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아름다운 '노년의 도전'

kongbak 2007. 10. 27. 21:25
아름다운 '노년의 도전'

인생에 정년이 있을까?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나에게 모 병원 의사는 가장 좋은 약이라며 '맑은 공기'를 처방을 해 주었다. 귀가 따갑게 이 사람 저 사람 사정을 듣다보니 땅 밟을 일이 좀처럼 나질 않아 골프장에서 약속을 하게 되었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며 기분 좋게 코스를 이동하려는데 진행요원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앞 팀에서 속도를 못 맞추고 있다는 것. 도대체 앞 팀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들 궁금해 했다.

 그 팀은 93세의 할아버지가 가까운 친지들과 팀을 이룬 60세 이상의 실버 그룹이었다. 항의하러 달려온 뒤쪽의 팀들도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이를 잊고 즐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나도 저 나이되면 저렇게 건강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을까'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나이가 인생에 무슨 대순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청춘 아니던가.

 예전에 법당을 찾았던 할머니가 던진 물음이 떠올랐다. 50여년 전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던 젊은 미망인이었던 그 분은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나를 찾은 것이다. 비록 유명은 달리했지만 아이들 뒷바라지하면서 하루라도 남편을 잊은 적이 없었다는 주름진 눈가에 물기가 비쳤다.

  "법사님, 죽는 것은 두렵지 않고 회한도 없습니다. 저승의 남편을 만나러 간다니 오히려 기대가 됩니다. 다만 제가 그동안 주책없이 나이만 먹어 이렇게 쭈글쭈글 늙어버렸는데 남편이 제 얼굴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요?"

 막 혼례를 앞둔 새색시처럼 얼굴까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진지하게 묻는 할머니에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할머니, 영혼은 늙지 않아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나실 겁니다."

 과거엔 회갑을 넘기면 어르신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옛일이 되었다. 요즘은 동네 경로당에 가면 75세 노인이 담배 심부름을 한다고 한다. 85세 이상은 되어야 어르신 대우를 받을 수 있고, 65세 이하는 버릇없다고 아예 근처에도 못 오게 할 정도로 평균수명이 늘었다. 과거엔 정년퇴직 이후의 삶은 덤이려니 했지만 이제는 30년을 더 바라봐야 하니 환갑 이후는 이제 인생의 후반전인 셈이다. 퇴직을 했더라도 당당히 제2의 인생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커넬 샌더스는 65세에 도산해 100달러 남짓을 손에 쥐고 새로운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1000번 이상 거절당한 끝에 유명 음식 체인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열정은 지금도 깨끗한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 마스코트로 세계 곳곳에 남아있다. '인간의 굴레'를 쓴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젊은 여비서 일기장에 85세에도 사랑을 불태웠다는 증거를 남겼다. 그런가 하면 미국 켄사스주에 거주하는 95세의 노라 옥스는 포트헤이스 주립대학교를 졸업했고 캐서린 로빈슨은 96세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99세에 테네시주에 거주하던 데이비드 유진 레이는 글을 깨우쳤다. 그야말로 백발의 청춘이 아닌가.

 우리나라에도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야학의 문을 두드리는 노년의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희생했던 여성들에게 배움의 한을 풀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더 주어지고 가족적 배려도 더욱 늘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마음에 간직한 청춘의 씨앗을 밖으로 꽃피우는 것에는 때론 주변의 따뜻한 손길도 필요한 법이다.

 노년의 도전은 몇몇에게 한정된 특권이 아니다. 몸을 가꾸기에 앞서 마음과 영혼을 가꾸는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하루를 한 생(生)으로 여기며 산 사람은 창의적 열정으로 매일이 즐겁다. 노화는 육신의 생리이지 영혼의 순리는 아니다. 퇴직에 정년은 있어도 인생에 정년은 없다. 자신의 나이에 겁먹은 마음이 먼저 늙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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