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식물의 생존전략이 신기하도다!

kongbak 2006. 9. 13. 13:08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식물의 생존전략이 신기하도다!

 

 

살갗이 모기(벌레)에 물리거나 상처가 나면 곧바로 근방에 있던 백혈구가 몰려와 그 자리에 히스타민(histamine)을 막 분비한다. 히스타민은 모세혈관을 확장시키고 혈관의 투과성(透過性)을 높이는 물질이다. 때문에 다친 자리에 피가 많이 흐르게 되고 혈액이 조직 사이로 스며들어 열이 나면서 벌겋게 부어오르면서 가렵거나 쓰리고 아프다. 그리하여 다친 자리에 혈장 단백질(항체가 들어 있음)이나 식세포(食細胞·백혈구)를 더 많이 흐르게 하여 빨리 낫게 한다. 때문에 아주 가렵거나 매우 아프지 않으면 항(抗)히스타민제를 바르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이 백 번 옳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치유(治癒)한다! 약이란 단지 도우미(helper)일 뿐!

식물도 병원균이나 천적에 대한 방어 기작(메커니즘)이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어디 보자꾸나. 병원균이 세포벽에 달라붙어 유전물질(DNA)이나 효소(단백질)를 쑤셔 넣으려 들면 ‘공격한다’는 신호(signal)를 재빠르게 모든 세포에 전한다. 신호물질은 체관을 타고 보내지고(옆의 친구 식물에게 적의 침범을 알리는 경고성 냄새를 뿜기도 함), 상처 부위에는 단백질 분해 효소 억제물질을 유도하여 식물세포벽 단백질의 녹음(용해)을 막는다. 그리고 세포벽이 변성하면서 딱딱한 리그닌(lignin·木質) 물질이 쌓이고, 파이토알렉신(phytoalexine)과 같은 항생(抗生)물질까지 만들어낸다. 식물이 뭘 안다고?

이렇게 식물과 척추동물(사람 포함)의 면역반응이 퍽 유사하기에 학자들은 “동·식물의 면역반응이 같은 조상(뿌리)에서 시작했다”고 단정한다. 여러분이 토끼풀 한 잎을 따거나 장미 한 송이를 꺾었을 때 그것들이 얼마나 아파하는지 짐작할 것이다. 말 못하는 식물을 괄시·무시하지 말라. 더더욱 식물(植物)은 우리에게 먹을 것(食物)을 만들어주는 위대한 창조물이 아닌가! 우리의 어머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도 ‘과연 식물답다’는 생각이 든다. 다 알다시피 나방의 애벌레인 송충이는 솔잎을, 배추 흰나비 유충인 배추벌레는 배춧잎을 뜯어먹는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식물이 마냥 바보 멍청이 같이 뜯어 먹히고만 있지는 않다. 이때 소나무나 배추는 상처 부위에서 테르펜(terpene)이나 세키테르펜(sequiterpene) 등의 화학물질(신호물질)을 훅훅 풍긴다.

흑흑! 이게 무슨 향긴가? 말벌들이 신호물질의 냄새를 맡고 소나무와 배추밭에 쏜살같이 달려온다. 이렇게 자기를 죽이려드는 천적을 어서 잡아가라고 말벌에게 ‘문자’를 보낸다 하니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가 다 몰라서 그렇지 자연계는 신비덩어리다! 그런데 말벌은 식물이 보낸 신호 말고도 유충의 침과 똥에서 나는 카이로몬(kairomone)이라는 향내를 맡고 찾아오기도 한다.

이야기는 들을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남미에서 자생(自生)하는 어느 콩과 식물은 진딧물이 달려들면 역시 메시지를 보내 개미를 부른다(개미는 다른 곤충으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주고, 진딧물의 달콤한 오줌을 받아먹으면서 공생함). 개미들이 들끓으면 메뚜기가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 식물은 알고 있더라! 다시 말해서 진딧물에 액즙을 빨리는 것이 메뚜기 떼에 통째로 먹히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신통하도다! 뿐만 아니라 천적이 달려들면 갑자기 맛을 떨어뜨리거나 이파리를 시들게 하는 놈 등,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별의 별 수단을 다 동원한다. 식물 만세다! 푸나무 만만세!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