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學산책

(96) 가정의 평화

kongbak 2007. 6. 6. 09:05
 

(96) 가정의 평화


 서툰 희생과 봉사보다는 남편을 멸치처럼 달달 볶고, 마누라는 명태처럼 두들이다 오는 힘의 균형 점에서 더욱 단단한 가정의 평화가 온다.


** 싸모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죠. 가정이 싸모님을 버리기 전에 싸모님이 가정을 먼저 버리시죠 - 강남제비 **


** 제비는 3월 3일에 와서 9월 9일에 강남으로 떠난다 - 음력기준이라서 정확도는 낮은 편임 **



(97) 발전은 과연 좋은 것인가?


코알라가 멸종을 면한 이유


 코끼리는 지나치게 커져서 멸종하였습니다.

 코끼리는 지나치게 커져서 옛날에는 300여 종이나 되던 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오직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남미에 살고 있는 코알라는 역으로 철저하게 게을러서 나무에 매달린 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몸에 이끼가 껴서 식물과 구별하기 어려워져 멸종을 면했다고 합니다.


정당화


 가장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대학교수들 사이에도 이권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이성을 잃고 양보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결정을 내릴 때 감성을 이용하고 그 결단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이유를 찾을 때는 최상층에 있는 이성적 뇌 조직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한 이유


 그러면 인간은 왜 이성으로 본능을 억제 할 수 없을까요.

 그것은 인간의 뇌 구조에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파충류가 진화하여 젖먹이 동물이 되고 다시금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파충류의 뇌가 진화 발전하여 인간의 뇌가 된 것이 아니고 젖먹이동물은 파충류동물의 뇌를 쌓아 나아갔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3층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3층간의 계급조직이 명확하지 못하여 최상층의 이성적 뇌 조직과 하층의 파충류 뇌 조직 사이에 조정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인류의 멸망


 공룡이 6,500만년 전에 멸망했고, 또 다시 지금으로부터 6,500만년 뒤 지구상에 새로운 지적 생물이 문명을 구축하고 고대생물을 연구하여 “옛날 지구상을 지배하며 살던 인류라는 동물이 약 6,500만년 전에 전멸하였다.


그 원인은 ‘지나치게 뇌가 발달하여 똑똑한 체하다가 다핵탄두(多核彈頭)와 같은 바보스러운 무기를 발명하여 전쟁으로 자멸하였다.’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고다이라 구니히코의 『수학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에서


**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본능이 이성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현상이 자주 있습니다 **



(98) system


 이성이란 감성이라는 바다에 뜬 하나의 조각배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이러한 감성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system이다.

 대형슈퍼에서 짐을 싣고 다니는 카트를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성이고, 약간 미안하지만 무거우니까 주차장까지 밀고 가고자 하는 마음은 감성이요, 아들놈이 빈 카트를 밀고 가서 줄 세우고는 100원 동전 하나를 찾아오는 것이 system이다. 


** 문명에는 우열이 없다 - 「슬픈 열대」의 레비 스트로스 **


** 함수 그리고 아날로그 수학의 한계 **


 교통사고 시 30km 속도이면 5%가 죽고 60Km 속도이면 95%가 죽는다고 한다.

위의 식을 함수로 나타내어라.



(99) 신이 사는 곳


 라이프니찌


 수학뿐만 아니라 법률학, 종교, 정치, 역사, 문학, 논리학, 형이상학, 사변철학 등으로 후세에 명성을 남긴 라이프니찌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자기에게 높은 급료를 주고있는 왕후의 사생아를 위해 죽을 때까지 헌신하였다.

 또 뛰어난 법률지식을 이용하여 왕후 귀족의 재산을 늘려 나가는 일 따위에 몰두하였다.

 뉴우턴은 상류계급에 들어가려고 노골적으로 노력하였다.

평민출신의 천재 중의 천재수학자 가우스는 사회적으로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였다고 전해진다.


 신의 두뇌에 가장 가까운 이 천재 수학자들이 상류층에 들어가도록 노력하는 걸 보면 신은 상류층에 사나보다.


** 맞지 않는 구두는 짚신만도 못하다 **



(100) 한국 기독교의 현 위치


 한국인의 1/4 기독교인이다. 일본은 3/100이다.

 세계 50대 교회 중 23개 포함되어 있다.

 10대 교회 중 5개가 포함되어 있는데 제1위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이고,  2위가 안양 남부 순복음 교회이라고 한다.

 국회의원 300명중에서 기독교 100명. 불교50명, 천주교 30명 가량이다.


