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백과사전의 철학과 과학설명)
철학 [ 哲學 , philosophy ]인생, 세계 등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
필로소피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하며,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며,필로소피아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을 말한다.
철학(哲學)의 ‘哲’이라는 글자도 ‘賢’ 또는 ‘知’와 같은 뜻이다. 이와 같이 철학이란 그 자의(字義)로 보아서도 단순히 지를 사랑한다는 것일 뿐, 그것만으로는 아직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알 수 없다. 철학 이외의 학문 가운데 그 이름을 듣고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학문은 드물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경제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고, 물리학이라고 하면 물리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이나 물리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것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철학의 경우는 그 이름만 듣고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이 학문의 대상이 결코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1. 대상
철학은 BC 7세기경 그리스에서 비롯된 학문인데, 그 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의 철학사상의 변천과정을 보아도 일정한 연구대상이라는 것이 없다. 각 시대의 철학은 각기 다른 대상을 연구하였다. 우선 고대 철학을 보면 소크라테스 이전의 초기 그리스 철학의 연구대상은 자연이었다. 당시 자연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과는 상당히 달랐다. 어쨌든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철학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BC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철학의 대상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상(事象)이 되었다. 그리고 인간 영혼의 선량함이 문제가 되고 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이전의 자연을 대상으로 삼은 철학을 부정하고 자연에 관한 지식은 잘산다는 문제에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뒤를 이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는 인간적인 사상에 관심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고찰도 병행하여 장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하였다. 고대철학의 말기, 이른바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철학에 이르면 철학의 대상이 더욱 한정되어, 어떻게 하여 자기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는가 하는 일상적이며 실천적인 문제가 중심이 되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은 이런 경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중세에 와서는 철학의 대상이 인간도 자연도 아닌 신이었다. 중세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였으므로, 중세철학이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신에 관한 고찰을 중심문제로 삼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근세로 오면 철학의 대상은 또 변화한다. 근세는 중세와는 달리 인간이 중심문제로 나타나는 시대이다. 인간이 자기에 대하여 자신(自信)을 가지고, 인간 자신의 입장에서 일체의 문제를 새로이 생각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대 풍조에 따라 철학은 우선 인간의 인식이라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어느 정도로 인식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하여, 인간은 이성적(理性的) 인식에 의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R.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론자와, 인간의 인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경험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인간은 경험을 초월한 사항에 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고 하는 J.로크를 비롯한 영국 경험론자가 대립하게 되었다. I.칸트의 철학은 이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 ·통일하려고 한 것이며 여기서도 이 인식이 하나의 중심문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문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세철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으며,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기간에도 철학의 과제는 제반 과학의 기초부여에 있다고 생각하는 신(新)칸트학파와, 언어라는 것을 분석하여 언어가 가지는 문법적 형식에 속아 우리가 잘못된 사고(思考)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분석철학 등도 역시 인식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적 대상으로 생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근세철학 가운데는 인식이라는 문제를 철학의 중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와는 다른 대상을 다루려 했던 철학도 있었다.
