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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핵개발과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

kongbak 2006. 9. 10. 18:19
중국의 핵개발과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
 중국은 1964년 10월 최초로 원자폭탄 실험을 실시한 이후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 왔다. 중국은 핵무기를 이용해 자국 방어 목적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국가이익과 영향력을 최대한 증대시킨다는 것이며, 이는 중국의 정권 창립부터 미국과 구소련의 위협에서 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과 유럽대륙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탄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능력과는 다른 위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감축하고 있는 추세에도 중단하지 않는 중국의 핵실험은 또 다른 의미를 국제사회에 던져주고 있다. 아울러 군사적으로 재래식 전력을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국군에 있어서 핵무기의 지속적인 개발의도와 전략을 이해함으로써 중국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중국의 핵 전략과 발전과정 및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중국의 핵 전략

 핵전략 기조

 중국의 핵무기 사용원칙은 일반적으로 비핵국에 대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용하지 않으며 기타국에 대해서는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억제력 강화를 위한 ICBM개발 등 핵전력 강화와 지상, 해상, 공중의 이른바 3각 핵무기 발사체제 구축을 지향하는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핵무기 전략사상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는바 제1단계는 1964년부터 1984년까지이며 중국이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으로부터 선제 핵무기 공격을 받았을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대방의 인구밀집 지역에 원자탄을 사용하여 적으로 하여금 감히 경거망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제2단계는 1984년부터 2000년까지로 첫째, 핵무기로 방어를 하고 재래식 전력으로 공격을 하거나 둘째, 적에 대해 핵무기로 위협을 가하고 셋째, 핵무기 공격을 당했을시는 적에 대해 핵보복을 하며 넷째, 핵무기로 반격시는 효과적으로 적을 궤멸한다는 것이다.

 제3단계는 2000년 이후 핵무기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단계로써 첫째, 국가안정과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전략 사상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한다. 둘째, 피동적인 핵무기 위협사상을 능동적인 사상으로 전환한다. 셋째, 제한적인 핵무기 보복사상을 전면적인 핵무기 보복사상으로 전환한다. 넷째, 단편적인 핵무기위협을 복합적인 핵무기위협으로 전환한다. 다섯째, 핵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략사상을 한층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중국은 핵무기의 정확성과 신뢰성, 생존성 제고를 위해 현대화에 주력하고 있으나 규모의 제한과 탄두의 정확성 불안으로 전략적 억지에 주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핵무기 전략

 중국은 국가의 위엄과 자주성, 안전도모, 세계 정치적인 영향력 확보, 지역권력 지위확립 및 국내정치적인 단결과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 정권수립 직후부터 핵무기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중국은 미국(1945),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에 이어 1964년 10월 16일 최초로 핵무기 실험을 했다. 이후 핵무기 발전속도는 매우 빠르게 발전하여 70년대말 전략핵무기 발사기 수량에 있어서는 세계3위, 대륙간탄도탄 수량은 세계 5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 중국은 원자탄과 수소탄 인공위성 발사 계획에 따라 1961년 최초 단거리액체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1964년 중거리액체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후 1964년 10월 16일 최초 원폭실험에 성공, 1967년 6월 17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였으며, 1970년 4월 24일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가 성공했다.

중국의 핵무기 발전과정

 ▲1955년 4월 소련과 원자력협정 체결 ▲1959년 6월 소련에 의해 중소원자력협정 일방적 파기 ▲1964년 10월 원폭실험 성공 ▲1967년 6월 수폭실험 성공 ▲1984년 1월 IAEA가입 ▲1984년 5월 서독과 원자력협력협정 서명 ▲1984년 9월 IAEA이사회가 상임이사국으로 승인 ▲1984년 10월 브라질과 원자력협력협정 서명 ▲1985년 4, 6, 7월 아르헨티나, 영국, 미국, 일본과 원자력협력협정 서명 ▲1988년 9월 IAEA와 안전조치협정 체결 ▲1992년 3월 NPT가입.

 주요 전략 핵무기 발전

 중국은 1964년 10월 16일, 최초의 원자탄 실험에 성공한 후 지금까지 여러 종류와 형식의 전략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탄두 보유량은 450기 정도이며, 그중 약 300기는 비상발사 미사일, 폭격기 및 잠수함발사 미사일에 장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보유량은 2~3배에 달할것으로 본다. 이는 중거리대륙간탄도탄, 장거리대륙간탄도탄과 잠수함발사 대륙간탄도탄을 의미한다. 아울러 전략폭격기를 보유 완벽한 핵공격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와 병행하여 이러한 수단을 통합한 분야인 우주계획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즉 중국은 다양한 전략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핵보복 공격력 확보와 위협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동풍 3형(DF-3, CSS-2)

 중거리 탄도미사일로서 1971년 최초로 배치했으며 유효사거리 2,800㎞로 탄두는 60기(일부 자료는 38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동형의 개량형 연구발전에 성공하여 사정거리가 3,100㎞이며 현재도 중국의 주요 전략무기로 운용되고 있다.

