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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은 흔히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려는 원(元)이라는 큰 울타리 안의 독립 자주국이었습니다.”
내몽골 출신의 강원대 제 1호 박사이자 내몽골 대학의 한국 박사 1호인 에르데니 바타르(40)씨. 어색한 억양이 아니었다면 한국인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그는 보통 한국사람과 닮아 있었다. 한국드라마 ‘보고 또 보고’를 보고 또 봤다며 제법 유창한 한국말로 농담을 건넸다.
1998년 초 한국에 온 그는 8년 동안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박사학위를 따냈다. 한국을 찾은 계기는, 강원대학과 내몽골 대학의 자매결연. 결연이 맺어지면서 교환학생으로 유학온 것이었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한국에 오기는 했지만, 처음 한국땅을 밟을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적었다. 88올림픽 개최국이란 사실, 교과서에서 배운 단편적인 내용이 전부였다. 한국어도 유학 오기 전 조선족에게 두달간 과외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쉽게 한국어를 터득했다. 바타르씨는 “몽골어와 한국어의 어순이 같은 데다가 한국어가 한자를 많이 써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한동안 고생했지만 지금은 한식은 물론 삼겹살에 소주도 잘 먹는다. 소주는 중국술보다 더 좋아할 정도.
그렇게 한국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중에서도 모국인 몽골과 고려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다. 그의 희망대로 박사학위 논문주제를 ‘원 나라와 고려 지배세력 관계의 성격’으로 정했다. 바타르씨는 “단순히 원나라가 약 100년간 고려를 지배했다는 사실보다는 양국이 주고 받은 영향과 팍스 몽골리카라는 체제 안에서 어떻게 고려가 생존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논문에서 “이 연구는 중국 중심의 형식적인 역사를 뛰어넘어 원과 고려 관계의 실재를 복원하고 검토함으로써 몽골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 국제질서의 특징과 성격,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고려는 원나라와의 혼인관계를 통해 국가의 생존을 도모했고, 광대한 제국인 원과의 교류를 통해 세계속의 고려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며 “원나라처럼 큰 제국과 공존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려는 상당한 책략과 국력을 가진 나라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공부한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론에 대해서는 “그 부분은 시간을 두고 좀 더 연구한 후 다시 이야기하자”며 말을 아꼈다.
바타르씨는 15일 내몽골로 귀국했고, 내몽골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일할 예정이다. 그는 “제 1호 박사라는 좋은 결과를 갖고 집에 돌아갈 수 있어 기쁘다. 빨리 돌아가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이제 막 10개월된 아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정이 넘치는 한국에서 공부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이제 강원도는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바타르씨는 한국과 중국 역사 연구를 위해 앞으로도 종종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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