**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어온 이들이 범인(凡人)과 다른 점은 지성도, 힘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상도 아니며 오직 하나 보다 나은 원대한 야망 하나 뿐 **


** 세계에서 비빔밥을 먹는 민족은 한국인 뿐이라 한다. 그래서 여러 종교가 섞어도 분쟁 없이 잘살아간다 **




(101) 우동 한 그릇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발언 시간에 읽어 일본 전 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든  ‘우동 한 그릇’ 이라는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 우동을 먹는 풍습이 있다.


얼마나 울지 않고 베겨 내는가


 가난한 어머니와 어린 두 아들은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하는 것이 부끄러워 사람들이 뜸한 마감시간에 와서 한 그릇을 주문하고는 셋이서 나누어 먹으며 가난한 시절을 슬기롭게 넘기는 매우 일본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얼마나 울지 않고 베겨 내는가를 시험하는데’ 사용한다고들 하는데 당신의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 실험해 보세요.


 홋카이도(北海道)


 눈 많기로 유명한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의 우동집 ‘북해정(北海亭).

오가는 발길로 붐비던 섣달 그믐날의 거리도 밤 12시를 넘기자 인적이 뜸해졌다.

설날 채비를 위해 일손들을 서둘러 돌려보내고 하루 일을 마감하려 할 무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유리문이 열렸다.

 두 사내아이의 손을 잡은 채 젊은 티가 그대로인 한 여자가 가게 안을 들어섰다.

 두 꼬마는 여섯 살 열 살쯤 됐을까?

 엄마는 유행이 지난 낡은 반코트, 사내아이들은 설빔으로 장만한 듯한 운동복 차림. 여느 손님과는 달리 쭈뼛쭈뼛하던 엄마는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하는 주인에게,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는 듯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우동… 일인분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순간 엄마의 등뒤에 숨어있듯 하던 두 꼬마는 걱정스런 눈으로 여주인 쳐다보았다.

“그럼요, 그럼요…자, 이쪽으로 어서 앉으세요."


 일부러 예사 때보다 흥을 낸 여주인은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주방 안을 향해


“우동, 한 그릇!"


하고 소리친다.

 아까부터 늦은 밤의 손님과 아내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방 속의 남자주인은


“우동 한 그릇!”

하고 따라 외치며, 우동 국수를 손에 잡았다. 보통 때의 1인분에 반 그릇 분을 더 얹어, 데우기 시작했다.

 금방 데운 우동 국물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우동 한 그릇을 놓고, 세모자는 이마를 모았다.


 “맛있네요."

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

하며 한 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다음해 섣달 그믐


 분주했던 한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고, 다시 맞은 그해 섣달 그믐날밤.

 이제 일을 걷어야지 하며 가게 안을 챙길 무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는 여 주인에게

“저 우동 한 그릇만 시켜도 되겠어요”

라며 미안한 듯이 주문을 해왔다.

 “그럼요, 그럼요,”라고 선선하게 응답하며, 작년의 그 자리 난로 옆 2번 테이블로 모자를 이끌었다. 여주인이 주방을 향해


 “우동 한 그릇!”

하고 크게 외치자, 남자주인은


"우동 한 그릇!"


하고 응답하면서 막 꺼버린 화덕에 얼른 불을 붙인다.


 남편에게 살며시 다가간 여주인은

“서비스하는 생각으로 세 그릇 분을 데워요”

라고 귀엣말로 건네는 것이 난로 옆에서 언 손을 녹이는 세 모자에겐 들리지 않았다.

 곱절 분량의 우동


“안돼. 그럼 오히려 불편해 할 꺼야…”

하는 남편의 대꾸도 물론 작은 목소리였다.

 곱절 분량의 우동 그릇을 마주한 세 가족은

“맛있네…”

"올해도 북해정에서 우동을 먹은거야."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라고 주고받으며 150엔을 치르고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날 수 십번 되풀이했던 인사말로 전송한다.

 어느새 닥친 섣달 그믐날, 가게 주인 부부는 서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밤이 이슥해 지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레었다.


가격표


 남편은 ‘우동 2백엔’이라고 적힌 나무로 된 가격표를 뒤집어 걸었다. 올 여름 값을 올리기 전의 정가인 ‘우동 백오십엔’이란 가격표로 바꿔 건 것이다.

 난로 옆의 2번 테이블에 ‘예약석’이란 표찰을 올려놓은 것은 여주인이었다.


우동 두 그릇


 형은 중학교 교복차림,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었던 듯한 잠바를 입고, 엄마 손을 잡은 채 가게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10시를 넘어서였다.

 “저…우동 두 그릇만 시켜도 되겠어요”

라는 엄마를 2번 테이블로 안내한 여주인은 ‘예약석’이라는 표찰을 슬그머니 치워 등뒤로 감췄다. … (나머지는 사서 보시도록)

** 일본언론은 실제 인물을 찾느라고 야단이 났다. 하나 이것은 ‘구리 료헤이’의 소설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