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바흐

[스크랩] 우리 대통령 후진타오

kongbak 2010. 7. 27. 19:37

펌.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얼마 전 한국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아주머니의 식당에서 들은 이야기다.

연변에서 조선족과 중국인이 일대일로 싸우면 누가 이길까

지나가던 조선족은 잠깐 싸움 구경을 하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처럼 자기 볼 일 보러 가지만

지나가던 중국인은 마치 자기가 당한 일 인양 흥분하여 한 명이 지나가면

이대일 두 명이 지나가면 삼대일의 싸움으로 변한다고 한다.

60-70년대엔 조선족자치주에 사는 중국인이 10-20% 비율이었으나

지금은 과반이 훨씬 넘은지 오래라 한다.

 

그 때가 북경올림픽 전의 티벳봉기가 있었던 때인데 조선족 아주머니왈

티벳 탄압에 항의해 시위를 하던 황색승복 입은 사람들을

자기 조카(조선족)가 티벳 진압부대에 배치되어 있을 때 골라가며 쏴 죽였다며 자랑을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에 동화가 많이 되었나보다)

또 서울시내에서 티벳 탄압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에게 돌을 던진 중국유학생의 행동은 잘한 거라 말을 했다. 우리 중 반대의견을 제시하자 불같이 화를 내던 조선족 아주머니

자기 딸이 북경항공사에 취직했는데 한국국적을 버려야 하는 조건이 있어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딸이 얼마전 보내온 소식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감동되고 가슴이 떨려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한국국적을 버린 그 딸의 자식은 과연 자기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알기나 할까

연꽃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자신을 받쳐주는 푸른 잎이 필요하다.

간도,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구호가 있어도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정체성이 흔들리는 조선족의 현실을 보며 몹시 안타까웠었다.

한국에 있는 화교를 보자.

자기들끼리 팔아주기 자기들끼리 있을 땐 무조건 중국말 쓰기는 자연스런 일상이다.

중국도 선박 물량을 자국 기업에게 몰아주기 등 이런 경우가 외국에도 있겠지만

중국은 그것이 고대부터의 민족전통이다.

그들은 또한 필리핀 근해의 미스지프 산호초를 국제분쟁화 시켜 1995년 강제로 점령했으며

인도네시아 나투나섬 인근 유전의 영유권에도 개입했고

우리의 이어도도 서서히 자기네 땅이라 우기기 시작했으며

인도중국전쟁으로 150킬로를 인도로부터 빼앗았다.

일본과는 조어도분쟁 베트남의 스프래틀리제도 전체의 영유권문제도

79년 베트남중국 전쟁의 빌미가 되었을 것이다.

 

토인비는 그랬다.

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속성의 망상’에 눈이 멀어

자기네 문명이 인류사회의 최종 형태라는 명제를 신봉한다고...

  

북경올림픽 때 우릴 대하던 그들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88올림픽 때 미국과의 순간적인 감정싸움과는 근원부터가 다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중국지도부의 부추김 아래 내부 단결하여 한반도를 삼키는 노선이 이어질 것이라는 건

여러 논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석학 세뮤얼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은

지구촌 지식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야 하는 필독서지만,

거기엔 ‘기원 후 100년에서 400년 사이에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출현한 일본문화’라는 문장이 나온다.

  

‘제국의 미래’를 쓴 중국계 재미교포2세 에이미 추아 교수는

방대한 자료를 개연성 있게 편집해 제국의 흥망성쇠를 가장 치밀하게 다루었다는 찬사를 받지만

그는 책 중간에 한국은 고대 중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국의 일개 지방이라 기록하고 있다.

팍스 시니카의 색채가 옅은 재미교포2세가 이럴진대 중국본토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663년 백강전투 후 용산 미군처럼 실질적인 지배 없이 8년간 주둔만 했어도

백제가 진짜 중국땅인 걸로 인식하고 있으며

4군6진 등의 고대 한국의 북진정책은 자기들 땅이 조금씩 한국에게 잠식 당했다고 인식하게끔

중국의 젊은 세대는 교육 받고 있다.

