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도 더 넘었다. 홍도로 달팽이 채집을 나섰다가 태풍을 만나 그만 흑산도에 도중하선을 했다.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이렇게 흥얼거리며, 귀양살이 하던 정약전 선생을 기리기도 하였지. 그런데 그 작은 섬에 이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이태원 지음·청어람미디어)의 원저자는 정약전 선생이고, 다산의 형으로 순조 1년(1801) 신유박해 때 천주교와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신지도·우이도·흑산도를 떠돌며 유배생활을 했다. 하마터면 화를 삭이지 못해 몸져누워 버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되레 섬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바다생물들을 관찰하고 세세히 기록해둔 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100년의 세월 두 번이나 지난 그 시절에 이런 분이 계셨다니!
책에 ‘어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물고기는 물론이고 필자가 전공하는 고둥, 조개, 오징어, 문어무리(패류)와 게(갑각류), 성게(극피동물), 해파리(강장동물), 해초들을 뭉뚱그려 다루고 있다. 분해서 성이 왈칵 차오르지만, 그 때마다 바닷가에 나가 생물들을 벗으로 사귄 ‘생물학자’ 정약전! 무엇보다 세상을 잊으려 바다에 시름을 띄워버리는 처절한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퇴임을 하고 글쓰기에 눈을 혹사하는 내 꼴이 오버랩되어 오는 것은? 저자는 고등학교 생물교사. 불후의 명작을 쓰느라 숱한 고생을 무릅쓴 저자에게 더없는 찬사를 보낸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