이를테면 19세기의 G.W.F.헤겔이나 K.마르크스에게서는 철학의 중심적 대상이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헤겔은 이른바 인식론적 철학을 평하여 “인식하기 이전에 인식하려고 하는 것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수영을 익히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F.W.니체, H.베르그송, W.딜타이 등의 이른바 생(生)의 철학은 비합리적인 생을 중시하고 그 생을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S.A.키르케고르, K.야스퍼스, M.하이데거, J.P.사르트르 등의 이른바 실존철학은 인간을 타인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실존으로 파악하여 인간이 어떻게 하여 자신의 자유에 의해 사는 방법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가 하는 것을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로서 고찰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철학사에 나타나는 많은 철학을 보아도 거기에는 결코 일정한 대상이라는 것이 없고, 각 철학은 서로 다른 대상을 탐구하면서 모두 한결같이 철학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을 그 대상으로서 규정할 수 없으며, 다만 ‘애지(愛知)의 학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2. 방법
대상의 측면에서 철학을 규정할 수는 없더라도 많은 철학이 한결같이 철학이라고 하는 이상, 거기에는 어떤 공통된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공통된 것이란 대상을 다루는 방법에 있지 않은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은 그 방법에서도 결코 일정한 것이 없다. 이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철학이 연구하는 대상이 각기 다른 이상 그 대상을 다루는 방법도 또한 다르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과 과학의 기초부여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 사이에 공통된 방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철학사상(哲學史上)의 많은 철학에서 천차만별의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철학은 연역적(演繹的)인 방법으로 체계를 조직하려 하였고, 어떤 철학은 반대로 귀납적(歸納的)인 방법을 중시하였다. 또 어떤 철학은 실재(實在)의 참모습은 다만 직관(直觀)에 의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칸트의 선험적(先驗的) 방법,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변증법적(辨證法的) 방법, E.후설의 현상학적(現象學的) 방법 등 많은 철학자가 각각 다른 방법을 철학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비하여 철학 이외의 제반과학은 동일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철학에는 공통된 방법이란 없다.
3. 형식적 정의
철학에는 일정한 대상도 일정한 방법도 없거니와, 철학이 무엇이라는 것을 규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점에 이미 철학의 본질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철학은 어떤 대상을 연구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자연이나 신·역사·인간·인식 등 무엇을 연구해도 거기에는 철학이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문자 그대로 어떤 대상이라도 연구하기만 하면 철학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연구하지만 그것이 철학은 아니다. 또 역사학은 역사를 연구하지만 그것이 결코 철학일 수는 없다. 자연이나 역사 등 다른 과학도 연구하는 대상을 연구하면서 과학 아닌 철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과학과는 다른 철학, 고유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관심이란 인간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대결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이라는 것의 탐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때 자연은 철학의 대상이 된다. 또한 신에 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때 철학의 대상은 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철학이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원래 이 철학의 정의는 형식적이고, 그것만으로 철학이 무엇이라는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철학의 대상이 일정한 것이 아닌 이상, 철학에 관해서 이러한 형식적 정의 이상의 것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경우의 정의는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인생관이나 세계관이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정의를 좁은 의미로 생각한다면 철학이란 인생관·세계관을 탐구하는 학문인 셈이다.
예로부터 철학은 대개의 경우 인생관·세계관을 수립하려고 하였으나, 그렇다고 모든 철학이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철학은 인생관이나 세계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도 있다. 과학의 기초부여나 인식 문제를 철학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철학이 이런 종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도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역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의 기초부여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자는 과학이나 과학적 사고방식이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과학의 기초부여가 인생관 ·세계관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의의를 낮게 평가하면서 과학의 기초부여를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식의 연구를 철학의 과제로 생각하는 철학자는 우리가 어디까지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이라고 하는 말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위에서 말한 형식적 정의는 모두 철학에 합당할 것이며, 철학에는 다른 학문의 경우처럼 일정한 대상이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차라리 철학이라고 하는 것의 성격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4. 철학에서의 진보
일반적으로 과학에는 진보가 있어도 철학에는 진보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철학에는 다른 학문의 경우와 같은 의미에서의 진보가 없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다른 학문의 경우에는 일정한 대상이 정해졌고 따라서 하나의 학문은 언제나 같은 대상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를 계속함에 따라 점차 그 대상에 관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지금까지의 지식이 그릇된 것임을 알게 되면 그 잘못을 고쳐 올바른 지식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학문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삼아 점차 진보하고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반해 철학의 경우는 일정한 대상이 없기 때문에 다른 학문의 경우와 같은 진보나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철학은 스스로 선택한 대상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사색하고 연구를 계속한다. 그러나 그뒤를 이은 철학은 전혀 다른 사항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연구의 대상이 달라지게 되면 그 때까지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철학은 완전히 새로운 지반에서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은 이와 같이 그 이전의 철학을 끊임없이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철학에는 모든 의미에서 진보·발전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철학은 오히려 그 이전의 철학의 지반 자체를 반성하고 그 지반을 무너뜨려 새로운 지반 위에 새로운 입장의 철학을 구축한다. 이와 같은 새로운 지반이 끊임없이 새로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 철학의 진보가 있는 것이다.
