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호태왕과 도적소굴(china, japan)들의 역사왜곡 종지부

kongbak 2007. 12. 17. 11:28
 제28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중국 지린성 지안시 소재 광개토왕릉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광개토왕릉비는 아들인 장수왕이 고구려의 황금시대를 구축한 선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414년에 세운 비석으로 1880년대 비석이 발견된 이후 비문의 글자해석을 놓고 한일 학계가 팽팽히 대립했다.
 일본 측은 그동안 광개토대왕비의 한 문장을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임나일본부설'로 억지주장을 펴왔다. 한국 측은 이에 일본이 주장하는 문장의 주어를 '고구려'로 보고 '고구려가 신묘년에 일본을 무찔렀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그러던 중 2003년 5월 지안시의 태왕릉에서 광개토대왕의 이름인 '호태왕'이 새겨진 청동방울이 출토돼 일본 역사 왜곡의 대표작인 '임나일본부설'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까지 역사 왜곡을 강행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고구려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기념해 고구려 특별전이 열리는 도쿄 국립박물관 전시회에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이 '중국의 서(書)' 전시관에 전시되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측의 고구려 중국사 편입이 이미 끝난 '임나일본부설'을 회생시킬 수 있으리란 허황된 착각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왜곡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얼마 전 아키히토 일왕의 당숙인 아사카노미야씨가 충남 공주시의 백제 무령왕릉을 참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으며, 일전에는 일본 아키히토 천황은 "옛 칸무(桓武·재위 781∼806)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며 일본 황실과 백제의 혈연적 관계를 최초로 언급한 것이다.
 일본 고대사의 대표적 기록인 '일본서기'에 따르면 6세기 백제 무령왕의 동생이 26대 게이타이(繼體) 천황이 된 이후 백제 왕족의 후손들이 7세기 말까지 천황 자리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의 무령왕은 40세가 넘어 일본에서 백제로 건너가 왕이 되지 않았던가. 이는 언어와 문화가 같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키히토 천황의 발언으로 화제가 된 50대 칸무 천황의 생모는 8세기 왜 왕실에서 백제조신(百濟朝臣)이라는 벼슬을 지낸 화을계(和乙繼)의 딸로, 화을계는 백제 무령왕의 직계 후손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렇듯 일본 천황가의 뿌리가 한반도인데 어떻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겠는가. 현재 일본이 강력한 한류 열풍에 휩싸인 것도 결국 그들의 영혼 DNA의 뿌리가 백제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 DNA의 뿌리는 어디인가. 당연히 고구려의 땅, 만주 벌판이다.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인의 핏줄을 이어받아 말을 타고 만주 벌판을 달리던 고구려인이야말로 우리 영혼 DNA의 본질이요, 정체성의 근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이 역사 왜곡에 앞장서며 고구려 역사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나는 그들의 행태가 매우 궁금했다. 왜 그들은 고구려 역사를 편입시키려 저토록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것일까. 결론은 하나였다. 심하게 억지를 부린다는 것은 뭔가를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 영적으로 봤을 때 우리의 통일은 매우 가까워졌다. 중국은 바로 한국의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이 된다면 한민족의 옛 땅인 만주도 들썩일 것이요, 중국 곳곳에 퍼져있는 조선 동포들 역시 통일 한국으로 몰려오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과 일본, 양 국가로부터 역사 왜곡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곧 그들의 역사 왜곡에 종지부를 찍을 대규모 고분이 공주 근방에서 발굴되리라 예측된다. 또한 수많은 조상령의 보호로 역사 왜곡 문제는 곧 잠잠해질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