  

모든 중국인들은 한국이 중국땅이 되어 하나의 성이 되길 바라고 동북공정을 통해 이루려고 한다.

독도문제는 발끈하면서 한국땅은 중국땅이라는 논리인 동북공정엔 아무도 흥분 안한다.

왜일까. 진시황이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유목민이라도 상관 없다.

그네들은 스스로를 황제족이라 생각하니까

은허의 갑골이 이미 유목민의 것이라는 게 판명이 났어도 그네들은 팍스 시니카다.

 

김유신과 화랑이 당과 잘 싸웠지만

서쪽에서 지금의 터키와 위구르인 돌궐족이 국경을 침범하였기에 본국으로 군대를 뺀 것이고

6.2 5때 세계의 눈이 한반도로 집결될 때 51년 신장지역을 침공해 옛 돌궐땅을 병합해 버린다.

하지만 우린 중국인의 시각에서 돌궐을 무슨 괴물 바라보듯 하며

우린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상종해선 안 될 부류로 취급하고 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만 사대적으로 북방민족을 바라보니

겪어보지도 않고 밉게만 보이게 우리의 시각을 키운 거겠지.

 

중국사서엔 고조선의 수도에 흐르던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송이나 원 등 역대 왕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적고 있지만

지금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잘못 오기한 걸로 취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에는 국민적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몽고도 13세기에 와서야 민족 정체성이 성립되었지만 중국은 진시황 이전부터 존재하였기에

그들의 고대 사서엔 진시황을 더러운 흉노로 기록했으며

유방을 정통 통일제국을 일으킨 최초의 수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1951년 육이오로 인해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릴 때

모택동은 8만5천의 병력으로 라싸로 진군을 명한다.

현 티벳정책에 대한 세계의 비난과 티벳인의 폭동은 다 부질없다.

반수는 죽이고 반수는 거란처럼 중국인으로 동화시켜 버리면 되기에

천장철도를 만들어 한족을 대거 이주시키나 보다.

 

또 관광산업을 위하여 포탈랍궁과 철도 주변만 민속촌식으로 티벳 고유의 가옥 형태를 허용하고

그 외 유서 깊은 건축물 우리로 말하면 불국사나 명동성당 같은 건축물이나 유물은 모두 파괴했다.

  

우린 일제시대 이유야 어떻든 군장성까지 오른 인물도 있었지만

중국은 티벳 현지에서 단 한 명의 티벳인에게도 말단공무원자리 하나 허락하지 않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에 티벳에서 봉기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수많은 티벳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1987년에 있었던 티벳봉기를 유혈진압한 장본인은 그 당시 그곳 수반으로 있던 후진타오였고

그들과 타협을 거부했던 건강했던 판첸라마는 5일 후 아무 이유 없이 심장마비사 했다.

그리고 세계언론이 아직 북경올림픽에 쏠려있을 때 그는 우리나라에 왔고

우리 정치인들은 그와 같이 사진 못 찍어 안달이 난 느낌을 난 받았다.

  

삼국지 대목 중 손견이 옥쇄를 주고 1,000명의 군사를 원술에게 청하지만

오히려 원술은 2,000의 원군을 준다.

5,000명의 손견의 군대에 동화되지 않기 위하여.

  

운남과 연변은 이제 중국인의 수가 월등해졌고, 티벳, 신장, 내몽골의 원주민도 인디언이 쓸려나가듯

중국인의 물결속에 쓸려나가길 그들은 내심 기대하는 걸까.

네팔왕은 티벳독립군에게 온정을 베풀었지만 새 왕이 등극하자 장쩌민은

팔과 인도의 갈등을 이용하여 크게 후원해주는 대신에 티벳독립군의 무장해제를 유도해 관철시킨다.

