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은행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020년 일본을 추월하고 2040년에는 미국과 비슷해질 것임을 전망하는 보고서를 냈다. ‘아시아 경제의 장래’라는 이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1인당 GDP도 2040년에 4만5000달러로 올라 현재 미국,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서 3분의 2까지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35년 장기 전망이란 너무 많은 불확실성을 전제하므로 그렇게 믿을 바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중국이 거대해지면 그만큼 우리에게 미칠 정치·경제·사회적 영향은 거대해질 것이다. 행여 중국만 시나리오대로 발전하고 우리는 뒷걸음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 세대 뒤 이 큰 이웃에게 치이고 쪼들리고 수모당할 우리의 모습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사정은 이런 우려를 거울처럼 담을 상황이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핵심 자문역으로 알려진 정비젠(鄭必堅)은 최근 중국의 장래에 대한 글을 ‘포린어페어스(China’s ‘Peaceful Rise’ to Great-Power Status, Foreign Affairs 9/10 2005)’에 올려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중국은 1978년 외국인 투자를 개방한 이래 27년간 연 평균 9.4%의 경제성장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아직 경제규모는 미국의 7분의 1,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앞으로 45년간 과거의 성장행보를 계속해야 2050년 ‘중간 수준의 현대적 선진국’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 평화만이 이런 성장을 보장하므로 중국은 그때까지 다른 생각 없이 오직 ‘평화적 성장’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만약 중국이 9%대 성장을 45년간 기록한다면 중국 경제는 60배로 늘어나고 1인당 GDP도 현재 한국의 3~4배가 될 것이다.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성장이며 중국은 이제부터 경제성장에 따른 자원 제약, 정치·사회적 갈등 등 온갖 성장통(成長痛)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부는 터무니없이 원대한 국가목표를 세워 놓고 이를 위해 어떤 난관이든 타개할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도 한때 그런 의지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온 세계가 기막히게 호경기를 누리던 지난 몇 년을 우리는 ‘새 판’을 짜는 일로 보냈다. 경제가 잘못되는 것은 과거 정권이 남긴 유산 탓이므로 누가 와도 어쩔 수 없고, 야당과 언론의 왜곡 때문에 국민이 이반(離反)해서 더욱 안 된다. 따라서 현 정권이 정치·경제의 틀을 바꾸므로 다음 정권은 탄탄한 성장기반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현 정권은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참여정권은 지금 과거의 상부·하부 구조를 뜯어고치는 데 시간과 자원을 물 쓰듯 하고 있다. 국방개혁 289조원, 행정도시건설 45조원, 국가균형발전 115조원,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건설, 포괄적 대북경제지원 등 모두 민족공조, 자주국방, 동반성장, 기득권 타파 등을 위한 비용이다. 올해 정부는 4조원 이상의 세수 결함을 예상하고 내년 예산적자는 11조7000억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국가사업의 청구서가 얼마나 쌓일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을지, 얼마나 더 국채(國債)를 요구할지 누가 알 것인가.
정권은 엉뚱한 데 몰두하고, 자원은 고갈되고, 분열과 갈등이 사회를 지배하고, 기업은 투자할 마음이 없고, 그 가운데 급속한 고령화로 금쪽같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이다. 중병(重病)을 인정하지 않는 환자는 치유불능의 말기(末期)로 가는 도리밖에 없다.
거대한 중국은 우리의 기회이자 위협이다. 과거 세대는 중국과 ‘약간의 격차’를 벌려 놓았고, 오늘날 우리가 중국인에게 위세를 좀 떠는 것은 거의 이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대에 우리는 미국에 붙은 멕시코 정도나 될 것인가. 오늘날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자들의 책임을 물을 날을 위해서 한마디 남겨 놓지 않을 수 없다.
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출처 2005/10/12 문화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