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學산책

과일 가게의 수학

kongbak 2006. 6. 17. 10:12
과일 가게의 수학
[한국일보 공동] 수학으로 세상읽기 (3)
▲ 박경미 교수  ⓒ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진열할 때 보통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올린다. 우선 제일 아래 층의 과일은 가로와 세로로 열을 맞추어 배열한다. 그 다음 층의 과일은 아래 층에 있는 과일들 사이에 생긴 틈(dimple)에 배열하고 이런 방식으로 계속 쌓아 올린다.

과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이 쌓기 방식은 주어진 공간에 공을 가장 빽빽하게 쌓는 방법이기도 하다. 직관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자명해 보이는 공 쌓기 문제는 1611년에 케플러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케플러는 동일한 크기의 공을 쌓을 때 과일 가게의 방법보다 더 촘촘하게 쌓는 방법은 없다는 가설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390년 가까이 미제로 남아있던 ‘케플러의 추측’이다.

▲ 면심입방쌓기와 육각조밀쌓기  ⓒ
케플러의 추측은 결국 1998년 미시간 대학교의 토마스 헤일스가 10년간의 연구 끝에 증명해냈다. 헤일스는 공을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기술하는 150개의 변수를 가진 방정식을 만들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 방정식을 풀어냈다. 증명은 250쪽의 논문과 함께 3기가바이트에 달하는 컴퓨터 파일로 되어 있다.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쌓아 올리는 방법은 ‘면심입방쌓기’이거나 ‘육각조밀쌓기’이다. 면심입방쌓기는 네 개의 공을 모아놓은 위에 생기는 틈에 공을 배열하고, 육각조밀쌓기는 세 개의 공 사이에 생긴 틈에 공을 배열한다. 언뜻 생각하면 세 개마다 하나씩 올려놓는 육각조밀쌓기의 밀도(전체 공간에서 공으로 채워진 공간의 비율)가 높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면심입방쌓기에서 생기는 틈이 더 깊기 때문에 밀도는 0.74로 같다.

실제 과일 가게의 방식으로 공을 쌓았을 때 그림에서 보듯이 아래나 위에서 보면 면심입방쌓기이고, 어슷하게 자른 단면으로 보면 육각조밀쌓기가 된다. 결국 이 두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쌓아 놓은 것을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M&M 초콜릿으로 실험하고 있는 채킨 교수(왼쪽)  ⓒ
케플러의 추측은 동일한 크기의 공을 쌓을 때의 문제이고, 얼마 전에는 공간을 공으로 채울 때와 타원체로 채울 때의 밀도를 비교한 연구가 ‘사이언스’에 발표되어 눈길을 끌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물리학자 폴 채킨 교수는 공 모양의 구슬과 타원체인 M&M 초콜릿을 ‘무작위’로 상자에 넣고 남는 공간이 얼마인지 조사했다. 실험 결과 구슬로 채울 때의 밀도는 0.64인데 반해, 타원체로 채울 때의 밀도는 0.68이어서 타원체가 공간을 더 빽빽하게 메울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높은 밀도의 세라믹 물질을 고안하는 것에 이용되는 등 실제적인 활용 가치도 높다고 한다.

초콜릿 애호가인 채킨 교수가 제자들에게 연구실의 큰 드럼통을 초콜릿으로 채우라고 농담을 던졌고, 가장 많은 양의 초콜릿을 담기 위해서는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이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발견을 가져온 것을 보면 초콜릿도 좋아하고 볼일이다.
 
 
  
2004.05.16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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