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입속을 들여다보면 천하의 이치가 보인다
권오길 /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스님께 제자 몇이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잠깐 동안 망연(茫然)히 먼 산을 본 뒤에 고개를 돌려 제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갑자기 입을 짝 벌려 보인다. “내 이가 남아 있느냐?” “없습
니다.” “그럼 내 혀가 남아 있느냐?” “예, 있습니다.” “단단한 것이 먼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이 오래 남는 법이다. 천하의 이치가 다 이 안에
있느니라….”
그렇다. 부드러운 것이 딱딱한 것보다 질긴 것이요, 남을 이기는 것에도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되레 지는 것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에는 이로 또 설저유부(舌底有斧), 혀 밑에 도끼를 숨겨 놓고 사는 것이
알고 보면 다 부질 없는 일이다. 하심(下心)으로 살다보면….
신체의 건강 신호, 붉은 입술
단순호치(丹脣皓齒) 즉, 옛날부터 붉은 입술과 하얀 이는 미추(美醜)의
기준으로 삼았다. 입술부터 보고 입(구강) 안으로 들어가자. 우선 거울
앞에서 손으로 입술을 잡고 밖으로 까뒤집어보자. 피부의 색깔과 생김새가
어떤가? 그렇구나! 입술이란 입안의 근육 일부가 바깥으로 말려 나온 것임
을 알 수가 있다. 입술을 일부러 끌어 안으로 넣고 입을 꽉 다물어버리면
입술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그 입술 부위에는 실핏줄이 많이 분포하여 그렇게 볼그레한 것이다.
몸이 좋지 않으면 입술에도 신호가 오니, 피가 흠뻑 돌지 못해 불그무레해
진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기의 건강을 과시하기 위해서 입술 연지를 발라
불그대대하게 보이게 한다. “나, 이렇게 건강한 유전자를 가졌으니 남성들
이여 오라!”라는 신호인 것이다.
우리몸의 가장 딱딱한 물질, 이
입술을 열면 그 안에는 이가 “나 여기 있소”하고 쑥 모습을 들어낸다.
이(齒)가 오복의 하나라고,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귀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젖니 20개로 지내다가 모두 다 빼버리고 새로 간니(영구치) 32개
를 가지고 죽도록 산다.
그런데 그 이도 ‘3·3·3의 법칙’을 잘 지켜나가야 고종명(考終命)까지 잘
간수를 할 수가 있다. 하루 3번, 식후 3분 안에, 3분간 이를 잘 닦아주라
는 것이다. 이 겉에는 반짝이는 에나멜(enamel)이라는 물질이 싸고 있으니
이것이 우리 몸에서 가장 딱딱한 물질이다. 뼈보다 더한 이것도 거친 칫솔
질에 마모돼 버리니 이를 닦을 때에는 이 사이에 뭐가 끼인 것을 뽑아
낸다는 그런 생각(정도로)으로 부드럽게 문질러줘야 한다.
다목적 생성물, 혀
다음은 ‘부드러워 다치지 않고 오래 가는’ 혀를 보자. 혀는 맛을 느끼고,
음식과 침을 섞고, 음식을 식도로 밀어 넣어 삼키게 하며(혀를 움직이지 말고
침을 넘겨보면 안다), 소리내기(발성)에도 중요하다(짧으면 혀짜래기 소리를
낸다). 한 마디로 다목적인 생성물이다. 어디 그뿐인가. 감정표현까지 맡고
있지 않는가. 무안을 당했을 때나 겸연쩍을 때 내미는 혀에다 남을 놀릴 때는
‘메롱’하고 내미는 혀도 있다.
입안에서는 음식을 잘게 씹는 것 말고도 탄수화물(녹말)을 소화시키는
일도 한다. 귀밑샘, 턱밑샘, 혀밑샘에서 나오는 침(타액)이 고분자 물질인
다당류를 엿당이라는 이당류로 소화(가수분해)시킨다. 밥을 오래 씹으면
침의 프티알린(ptyalin)이란 효소가 녹말을 달큼한 엿당으로 분해한다.
그러나 밥을 물이나 국에 말아먹으면 녹말과 효소가 만나지 못하게 되어
녹말 분해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상식적인 과학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지도 않았는데 침샘이 말라버려 침이 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침 하나 술술 잘 나오는 것도 무한한 행복이어라!
그리고 침에는 항균 역할을 하는 라이소자임(lysozyme)이란 물질이 들어
있다. 한 마디로 뱀이나 지네의 독이 모두 그 동물의 침이듯, 우리의 침도
다른 생물에게는 무서운 독이 된다. ‘침 먹은 지네’라고, 우리의 침 한
방에 그 독한 지네도 맥을 못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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