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學산책

연으로 가는 화물선

kongbak 2007. 2. 15. 21:47
연으로 가는 화물선

바람 잘 땐 엔진으로 움직여… 연료비 최대 50%까지 줄여 돛방식보다 효율적이고 안전

겨울 세찬 바람을 받고 하늘로 오르는 연에 새해 희망을 실어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그 연으로 화물선을 움직이겠다는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형 연을 이용해 바람의 힘으로 대양(大洋)을 오가는 화물선을 끌겠다는 것. 연을 이용하면 기존 화물선에 비해 최대 50%의 연료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 4월 연 매단 화물선 등장

독일의 화물선 업체인 벨루가(Beluga)사는 올 4월 유럽과 남미를 오가는 화물선에 넓이가 160㎡나 되는 대형 연을 매달 계획이다. 바람이 세찬 날 연을 띄우면 몸이 끌려가는 경우가 많다. ‘스카이세일(SkySail)’이라 불리는 연을 매단 화물선의 원리도 마찬가지. 화물선 상공 100~300m 높이로 띄운 연이 맞바람을 받아 배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연으로 배를 움직이겠다는 생각은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스카이세일사의 스테판 브라즈 사장에서 나왔다. 연 애호가인 그는 몇 년 전 보트 위에서 연을 띄웠다. 배는 바람을 맞고 가고 있었는데 연을 띄우자 배 속력이 줄어든 것. 이를 역이용하면 연의 힘으로 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스카이세일사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120만 유로(한화 약 15억원)의 지원을 받아 벨루가 등 여러 화물선 회사와 함께 연 추진 화물선을 개발해왔다. 처음엔 길이 3.5m짜리 보트로 연의 힘을 확인한 후 점차 배의 크기를 늘여왔다. 이미 55m 길이의 배를 이용한 최종 테스트를 마쳤으며 올 4월 140m의 ‘MS 벨루가 스카이세일’호를 진수한다는 계획이다. 이 배가 성공하면 또 다른 3대의 화물선이 스카이세일을 장착할 예정이다.

화물선은 기존의 석유 연료를 사용하는 엔진도 갖추고 있다. 바람이 좋을 때는 연을 이용하고 아닐 때는 엔진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돛 방식보다 안전한 것이 장점

연을 이용해 배를 움직이겠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윈드십(WindShip)’이란 프로젝트가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연이 아니라 범선처럼 배 중앙의 대형 마스트에 돛을 다는 형태였다. 그러나 마스트는 화물 선적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데다 짐을 싣거나 내리는 데 방해가 됐다. 이 때문에 접을 수 있는 마스트가 시도됐으나 가격 문제로 실용화되지 못했다.

또한 마스트에 돛을 달면 옆에서 바람이 불 경우 마스트 자체가 배를 기울게 하는 가상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 반면 연은 배의 표면에서 줄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배를 기울게 하는 지렛대의 길이가 크게 짧아진다. 게다가 연이 배를 위로 띄우는 효과가 있어 배가 기우는 것을 상쇄한다.

그렇다고 스카이세일이 싼 것은 아니다. 연을 띄우려면 배 크기에 따라 50만~250만 유로가 들어간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6억1500만원에서 30억7000만원이나 된다. 또 연을 조종할 엔지니어를 고용해야하는 부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 추진 화물선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최근의 유가 상승과 환경규제 때문이다.


연료비·오염물질 저감 효과


2004년 화물선에 사용되는 연료는 톤(t)당 150달러였으나 2006년에는 300~400달러로 뛰어올랐으며 곧 45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연을 사용하면 바람이 가장 이상적으로 불 때는 연간 50%까지, 일상적으로는 10~20%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벨루가사는 하루 7500달러의 연료비가 6000달러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EU와 각국 정부는 환경관련 규제를 강화하면서 화물선이 대기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는 더 비싼 연료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역시 연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연은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스카이세일사 외에도 미국 카이트십(KiteShip)사도 연으로 움직이는 배를 개발하고 있다. 2006년 10월 이 회사는 연료비를 25% 절감한 연 추진 선박으로 캘리포니아주의 클린텍경연대회 운송수단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연으로 대서양·사막 횡단 기록도

연으로 배나 자동차를 움직이려는 시도는 오래됐다. 이미 1826년 영국의 조지 포콕이라는 사람이 연으로 마차를 끌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는 1990년대 초반 뉴질랜드의 연 디자이너 피터 린이 그린랜드에서 연으로 썰매와 뗏목을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가장 극적인 일은 2006년 8월 프랑스의 앤느 케메르가 연을 단 보트로 대서양을 단독 횡단하는 데 성공한 것. 케메르는 2006년 6월 18일 뉴욕을 출발해 55일 만에 3450해리를 항해해 대서양을 횡단했다.

2004년에 10월에는 연을 매단 자동차로 사막을 횡단한 사람도 나왔다. 영국의 브라이언 커닝햄 교수는 연을 매단 3륜 자동차로 고비 사막 1000㎞를 종주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는 2002년 남극 횡단에도 시도했으나 역사상 가장 바람이 적은 때를 골라 실패한 바 있다. 연을 매단 자동차는 최대 시속 80㎞로 주행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