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가르침
흔히 우리 인생에 가장 덧없는 것을 세월이라고들 한다.
한편으로는 지나고 보면 어떻게 흘렀는지 화살과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덧없는 것과 빠른 것, 어찌 보면 영 다른 소리 같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같은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인생에 있어 세월, 즉 시간은 가장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면, 세월이 없다면 인생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공간만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대개 생명이 없는 물체이기 마련이다. 시간은 움직임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 없는 공간의 이동이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크게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이 시간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만을 확고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있기 십상이다.
60초로 구성된 1분, 60분으로 구성된 1시간, 24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루, 그리고 30일로 구성된 한달, 열두 달로 구성된 한 해, 듣고 보면 가장 과학적이고 엄밀하면서도 조금의 빈틈도 없이 짜여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도 어김없이 시계는 째깍거리며 움직이고 있어 얼마만큼의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1분이 60초이며 60분이 1시간이라는 개념처럼 모호하고 상대적인 개념도 없다. 어떻게 각자의 세월을 자로 재듯 단위로 나눠 똑같다고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때에 따라 빨리 흐르기도 하고 늦게 흐르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즐겁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흐르게 마련이다. 반대로 귀찮고 싫은 일을 하는 시간은 지독히도 흐르지 않는다.
따라서 때에 따라선 일각이 여삼추며 여삼추가 일각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같은 흐름은 단지 느낌뿐일까. 진짜 시간은 그러면 어떤 것이란 말인가.
자로 재듯 나누어진 수학 공식의 시간은 정말 우리의 시간일까.
과학 공상 영화나 소설에서 보면 광속으로 날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해 순식간에 미래로도 갈 수 있다고 한다.
광속으로 나는 우주의 1시간은 지구의 일 년과도 맞먹는다고 한다.
시간 그 자체는 운동하는 물체도 아니고, 물체의 운동도 아니며 독립된 존재자도 아니다. 시간은 예로부터 공간과 관련된 일종의 형식 내지 양(量)으로서 모든 운동적 현실을 포괄하는 지평으로 여겨져 왔었다.
서구 철학에 있어 시간의 주관적 의의에 대해 처음 설명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한다. 그 이후 칸트 등에 이르기까지 시간은 철학의 큰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서구 철학에서는 영원한 절대적 존재와 시간적 상대적 존재의 구분은 시간 위에 서 있는 현실 세계가 가치가 낮은 가변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존재하면서도 자성을 지니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존재로 위치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듯 싶은 것도 사실이다.
존재하면서도 자성이 없는 것, 그것을 불가에서는 무주(無主), 혹은 무주상(無主常)이라 한다.
무주는 자성(自性)을 가지지 않고 아무것에도 주착(主着)하지 않으며, 연(緣)을 따라 일어나는 만유의 근본이라고도 한다.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중에서도 가장 높은 보시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무주상의 보시라는 말은 무수히 들어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주상인 시간이 바로 만유의 근본이 될 수도 있진 않을까.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시간, 그렇다고 스스로 존재하려 하지도 않는 시간,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저마다 기둥이다, 담벼락이다, 큰 부채다, 뾰족한 바위다, 하는 식으로 얘기해지는 시간.
이 시간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무래도 독선적으로 집착하지 않는 자세, 나만의 것이라고 고집하지 않는 지혜를 배워야 하는 것이 우리 범부 중생들의 일일 것 같다.
나만의 것이 아닌, 그렇다고 남의 것도 아닌 시간, 세월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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