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地而倒者 因地而起(인지이도자 인지이기)
땅에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사람이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인지이도자 인지이기)」 땅에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고려중기의 고승인 佛日普照(불일보조) 知訥(지눌)이 定慧結社文(정혜결사문)을 통해 설파한 진리다. 지눌은 이에 덧붙여 「離地求起 無有是處也(이지구기 무유시처야)」라고 했다. 땅을 떠나서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땅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사람을 넘어뜨리지도, 일으키지도 않는다. 엎어지고 일어서는 것은 사람이다. 문제의 핵심이 「사람」인 것이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남에게 기대면 된다. 무엇인가를 쥐거나 짚어도 좋다. 아예 일어서지 않거나, 매사 他人(타인)에게 의지하면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정상인이 아닌 셈이다. 넘어지지 않으면 잠든 사람이다. 깨어 있는 자는 넘어지게 마련이다. 지눌은 「迷一心而起 無邊煩惱者 衆生也(미일심이기 무변번뇌자 중생야), 悟一心而起 無邊妙用者 諸佛也(오일심이기 무변묘용자 제불야)」라고도 했다. 마음이 미혹해 끝없이 번뇌하는 이는 「중생」, 마음을 깨달아 한없는 묘용을 일으키는 사람은 「부처」라는 설명이다. 심오하되 難解(난해)하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는 삶의 곳곳에 적용되고 있다. 고단한 현대인들에게 의욕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鷺山 李殷相(노산 이은상)은 『高地(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며 우리를 독려한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웅변한다. 넘어진 순간, 그의 시선은 이미 「새는 날」을 향하고 있다. 唐(당)의 詩人(시인) 杜牧(두목)은 「題烏江亭(제오강정)」에서 因地而倒者 因地而起를 捲土重來(권토중래)라고 강조한다. 땅을 휘말아 거듭 공격하라는 권유다. 패했으면 힘을 기르면 된다. 힘이 쌓이면 다시 도전해야 한다. 東山再起 杜牧은 자살한 項羽(항우)가 안타깝다. 그래서 이렇게 읊는다.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勝敗(승패)는 兵家(병가)도 기약하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알고 참을 줄 아는 것이 사나이다. 江東(강동)의 子弟(자제) 가운데는 뛰어난 인물이 많은데 捲土重來했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라는 애석함이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는 「塞翁之馬(새옹지마)」다. 인생의 吉凶禍福(길흉화복)은 항상 바뀌는 법이다. 미리 헤아릴 수 없다. 달아난 말이 좋은 말 한 필과 함께 돌아온다. 한 마리가 두 마리로 불었다. 그런데 그 말을 타던 아들이 낙마해 다리를 다친다. 덕분에 아들은 징병을 피해 목숨을 부지한다. 得失(득실)과 禍福(화복)은 노력과 무관한 것일 수 있다.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는 斯界(사계)의 頂上(정상)을 경험한 이다. 막강한 힘은 하늘이 내린다는 점을 체험한 上手(상수)다. 그렇다고 넘어진 땅에 널브러진 채 전전긍긍, 정확히는 遊手徒食(유수도식) 한다면 평생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미래를 염두에 둔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곧 닥치는 것이 미래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충실한 因地而倒者는 꼭 因地而起로 이어진다. 因地而倒者 因地而起는 「東山再起(동산재기)」다. 동쪽 산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넘어졌다고 영원히 바닥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훌훌 털고 일어나 재차 주목받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東晉(동진)의 명문가 태생인 謝安(사안)은 젊어서부터 재능과 식견이 뛰어났다. 당연히 朝廷(조정)의 부름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러브콜을 한사코 거부한 채 草野(초야)에 숨어 살다시피 했다. 出仕(출사)에 적합지 않은 정치 상황을 看破(간파)한 덕이다. 당시 국가 내부에서는 門閥(문벌) 간 싸움이 한창이었다. 북쪽에서는 前秦(전진)이 호시탐탐 東晉을 덮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謝安은 東山에 집을 지었다. 아름다운 山水(산수)에 묻혀 王羲之(왕희지), 支遁(지둔)과 어울리며 詩를 짓고 술을 마시며 세월을 낚았다. 물론 평생 風流(풍류)만 즐긴다면, 태어날 이유가 없을 터이다. 마흔 살이 되자 謝安은 因地而起했다. 그는 門閥 세력을 제압한 征西大將軍(정서대장군) 桓溫(환온)의 휘하로 들어갔다. 吏部尙書(이부상서)라는 요직까지 승승장구했다. 謝安은 자신의 깜냥을 알았다. 桓溫이 帝位(제위)를 넘보려 들자 즉각 낯빛을 바꿔 저지했다. 자칫 因地而倒者할 수 있는 위기를 넘긴 謝安은 공로를 인정받아 孝武帝(효무제) 즉위 후 宰相(재상)에 오를 수 있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알 정도라면 죽을 때까지 因地而倒者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因地而倒者가 되지 않고도 因地而起할 수있다면 그의 이름은 역사가 기억한다. 깨어 움직여야 한다 因地而倒者가 轉禍(전화)라면, 因地而起는 爲福(위복)이다. 禍를 福으로 바꾸거나 그 거꾸로다. 韓(한)·魏(위)·趙(조)·燕(연)·齊(제)·楚(초) 나라 등 무려 6개국의 宰相을 겸한 蘇秦(소진)은 말한다. 『옛날, 일을 잘 처리한 사람은 禍를 바꾸어 福이 되게 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功이 되게 했다(因敗爲功)』 강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깨어 움직여야 한다. 努力(노력)과 勞力(노력)이 두루 요구된다. 나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존재는 나 자신이다. 홀로 세운 훌륭한 계획을 남이 모른다면 因地而起는 遼遠(요원)할 뿐이다. 因地而倒者라는 苦盡(고진)의 끝은 因地而起, 甘來(감래)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樂(낙)이지만, 樂에 빠져 방심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興盡悲來(흥진비래)다. 因地而倒者라도 生口不網(생구불망)이다. 산 사람의 입에 거미는 줄을 치지 않는다. 쥐구멍에도 언젠가는 볕이 든다. 「陰地轉陽地變(음지전양지변)」,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 因地而倒는 「兵家之常事(병가지상사)」요, 「政治之常事(정치지상사)」다. 선거라는 땅에서 넘어졌으면 선거의 땅에서 일어서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歷程(역정)이 좋은 보기다. 貧益貧富益富(빈익빈부익부) 兩極化(양극화) 세상은 개천에서 나는 龍(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레 짐작일 따름이다. 조상과 부모만 탓하며 불만의 목소리만 높인다면 因地而倒者 단계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