 동풍 4형(DF-4, CSS-3)

 대륙간탄도탄으로 1963년 개발이 시작되어 1970년 시험발사했고, 1975년 최초로 4기가 배치되었다. 이는 액체연료를 사용한 무선유도미사일로 공산오차는 800~1,000m 정도이다. 동 미사일은 약300톤의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으며 최대사거리는 7,000㎞이다. 현재 보유수량은 10기로 판단된다.

 동풍 5형(DF-5, CSS-4)

 대륙간탄도탄으로 1980년 5월 2기를 시험발사했다. 소련의 SS-18형과 유사하며, 무게 4,000~5,000㎏으로 폭발시 위력은 100~500만톤의 다이나마이트 위력과 같은 것이다. 시험발사시 사거리는 7,000㎞였다. 동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10,000~15,000㎞로 알려져 있고, 현재 보유수량은 7기이다. 발사준비시간은 30~60분이 소요된다.

 동풍 31형(DF-31, CSS-X-9)

 대륙간탄도탄으로 1986년 개발이 착수되었으나 1차 시험발사 성공은 1995년 5월이다.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이동식 발사대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최대사거리 8,000㎞이며 탄두의 최대적재무게는 700㎏이다. 또한 소형핵탄두 3~4개를 장착할 수 있고, 동시에 다수의 목표를 공격할 수 있다. 또한 이동발사대에 장착이 가능하므로 미국의 위성정찰 감시에 효과적으로 은폐할 수 있다. 사거리 공산오차는 단지 500m 정도이며 발사준비 시간도 10~15분이면 가능하다. 따라서 공격 혹은 보복임무에 적절한 무기이다. 2000년 이후에는 동 미사일 10~20기 이상이 동풍4형을 대체해 운용될 전망이다.

 동풍 41형(DF-41, CSS-X-10)

 대륙간탄도탄으로 3단계 고체추진체형이며 동풍31형과 유사하다. 사정거리 12,000㎞로써 지구전체가 사정거리에 들게 된다. 위력은 1기 핵탄두 장착시 25만톤 혹은 65만톤의 다이너마이트 폭발 위력을 가지며, 3기의 다중탄두 장착시에는 매기 탄두위력이 9만톤의 다이너마이트 위력을 가지고 있다. 1986년 개발 착수했으며 21세기 후반에 실전배치될 전망이다.

 동풍 21형(DF-21, CSS-5)

 중거리탄도미사일로 1976년 개발 착수되어 1985년 시험 발사되었고 1987년 배치되었다. 잠수함 발사미사일인 거랑1형의 개량형으로써 인민해방군 지상용 탄도미사일이다. 2단 고체추진체를 사용하고 600㎏ 탄두를 적재할 수 있으며 1기 핵탄두는 50만톤의 다이너마이트 위력을 가지고 있다. 사거리는 약 1,800㎞이며 현위치에서 인도까지 사격이 가능하고 만약 동쪽으로 기지를 이동하면 일본과 대만, 한반도가 사정거리에 포함된다. 약 10기를 제2포병부대에 배치 운용하고 있다.

 거랑 1형(JL-1)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로 고체연료사용 탄도미사일이다. 1982년 제1차 시험발사가 이루어졌고, 같은해 8월에 골프급 잠수함상에서 시험사격을 했다. 중국은 하급 잠수함에 12기의 동형 탄도미사일을 적재하고 있으며 하급 잠수함 3척을 건조할 계획이나 그 속도가 매우 완만하여 현재 1척만 건조하였다. 사정거리는 약 2,200~3,000㎞로 2단 고체연료추진체를 사용하고 원자탄두는 1기만 적재 가능하다.

 거랑 2형(JL-2, CSS-NX-5)

 잠수함발사 대륙간탄도탄으로 동풍31형의 개량형이다. 3단 고체연료추진체를 사용하고 탄두 중량은 약 600㎏이다. 최대사거리 약 8,000㎞이며 거랑1형의 후속무기이다.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하급 잠수함의 후속 모델인 094형 핵탄두미사일 잠수함이 완성되면 정식 운용될 것이다. 동 미사일은 2000년~2005년 사이에 배치될 것이며 거랑1형을 대체해 인민해방군 주요 전략무기가 될 것이다.