북한 같은 개차반 정부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중국지도부에서 방문해 큰 선물꾸러미를 풀고 가는 이유는 왜일까.

 

미얀마도 군사독재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음에도

매년초마다 중국지도부 인사가 돌아가면서 방문해 큰 선물보따리를 풀고 가

인구 800만의 미얀마에 1-2곳에 불과하던 차이나타운이 지금은 10곳 이상으로 불어났다.

티벳으로 한족이 이주하는 것과 너무 닮았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정권이 중국이 아닌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는 정통성 없는 군부지도자에게 있다는 것뿐.

 

중국이 개방을 했다 하나 언론통제는 세계7위로 북한과 비슷하고

고위공무원의 비리를 캔 기자는 구속에 더해 심한 외상을 입는다.

89년 천안문민주화운동 직후 삼엄한 분위기속에 총리 관저 앞에 파룬궁 회원 1만명이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한 게 발단이 되어 국가전복의 위험을 느꼈는지

파룬궁에 관련된 사람이 연행되었다 돌아오면 식물인간이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릴 정도로 고문을 받는다. 원리주의일까.

왜 그렇게까지 과민하게 대할까.

한낱 기체조일 뿐인데 체제붕괴에 대한 심각한 위기감이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부대개발은 중국의 국채를 유지하며 티벳, 위구르 이족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다.

 

유목민의 땅을 영구히 중국땅으로 만들려는 수천년동안 내려오는 이민족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우린 이명박정부 휘하 기업들이 참여하길 희망하는 그 사업의 의도를 파악하고

하루 빨리 모든 기업이 그곳에 대한 관심을 접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서부대개발은 서쪽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동북공정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말에 원자바오 총리가 대표단을 끌고 청와대를 방문해 회담을 하며

우리는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걸 강조하며 지나치게 분위기를 띄운다. 왜?

그 당시 동북공정, 교과서문제 등 시끄러운 때이고 우리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제스처일 뿐이다.

2009년 간도협약 100주년을 얼마 안 남긴 시기이기도 했다.

 

또 후진타오 총리는 이명박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첫 중국방문 때

하고 많은 유적지 중 건륭제 현판을 보여주었을까.

그리고 그를 중국인이라 호칭했을까.

건륭제는 중국인이 아닌 우리와 같은 동이인 만주족이었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우리 대통령이 웃는 것 이외에 무얼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모든 행동의 초점을 은연 중에 동북공정에 맞춰놓고 있다.

동북공정은 한국의 역사를 사라지게 하는게 목적이고

역사가 사라진 민족은 주변민족에게 흡수되는 전철을 밟을 뿐이다.

 

이성계, 인조가 집대성한 새끼중국인 사상인 소중화사상의 신봉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상실된 자리에

중국인의 전통인 장자 세습, 과부의 재가금지, 남존여비, 시집살이, 항렬따지기가

언제부터인가 가보로 전승되고 있다.

  

조선 건국 후 우린 무엇을 부탁한다는 주청사를, 그들은 아랫사람을 훈계한다는 칙사를 보냈다.

무얼 그리 청할 게 있던가.

려말의 간신 이인임이란 자의 아들이 이성계라는 잘못된 문구를 고쳐달라고 180년간 통사정을 하고

임란 20년 전 선조 당시 그들이 조선의 청을 들어주었기에

선조는 임란 때 조선의 복식과 제도는 모두 대명의 것이라 비굴한 모습을 보였던가.

 

기마 1만만 있으면 세계를 정복할 자신을 과시한 누루하치가

임란 직후 3만의 기마대를 댓가 없이 지원한다 했지만 선조는 더러운 오랑캐라 하여 이를 거절하고

왜군보다 민초들에게 더 큰 해를 입힌 명군을 받아들인다.

 

또한 선조의 두려움은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하고 군권을 강화해 왕위를 도둑질했듯

이순신도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오죽이나 불안했을까

만일 역심을 품는다면 큰일 아닌가.

