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유망 학문은 무엇인가. 세 가지 큰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글로벌 스케일이어야 할 것. 둘째, 생명을 살리는 학문일 것. 셋째, 우리 민족의 강점을 살릴 수 있을 것. 차길진 법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는 세 가지를 꼽는다. 농학(農學), 종교문화학, 미국학.
얼마 전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을 막는 데 주어진 시간은 8년뿐이라는 심각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생물종 20~30%가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한다. 화석연료로 인한 온실가스가 원인이라지만, 좀 더 캐보면 자연을 죽여서 사람을 살리려는 '문명관'이 근원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 문명은 국가 간 정복전쟁, 자연파괴 등 '죽이는 학문'을 향해 치달려 왔다. 이제 살리는 문명과 학문이 촉망받을 때가 왔다. 그러나 '원시로 돌아가자'는 구호의 문명론은 허망하다. 생산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문명론이 최첨단 학문이 될 것이다. 대표적인 살리는 학문으로 '농학'이 유력하다. 기존에 생산량 위주의 자연 파괴적 관점에서 자연의 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공해 없이 자연력을 이용하는 관점으로 전환된 농학.
농학은 총체적인 자연 에너지 학문이다. 사람의 에너지가 식량이요, 기계의 에너지가 석유(화석연료)다. 화석 연료로 식량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죽이는 문명이 되었던 것이다. 요즘에는 사탕수수에서 에탄올을 추출하는 산업이 각광받고 있다고 하니, 농업은 명실공히 에너지 산업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땅 위의 콘크리트 공장만이 공장이 아니라 땅 자체가 천연 공장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되살릴 시기다.
중국의 지붕은 웅장하면서도 날카롭게 휘어져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본의 지붕은 곡선이 전혀 없어 매우 인위적이다. 한국의 지붕은 직선과 곡선이 잘 조화되어 있다. 중국은 대자연 정복 의지가 엿보이고, 일본은 자연을 피한 인위적인 조직력이 드러난다. 한국은 인간의 손길이 미치면서도 자연과 조화하는 심성임을 알 수 있다. 수천 년 벼농사의 전통에서 입증되듯, 살리는 학문 농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잠재력에 의심이 없다. 땅은 문화다. 유구한 땅의 문화를 일구어온 한민족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을 차세대 학문이 농학이라고 한다.
지구 대재앙까지 8년이라지만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산천은 이미 재앙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토는 무분별한 화학 비료와 농약의 살포로 지렁이가 살지 못할 정도로 죽어있다. 당장 논에 가서 진흙을 찍어 맛을 보면 안다. 산속의 흙처럼 진한 흙 맛이 나면 산(生) 흙이요, 모래처럼 밋밋한 맛이면 죽은 흙이다. 죽은 흙엔 유기성분을 저장하는 박테리아가 없어 대량의 화학비료를 다시 사용하지 않으면 곡물이 자라지 못한다. 죽은 흙이 흘러내린 물과 공기도 말할 것도 없다.
농학은 살리는 학문이다. 지구가 곧 땅이기 때문에, 농사를 땅의 철학으로 승화시킨다면 땅을 살리면서 식량에너지를 얻어야하는 전 지구적 과제에 도전하는 블루오션 학문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쌀은 곧 땅이다. 쌀을 살려야 땅을 살릴 수 있다. 수량 위주의 정부수매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쌀 보호정책은 그동안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 개방을 저지해 왔다. 그러나 농촌의 마지막 파수꾼이라는 이 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에 와서는 쌀을 죽이는 주요인으로 뒤늦게 의심받기 시작했다. 시장경제의 바탕인 소비자의 수요를 선점하지 못한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요자를 외면한 공급자(생산자)위주의 정책.
음료수 빨대의 예를 들면, 처음에는 한 종류였지만 지금은 천여 종의 빨대가 사용되고 있다. 소비자의 기호 발달과 분화를 충실하게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애그리비즈니스'라고 하여 웰빙 식생활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고 조리의 용도에 맞는 수십 가지 쌀 품종을 개발하고, 소비자 수요에 맞추어 계획 재배와 생산을 하고 있다. 농업이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니라 두뇌산업(IT산업)이란 인식이어야만 가능한 발상이다.
작가/김영수(paanmiso@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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