 전술 핵무기

 중국이 전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정확한 증거가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8인치 포에 장착할 수 있는 전술핵을 개발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전술핵의 보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으므로 이미 전술핵은 감축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의 전략 핵무기 역량

 중국의 핵무기 발전은 이미 30년간이나 진행되어 왔다. 이는 핵무기 뿐만아니라 탄도발사 등에 대한 개량이며 인민해방군 전력증강의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더욱이 인민해방군의 차세대 미사일 추진장치를 고체연료추진체를 사용함으로써 제2포병부대의 미사일 발사 준비시간을 감소할 수 있고 전략미사일 준비 수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러한 고체연료 사용은 전략무기 무장을 10배이상 제고시킬 수 있다.

 즉 동풍31형과 동풍41형은 미국이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며 미국 대륙과 태평양 지역 미군에게 심대한 위협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80년대 중기와 90년대말을 비교해 보았을 때 전략핵무기는 이미 대폭 개선이 되었다.대륙간탄도탄(ICBM)은 1985년 6기를 보유했으나 1997년 17기로 증가했으며 만약 동풍31형과 동풍41형 미사일이 배치되면 중국의 장거리 핵무기 타격력은 보다 강력해 질 것이다.

 또한 잠수함 발사미사일(SLBM:Submarine Launch Ballistic Missile)은 1997년 12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대륙간탄도탄은 오차가 대폭 축소되어 신형인 동풍31형의 공산오차가 500m로, 구형인 동풍5형의 공산오차 3,500m에 비해 3,000m만큼의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더욱이 고체연료추진체를 사용해 기동성을 향상시키고 최신 핵탄두를 장착함으로써 미국과의 격차를 15~20년에서 5~10년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밖에 전략무기의 증강과 제2의 핵무기 타격능력 확보를 위해 동풍계열 전략미사일의 지하화 시설뿐아니라 기동성 있는 발사방식과 정확성을 향상시키고, 잠수함 발사를 위해 하급 잠수함보다 진일보한 신형 094형 핵잠수함을 적극적으로 건조하고 있는바 이는 잠수함 발사 거랑2형 대륙간 탄도탄이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핵무기 감산협정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핵무기 보유 비율은 5:5:1이었으나 3:3:1로 변화가 되었다. 따라서 장차 중국의 세계안정에 대한 영향력은 점차 증대되어 갈 것이 틀림없다.

 아울러 현재 중국 전략핵의 관장은 6개 미사일 부대에 9만명의 병력이 담당하고 있다.

중국의 핵무기 전망

 미국이 NMD계획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일본, 대만 등 국가를 계획에 포함시키면 중국자체 핵전력 강화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으며 일본과 대만 등 동북아의 지역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수 도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은 미사일의 정확성 향상과 취약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러시아의 첨단기술을 획득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이를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증진에 힘을 쏟을 것이다. 특히 아직도 더 기술이 요구되고 있는 발사준비시간 단축을 위한 고체연료화, 경량화 등 전반적인 기술 수준을 서방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

 1975년 4월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사거리 600㎞의 전술미사일 지원을 요청 받았다. 이때 중국은 북한의 요청을 거절하였지만 대신 DF-61을 판매함으로써 북한은 탄도미사일의 기초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과 노동, 대포동 미사일의 근원은 결국 중국 미사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 이후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 졌다가 최근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전 상태로 회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중국과 북한이 다시 가까워짐에 따라 군사적 협력관계도 지금보다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현재 미국과 미사일 회담을 통해 미사일 발사관련 활동을 유보하는 대신 경제적 지원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일차적인 경제지원 목적이 달성된 후에도 미사일 발사 노력은 계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의 미사일과 핵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중국의 핵관련 사항을 지속적으로 유의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함으로써 핵무기 연구와 개발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에 반해 북한은 핵개발을 통해 국가이익 실현의 상당한 부분에 대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핵을 이용하여 미국을 비롯한 국가와의 협상에서 많은 이익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1994년 미국과 기본합의를 통해 더 이상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그 이후에도 핵관련 활동을 계속해 왔다. 더욱이 핵을 장거리까지 운반할 수 있는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우려를 크게 하고 있다. 2000년에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포기 및 인공위성 대리발사와 미사일 수출중단 등 미국과 합의를 했으나 미사일 수출 중단에 따른 경제적 보상 및 대리 위성발사시 북한 기술자의 참여 등 세부 사안에 대해서는 합의도출에 실패한 상태이다.

 중국은 핵무기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과거에는 `무조건' 핵 선제사용을 포기했으나 최근 `조건부' 핵 선제사용 포기로 전환했고, 핵운반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활동은 한반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북한에게 핵무기 개발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에 역작용 우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중국의 지속적인 핵개발에 고무되어 핵개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도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한반도는 군비경쟁의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중국 핵무기의 한국에 대한 위협은 한국과의 수교로 인해 다소 완화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궁극적인 방어체계는 반드시 요구될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경제 발전을 계기로 핵관련 장비를 지속적으로 현대화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될 것이며,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라 가속화 되어가는 핵관련 장비의 변화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이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