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감기도 약이다

kongbak 2007. 10. 18. 09:19
감기도 약이다]
작은 실수가 면역력 키울 수도

사랑에도 예방접종이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흔히 사람들은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라 하여 두려워한다. 요즘처럼 기온이 들쑥날쑥한 환절기에는 감기 걸린 사람도 고생이지만, 건강한 사람도 감기에 들지 않으려 애를 쓰게 된다.

 그런데 요즘 나온 학설에 따르면 감기는 우리 몸의 건강에 필요한 존재라고 한다. 옛날 장질부사에 걸린 사람은 잔병이 없다 했는데, 마찬가지로 감기로 인해 고열이 나면 암세포가 죽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감기에 지나치게 안 걸리는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이런 감기의 숨겨진 좋은 역할을 인생사에 빗대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세찬 파도가 1등 항해사를 만들듯이 고통에 면역되는 과정에서 인내심이 자라나고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병도 약이 되는 셈.

 인생에 있어서의 고통도 질병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약이 되는 고통을 발견하는 지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내게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 문제만큼이나 자식 문제도 인생의 큰 숙제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오래 전에 어떤 부인이 나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는 딸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혼을 낸 적도, 혼을 낼 일도 없을 만큼 곱게 자란 딸이라 그 자존심과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미 부모의 기가 자식에게 꺾인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딸이 그들 말을 들을 리가 없을 터. 아버지는 그만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고 말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시집가면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딸은 결국 결혼을 강행하고야 말았다. 물론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고 해서 모두 힘든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딸의 경우에는 세월이 흘러 결국 이혼하고 말았고, 부모 중의 한 분은 너무나 속이 상한 나머지 화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끝내 이혼녀가 되어 나를 찾아온 딸은 부모를 위한 구명시식을 청했다. 그리고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부모님에게 돌이킬 수 없이 크게 속을 썩였는지 후회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주위 어른들도 효녀라 칭찬하고, 부모 또한 늘 그녀를 칭찬했기에 자만한 나머지 한 번 쯤은 말을 안 들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들이 소문난 효자였는데 엉뚱한 일로 부모 속을 심하게 썩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야말로 차곡차곡 쌓아둔 빚을 한꺼번에 받아가는 것처럼 대형 사고를 치는 경우다. 오히려 학창시절 자질구레한 문제를 일으켜 부모와 함께 학교 문턱이 닳도록 등교하다시피 한 아이들이 나중에 마음을 잡고 부모에게 잘 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 아이들 체격은 월등하게 좋아졌지만 체질은 오히려 속 빈 강정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늦은 밤 강남 거리를 지나갈 때면 길가에 정지된 차량의 긴 행렬에 의아한 적이 종종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십중팔구 대형 입시학원이 있었다. 교통 체증도 체증이지만 그 행렬을 바라보는 내 속도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국가고시를 치르는 시험장 앞과 수능 시험장 앞이 구분이 안 갈 정도라고 하니 품안의 연약한 화초를 위한 이동용 온실이 따로 없다.

 아기들에게 필수적인 예방접종을 하고 나서는 산으로 들로 마음껏 데리고 나가듯이 내리 사랑도 방목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부모의 사랑이 최소한의 예방 접종을 넘어서서 바깥 공기도 못 마시게 하는 휴대용 산소통 역할을 할 정도라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감기가 암을 막듯, 어리고 젊은 시절의 작은 실수가 큰 실수를 막는 자가 면역력을 키우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될 수 있다. 자잘한 실수를 하는 아이들을 너무 꾸짖지 않았으면 한다. 품에서 놓아주는 연습은 빠를수록 좋다. 이별을 잘 하는 사람이 사랑도 잘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