  

그리고 1637년 정월 30일 지금의 송파인 삼전도 수항단에서

청태종에게 삼궤구고우(이마를 땅에 닿도록 세 번 절하는 의식)까지 가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고대부터 겨울철에 동남풍이 불면 양자강의 미꾸라지는 배를 뒤집는 습성을 보인다.

제갈량은 강가의 미꾸라지를 보며 기후변화를 간파하고 공격할 것을 명하지만

무슨 도술은 부린 양 숭배하며

조조도 5만의 원정군만 끌고가 현지에서 20만으로 늘린 것뿐인데

무슨 100만의 정병으로 원정했다는 허풍과 입담으로 꾸민 이야기를

우린 살수대첩보다 더 애착을 느끼며 믿음을 더 키워가는가.

 

유비는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중국인을 연상시키기에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고

조조는 영웅임에도 고대부터 북방민족이 중국과 싸웠듯

조조가 북쪽에 있으니 중국과 북방민족과 싸우는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이겠지.

 

얼마전 우리의 공영방송에서 중국이 만든 드라마 칭기즈칸을 방영했다.

그는 몽골인의 조상이며 중국을 침략한 침략자인데, 중국인들은 마치 그들의 조상인양 그를 찬미한다.

우리가 이토 히로부미와 풍신수길을 찬양하는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대충 맞을 것이다.

여기도 동북공정이 있다.

연개소문 누루하치 칭기즈칸을 중국인의 조상으로 만들면 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땅도 중국땅이 된다. 그런데 왜 우린 그런 드라마를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거기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중국의 선결 과제인 이민족의 동화나 척결과 딱 맞는 조치이며

과거 거란, 여진, 고려가 성산으로 여긴 백두산

등소평은 자기의 화장한 뼈를 천지에 뿌리라 유언을 한다.

유목민의 정수리인 땅에 말뚝을 박아 중국땅으로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다가 정신병자로 인정되어 판결을 면한 오가와 슈메이를 중심으로

동풍회가 조직되고,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군국주의 학습에 열을 올린다.

미군정이 정말 속은 것일까.

이런 일들이 있었기에 1970년 자위대 본부에서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

1993년 아사히 신문사에서 자결한 우익의 거물 노무라 슈스케가 있는 것이다.

 

나치의 독일은 미국과 같은 서구문화이기에 잘 알고 있었을까.

미국속의 유대인들이 조정을 한 것일까.

나치를 완전히 제거하고 새로운 사람들은 앉혀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들을 미군정이 다시 정권에 있게 한 것처럼

전후 일본에서도 전범세력들을 그대로 정권에 눌러앉히니 오늘의 일본이 우경화로 치닫는 건 아닌지.

 

장개석은 모택동을 제압할 절호의 기회를 만주에서 얻었지만 미국의 입김으로 휴전을 했고

모택동에서 기사회생할 시간을 제공해 결국엔 중국이 공산화되어 항복한 장개석군이

6.25 때 중공군이 되어 소모품으로 참전한 거겠지

 

이렇게 잘못된 동양의 역사를 만든 미국은 왜 이렇게 했을까.

다른 문명권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일까.

오늘의 남의 일이 내일의 나의 일이 된다는 일본속담처럼

동양엔 옥시덴탈리즘이 존재한다 걸 그 당시 미국이 깊이 생각했더라면

동아시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 압록강 철교 옆에 중국이 모든 자본을 대고 건설하는 신압록강대교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에 군사정변이 일면 압록강대교는 중국군의 진격루트가 된다.

매번 중국 최고지도부가 북한이 어려울 때마다 선물보따리를 푸는 이유를 우린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나침반도 신라침반의 줄임말이란 개연성이 많지만

그들은 금속활자나 다라니경까지 그들의 것이라 박박 우기는 상황이니

다라니경도 89년에야 국제적으로 공인 받는 실정이니 나침반은 말도 못꺼내고 있다.

