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긍정적인 생각은 그걸 이루도록 씨를 제공해 준다고 하지 않던가!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각하는 게 말로 나오는 법, 미래는 그 사람의 생각에 달려있다. 긍정적인 미래

kongbak 2007. 7. 5. 12:36

긍정적인 생각은 그걸 이루도록 씨를 제공해 준다고 하지 않던가!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생각하는 게 말로 나오는 법, 미래는 그 사람의 생각에 달려있다. 긍정적인 미래도 부정적인 미래도 그 사람의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부정적인 생각을 한 후로는 부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저주받았다고 생각하니 저주받은 일들이 일어났다. 위궤양도 폐결핵도 폐 수술 3번, 삶이 힘겨워 지기 시작했다. 물론 가정에도 불행이 생겼다. 결혼할 번한 여자는 나에게서 돌아섰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보여 줄 게 없었나 보다. 이 밖에 등등. 그런데,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을 때나 좋은 꿈을 가졌을 때는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의 경우,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이 씨가 되는 법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어. 열심히 노력할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미래와 ‘인생이 더럽게 느껴져. 내 인생은 조지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는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획일교육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청소년들의 피에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을 파멸시키겠다고 약속한 지 17년(2006년 기준)이 흘렀다. 고2 당시 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라도 획일교육으로부터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해방시키고야 만다는 생각에 있었다. 3년 후 나는 대통령이 앉는 자리(?)에 앉아 경치를 바라봤다. 아마 대통령 전용실이었다. 대통령 할 만 하구나. 대통령에 그리 집착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대통령을 꿈꿨더니 그렇게나마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을 타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자로 당선된 날짜로 하는 청와대의 감사장을 받았으며 노벨상을 수상하시던 날,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께 보낸 내용에 있는 내용을 언급했다. 후자는 독자적인 것인지 몰라도 그렇게 되었다. 맹자의 역성혁명론이었다. 역성혁명론(맹자)이란 ‘왕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힘을 사용해 왕조를 바꿀 수 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본인이 최초의 노벨상을 꿈꾸지 않았다면 그렇게라도 되었을까. 물론 실수할 번도 했다. 대통령의 차를 대기해야 할 곳에 참모총장의 차를 대기시키게 할 번 했다. 지시를 착각한 것일까. 그리 되었다면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더군다나, 하이텔(1990년대를 풍미한 PC통신사) 플라자에 올려놓은 내용이 획일교육 지지 세력에게 조롱을 받자 나는 훗날 내가 올린 내용을 발표할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게 2년 뒤 적중했다. 내가 주장한 내용이 미국의 교육심리학박사(아마 버클리대)에 의해 독창적으로 주장(95%이상일치)이 되어 그는 미국의 잡지에서까지 화제가 된 것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까지 유명하게 되었다. 만 14세 때 독창적으로 적용하고 만 22세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수면 중 아이큐 증가법’이었다. 나는 수백 가지 아이디어와 글을 남긴 상태였다. 또한 서태지나 신승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는 8년 만에 이루어졌다. 신승훈이 피한 상태로 나왔지만 말이다. 노벨문학상을 꿈꿨는데 아직이지만 생금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얼마 전 동아일보에 나온 세계적 석학 철학자의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다원주의식으로 흘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있었는데 그 비슷한 사상을 나는 몇 년 전에 독창적으로 이룩했으며 출판이 된 책에 남겼다. 동아일보에 2~3년 만에 남겨지게 된 것이다. 정계 진출을 꿈꿨는데 훗날(1996), 국민회의 입당의사를 타진한 적 있고, 어디를 지나다 보니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정계진출 등용문 교육 식으로 정문 쪽에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한나라당 제 2기 정치아카데미에 참여한 후로 정치인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고 있다. 대선 주자인 손학규 경기 도지사(그 당시)와는 악수를 하는 영광을 얻었다. 물론 사진을 촬영했다. 현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꿈꾸고 있다. 그래서 정신보건사업에 대해서도 열정을 쏟고 싶다. 나는 이명박 후보를 밀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이회창 후보에게 조언을 했던 여자가 강의를 할 때 나를 앞으로 불러내 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줬다. 우연의 일치일까. 주로 복장과 이미지에 대한 조언이었다. 나의 큰삼촌은 이회창의 할아버지의 장례미사를 집전한 사람이었다. 큰삼촌은 교황 요한바오로 2세(2005년 4월 2일 선종)의 대학원 후배이다. 통일 후의 북의 경제개발을 어떤 식으로 할 지 생각해 책에다 남겼는데 훗날, 김대중 대통령이 나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생각을 말해 신문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대통령과 서로의 생각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호랑도 통일비용 500~1000조원 이상 아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도 모으려고 원했는데 이도 몇 년 후 이루어졌다. 무임승차를 하기 위해 오른 손을 들으니 미그19기를 몰고 넘어온 이웅평 대위(그 당시 중령)의 차가 섰다. 박세리와는 세 번 옆동네 인연이 된다. 김수환 추기경과 있었던 일, 청와대 경호실장과 있었던 일, 청와대 구경 간, 이밖에 등등.


어렵다고 비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겨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기 미래는 자기 생각이 만든다. 초등학교 여 선생님이 얼마 전 목사님이 이러한 얘기를 해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3년 전에 간절하게 원했던 것을 현재 모두 이뤘다는 것이다. 역시 간절한 마음이나 긍정적인 생각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씨를 제공해 준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초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제공을 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던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져 바다에 심어져라 해도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