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의 심판자는 누구일까? 선과 악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 심판은 누가 하는 것일까?
나보다도 나이가 지긋한 지인이 대뜸 이렇게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때 죽는 것이 영원히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지름길인가요?"
그의 말인즉, 지상에서 한 번의 선택이 하늘에서 영원을 좌우한다면 오래 살수록 죄 지을 일이 많아 불리하다는 것. 무병장수가 하늘의 축복이라는 상식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니, 나이든 자기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최후의 심판자이고 그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 서구에서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는 유일신이 여러 천사를 거느리고 선인과 악인을 가려 천국과 지옥에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직접 영계를 오갔던 영능력자 스웨덴보르그도 사람이 죽으면 천사들이 마중을 나오고 영원히 천상에 머문다고 믿었다. 하지만 스웨덴보르그가 당시의 영혼관과 크게 다른 점이 있었는데, 천국과 지옥을 누가 심판을 해서 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편한 곳을 택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심판자가 따로 없다보니 사후에 악인은 지옥을, 선인은 천국으로 제 발로 선택해 간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상과 지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영혼이 다시 육체로 환생한다는 윤회 개념이 없었던 시기라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영원히 영계에 머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최고의 토크쇼에 출연하고 있는 한 대중적 영매의 의견은 다르다. 환생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가령, 종아리에 붉은 반점이 있어서 보니 전생에 칼로 찔려서 죽은 흔적의 모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능력자는 환생을 주도하는 것이 신이며 그 신이 천국과 지옥을 주관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겪은 체험은 이들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이가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영혼이 천국에 갔을까? 그렇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전생에 한 사람에게 큰 과오를 저질렀다. 남을 가슴 아프게 한 만큼 현생에서 가슴 아픈 일을 과보로 당한 것이다. 전생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아이였다. 현생에 환생하여 되갚음을 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과보가 인간들 사이에서 철저하고 냉철하게 관철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들을 심판하는 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고무줄이 늘어나면 저절로 다시 줄어드는 것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심판관 없이 오직 당사자들 간에 인과의 굴레가 작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최후의 심판자는 자신인 셈이다. 또한 과보가 실현되는 천국과 지옥의 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현실이 바로 되갚아지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삶이 각 개인이 저지른 과거의 업보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는 것. 그래서 영계에선 따로 종교가 없다는 게 영계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스웨덴보르그가 본 천국과 지옥은 무엇일까? 나도 천상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그와는 확연히 달랐다. 흔히 불교의 탱화와 유사한 찬란한 금강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지구상에도 영국이 있고 인도가 있고, 그 속에 또 무수한 마을이 있는 것처럼 스웨덴보르그가 갔던 곳은 영계의 전부가 아니라 우주 법계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유체이탈이나 임사체험을 통해 자기가 경험했던 곳을 영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그곳에서 만난 지도자를 우주 전체의 조물주 혹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이라고 칭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영혼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그동안 내가 알아낸 사실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승이건 저승이건 눈앞의 것을 하나의 잣대로 단정 짓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영혼을 거론함에 있어 '죽음이 끝이 아니다. 지금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 이 정도가 차라리 적당한 지식이 아닐까. 오늘 이 순간 자신의 영혼을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한 일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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