고조선의 명도전이 연나라의 화폐로 둔갑한 것처럼.

 

중국은 스스로 문화민족이라 하지만 종이를 만든 건 채륜이 아니었고

만두도 맹획을 정벌하기 위해 제갈량이 만든 게 아닌 기원전 6세기에도 이미 존재했던 음식이며

한자도 삼국지 속 오나라 땅이 원류가 아니라 유목민의 땅 발해만에서 나온 갑골문자가 원조이니

그들의 자랑도 궁색하게 되어버렸다.

 

그들은 은나라, 진이 지나, 지나가 차이나로 변한 흉노의 나라 진,

그리고 북위, 거란, 여진, 운남, 묘족까지 이민족 동화의 역사는

100년 후 티벳, 위구르가 거란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으며

그들이 중국화 되면 그들의 다음 목표는 부탄, 투루키스탄, 카자흐스탄, 미얀마, 네팔이 아닐까.

또 그들이 다시 100년후 중국인이 된다면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아랍의 인구는 8억 정도이고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으니 이이제이하기 쉽게 서로 반목하는 지역도 많다. 야금야금 유목민의 땅을 차지한 것처럼...

  

그 옛날 중국의 머리 위에 지금의 러시아보다 중국에 더 큰 위협을 주던 흉노가

한국, 일본, 만주, 헝가리로 내몰리거나 중국에 흡수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지금의 러시아도 1000년후엔 흉노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누구는 1000년이란 소리에 걱정도 팔자려니 하겠지만 김유신부터 2010년까지는 순간이었다.

세계 정복을 꿈꾸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같은 정복자들은 그들의 정복기한을 10년으로 잡았지만

그래서 많은 이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눈에 잘 띄었지만

은근히 영토야욕을 채워가는 중국은 천년을 목표로 한다는 게 그들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유목민의 특징은 적응력이 빠르다는 것이다.

냄비근성도 그 뿌리는 유목민의 특징의 연장선상이라 보면 좋을 것이다.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은 해뜨는 언덕, 홍산 문명도 붉은산이니 해뜨는 산을 의미하는

모두 알타이산의 유목민에게서 갈라져 나온 유산이다.

  

유목민은 기록을 중시하지 않고 이주 시 지명만을 가지고 간다.

그래서 주몽의 엄리대수가 한강의 아리수이고 경주 사로국이 아사달로 통하나보다.

겨울에 러시아를 침략해 승리한 나라는 몽고가 유일할 정도로 유목민은 추위에 강하다.

 

들은 홍산 문명을 농경민인 중국인에게 베풀었지만

언어는 우리와 같은 주어 목적어 동사를 쓰지 중국인의 주어 동사 목적어를 쓰진 않는다.

 

스키토 시베리아 생태권인 팍스 몽골리카에 의해 서역의 증류주인 소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고려란 국명이 서역으로 전파되었다.

 

삼족오, 연오란, 세오녀 금오산 모두 까마귀 오자를 쓰듯

일본 초대 진무천황의 안내조 야타가라스도 까마귀였다.

 

노무현이 터키를 방문해 미국보다 더 가까운 형제 국가라 말한 것도

팍스몽골리카나, 까마귀가 살려낸 알타이유목민의 정체성회복 작품이 아닐런지.

 

우리 역사의 가장 큰 오점은 부여, 고구려, 발해에서 북방의 역사가 멈추고

그 지역에 이민족이 자리를 잡았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말갈, 물길, 예맥, 동호, 숙신, 여진 모두 한 민족을 시대별로 다르게 부른 것 뿐이다.

 

유치원 때 호칭이 다르고

초,중고등학교 때 호칭 다르고

대학교, 군대, 사회있을 때 호칭이 다르듯,

시대별 호칭이지 두 개의 호칭이 한 시대에 같이 쓰인 적은 없다.

