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기다린 보람]

kongbak 2006. 8. 3. 01:04
[기다린 보람]
전화위복된 지방 근무

얼마 전 대기업 자회사의 대표가 된 K씨를 만났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는 7개월 전을 회상했다.
 당시 K씨는 승진을 못하자 사표를 준비했다. 회사 후배가 자기보다 높은 자리로 승진하자 퇴사를 결심하고 나를 만났다. "조용히 나가달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그는 지방으로 발령 난 상태였다. "여기서 그만 두면 안됩니다." 단호히 말렸다.
 회사 생활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자기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가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렇다고 홧김에 사표를 쓰면 절대 안 된다. 한 템포 쉬면서 신중히 생각한 뒤 결정해야 한다.
 "학력을 문제 삼으면 안되지만 고졸 출신으로 임원직에 있었다는 사실은 큰 영광입니다. 아울러 같은 고졸 출신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는 침묵했지만 눈빛은 많이 안정돼 보였다. 계속 설득했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직접 말하지도 않았고, 잠깐 지방으로 발령 났을 뿐입니다. 게다가 여기서 퇴사하면 누구보다 당신 가슴에 한이 남습니다."
 용단을 내려야 했다. 퇴사냐, 아니면 지방근무냐. "딱 7개월만 참으십시오. 사표를 내더라도 그때 내십시오." 내 말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지방에서 묵묵히 일하며 회사의 다음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일했다. 하루하루가 근무 마지막 날처럼 힘들었지만 후배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보니 승진과는 별개로 일에 빠져들었다. 수십 년간 근무한 회사와 그동안 믿고 따라준 부하 직원을 위해 회항을 잘 하고 싶었다. 간간히 안부전화를 하면 '마음을 비우니 편하다'면서 오히려 내 건강을 걱정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뜻밖의 승진발령을 받았다. 자회사 대표직이었다. 발령소식에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지방근무를 하다가 퇴사할 줄 알았는데 대표가 되다니, 꿈만 같았다. 서울로 올라와 나부터 찾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딱 7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때 그만뒀으면 대표직도 맡지 못했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엇보다 고졸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대표로 승진한 사실에 감격해했다. 자신처럼 학력콤플렉스가 있는 직원도 자부심을 갖고 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저는 영감(靈感)이 아닌 순리대로 말한 겁니다." 사람 말은 비와 같다. 흙처럼 비를 잘 흡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돌처럼 비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다. 그는 흙과 같아 내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한발 후퇴함으로서 인생역전의 대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화(禍)가 행(幸)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당장은 불이익을 당한 것처럼 화도 나고 답답하지만, 이를 잘 견디면 큰 복으로 반전한다. 하늘은 복을 주기 전 사람을 테스트한다. 그 복을 받을 그릇인지 아닌지 화(禍)를 주어 고생시킨 뒤, 그릇품질이 확인되면 그제야 복을 선사한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