 말을 할 수 없고 통계확률적 가능성만 말할 수 있다. 정확한 인과율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 같은 양자체계는 결정론적 고전과학의 철통 같은 개념을 깨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당시 과학자들은 당혹해했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의 수식이 실험결과와 정확하게 맞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유용한 일이 무한히 많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형이상학적 철학적 의미 같은 데 신경쓸 시간도 이유도 없다.)

20세기 혁명적 물리 원리를 둘러싼 과학 천재들의 격돌!
다른 과학이론들과는 달리 양자역학은 많은 여러 천재 과학자들에 의해 20여년 간에 걸쳐 극적으로 완성되었다. 이 책은 양자역학의 혁명적 원리가 발전되는 과정을 과학과 수학에 약한 독자들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이 혁명을 둘러싼 인물들의 삶과 사상까지 멋지게 담아낸다. 과학철학, 과학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 양자역학 분야에 대해 알아보려는 독자들에게 이 분야에서 그동안 쓰인 책들 중 가장 적합한 입문서일 것이다.

하이젠베르크, 고전물리학의 기초를 흔들다!
1927년, 고전물리학에 아무런 미련도 없었던 젊은 학도 하이젠베르크는 혁명적 과학 원리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19세기까지 인류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믿어왔던 과학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즉 모든 움직이는 물체는 위치와 속력을 갖는다, 모든 물리 세계는 명백한 원인과 결과에 의해 움직인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정확한 기계로서 알 수 있는 것이며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알려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하게 숫자를 이용하여 기술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면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과학은 궁극적으로 결정론적이고 변하지 않는다, 라는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위치를 보다 더 정확히 알면 알수록 운동량은 그만큼 더 알수 없게 된다, 원자는 선재하는 원인 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자연은 오로지 관측 가능한 것으로만 예측할 수 있으며, 이는 확률과 통계로 표현된다! 이것은 과학이 우리를 둘러싼 물리세계를 정확하게 밝혀줄 것이라는 신념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하이젠베르크의 신념은 아인슈타인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아인슈타인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 하느님을 수시로 언급하며 이 급진적인 하이젠베르크의 새로운 물리 원리를 죽는 순간까지 반대했다. 또한 하이젠베르크의 스승인 보어는 이 원리를 고전물리 용어로 설명하기 위해 분투했는데, 바로 이 때문에 하이젠베르크와의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어느 세대에도 빚을 지고 있지 않다고 확신하는 자신의 새로운 원리가 고전물리 용어로 설명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불확정성원리를 둘러싼 이들 세 사람의 갈등을 주축으로 뭇 과학자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한판이 벌어졌으며, 그것은 현재까지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나는 차라리 구두 수선공이나 카지노의 일꾼이 되겠다!
데이비드 린들리는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불확정성이 태동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불확정성원리가 태동할 수밖에 없었던 19세기 여명기부터 이 새로운 물리 원리에 대한 20세기의 격돌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천재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와 생생하게 전달되는 그들이 남긴 말들이다. 이와 함께 불확정성원리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갈등이 어우러져,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마지막까지 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이론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나는 차라리 구두 수선공이나 카지노의 일꾼이 되겠다”라고까지 말했는데, 도대체 이 새로운 이론이 무엇이기에 아인슈타인 같은 대가가 그토록 번뇌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의 문외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양자역학 입문서
고전 질서를 와해하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을 만큼 급진적인 하이젠베르크, 한때 자신도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과학 혁명가였던, 그러나 이제는 고전 질서를 지키기 위한 노익장이 되어버린 아인슈타인, 고전 질서와 새로운 질서 사이에 가교를 놓으려고 철학적으로 부심하는 보어. 불확정성원리를 둘러싼 이 세 사람의 갈등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소설, 과학서,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하여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데이비드 린들리는 이 모든 장르의 작품들의 장점을 한 권의 책에 갖추었다. 따라서 물리학자 및 물리학 입문자는 물론이거니와 과학에 완전한 문외한인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주저 없이 책을 펼쳐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리학에 들어선 사람들은 과학자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며,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과학 자체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출처 : hosada
글쓴이 : 호사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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