  

또 하나 그럼 발해란 국가 해체 후 왜 부족국가로 역행하느냐는 문제인데

정주민인 로마도 에투루리아-로마에서 피렌체나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로 나우어지고

독일도 오토대제 후 신성로마를 거쳐 수백 개의 공국으로 나누어진다.

발해는 반유목 국가였기에 정주농경민과는 조금 차이를 보인것 뿐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발해처럼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다른 민족으로 애써 분리하지는 않았다.

일본과 백제가 하나였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는 분이 계신데

663년 백강전투, 668년 고구려 멸망후

왜국은 669년에 왜국이란 칭호를 벗어버리고 일본이란 국호를 채택해 독자노선을 걷는다. 

 

몽고의 원 제국이 망한 후 중앙아시아 건너로 진출한 몽골족 타타르도

스스로의 제국을 건설해 독자노선을 걷고

영토의 대부분을 독일에 빼앗긴 덴마크도 독자노선을 걷는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처럼 과거제국의 일부였다는 걸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1700년대부터 만주족의 재혼 풍습이 사라지고

조선도 이 시기에 재혼 풍습이 사라져 한족처럼 과부의 정절이라는 규범을 모두에게 적용시키기 시작한다.

 

팍스 몽골리카 체제 붕괴 이후의 한,중 관계사는 조선시대 명과 조공 책봉관계가 성립되면서

임란이후 한족중심의 동아시아 질서에 안주하고

과거제도를 통해 조선지식인의 뇌리에 각인돼 온 중국중심적 주자학적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받아

어느새 스키토 시베리안 유목민족 태반인 한국인은

자기 자신을 중국적 농경인으로 생각해 스스로의 의식속에서 농경중화화하고

북방유목민을 한족의 시각과 같이 오랑캐(순록치기)로 바라보게 되었다.

마침내 역사적 사실로서 엄존했던

북방유목민과의 태반공유관계가 고려역사에 미친 중요한 영향들은 간과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민족공동체에 대해 같은 고향을 주장하고,

신화와 동일한 조상과 역사적 기억과 특유한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의 집단이라 했다.

 

오토만의 엘리트군대인 예니체리 부대는 전투에 뛰어나고 절대적인 충성을 갖고 왕을 섬겼지만

모두 비이슬람 가정 출신이며, 다수 엘리트집단인 아스케리계급과 민족적으로 달랐다.

 

중국은 대동소이를 외치며 10개중 6개만 같아도 우린 동일민족이라 하며

다른 민족을 동화시켜 버리려 하지만 오토만의 예와는 많이 다르다.

 

앞으로 한국이 강국이 되려면 자주적인 유연성을 최대로 발휘해야

100만 외국인시대에 잘 대처함은 물론

과거 우리의 무지로 멀리했던 스키토 시베리안 사람들과 유대감을 공고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난 평생 노력해 처음 목표의 4%만 달성되어도 좋다 생각한다.

그거라도 이루지 않았는가. 나는 그 결과에 만족한다.

 

중국은 한마디로 스테로이드를 투입한 일본이다.

중국은 경제적 규율보다 사회적인 관계를 더 중시한 국가이다. 

자금을 정치적으로 분배하고 경제자료를 조작하는 공산주의 국가다.

이윤을 요구하는 주식투자자보다 현금을 요구하는 은행가들과 정부관리가 더 중요한 국가이다.

 

일본이 그랬듯 중국도 경제성장 속도가 조금만 늦춰지면 붕괴에 직면할 수 있고

나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건대 2020년쯤엔 중국의 경제가 붕괴되고

이 여파로 2025년엔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설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확신한다.

또,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앞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나는 족하다.

시대는 그저 왔다가 갈뿐이다.

장부가 세상에 나와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할 것이오,

만일 쓰이지 않는다면 물러나 밭가는 농부가 되어도 족하니라.

 

출처 : 하나둘셋에서 열까지
글쓴이 : 하나둘셋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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