철학사상(史上) 철학의 대상이 여러 가지로 변화해 왔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거니와 그 변화가 제멋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이전의 철학이 딛고 섰던 지반을 반성함으로써 지금까지 연구해 온 철학의 대상이 실은 최선(最善)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 자각에 의해 새로운 대상이 철학의 대상으로 선택되어 왔다. 따라서 철학의 대상이 변화해 왔다는 바로 그 점에 어떤 의미에서의 철학의 진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사상 위대한 철학은 모두가 새로운 지반을 발견하고 새로운 입장에서 철학의 문제를 탐구하였다.
언제나 근원적인 문제에 관해 회의를 느끼고 과거의 철학의 지반을 무너뜨리는 데 철학의 본질이 있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다른 학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철학의 연구는 철학사(哲學史)의 연구와 별도로 생각할 수 없다. 현대의 철학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그 문제가 지금까지의 철학에 대한 어떤 반성에서 생긴 것인가 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5. 제부문
철학이라는 학문은 사람에 따라 연구의 대상도 다르고 다루는 문제도 다르기 때문에 철학의 조직도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철학이 어떤 부문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일정한 견해가 없다. 철학 이외의 다른 학문에서는 그 학문이 어떤 부문으로 나뉘는지에 관해서 대개는 일치된 견해가 있다. 이 점에서도 철학의 특수한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철학이 다루는 문제를 두고 생각할 때, 우리는 철학의 제부문을 일단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제1의 부문은 사고의 규칙이나 인식에 관해 탐구하는 것으로 논리학이나 인식론이 이에 포함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헤겔처럼 인식론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철학자도 있으나,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한다 해도 우선 우리는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제1부문은 철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제2부문은 존재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이나 존재론으로, 그것은 개개의 존재자에 관하여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것에 관해서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고찰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현대에 와서는 부정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종류의 시도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 밖에 역사라든가 인간이라든가 사회 등에 관해서 그 근본적인 존재방식을 탐구하는 역사철학·철학적 인간학·사회철학 등도 있다. 또한 제3의 부문으로 가치에 관해 탐구하는 부문이 있는데, 윤리학·미학(美學)·종교철학·법철학 등이 이에 포함된다. 가치에 관한 연구 따위는 학문이 될 수 없다고 부정하는 철학자도 있으나,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인생관과 세계관이 필요한 것인 이상 이 철학의 부문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학이란?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
과학은 영어와 프랑스어 'science'는 모두 어떤 사물을 '안다'는 라틴어 'scire'에서 연유된 말로, 넓은 의미로는 학(學) 또는 학문(學問)과 같은 뜻이나, 독일어의 'Wissenschaft'는 학문(Wissen)과 명백히 구별되어 과학을 의미하며, 철학·종교·예술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이는 일이 많다.
좁은 의미로는 모두 자연과학을 뜻한다. 즉, 과학은 어떤 가정 위에서 일정한 인식목적과 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세워진 광범위한 체계적 지식을 가리키는 동시에 자연연구의 방법과 거기에서 얻어진 과학지식이 축적되어 온 까닭에 자연과학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1. 정의
과학이란 이제까지 아무도 반증(反證)을 하지 못한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지식의 체계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신학 ·철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으며, 보편성이 인정되는 형식논리학이나 수학은 넓은 의미의 과학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은 이상과학 ·형식과학 ·선험과학(先驗科學)이라고 하며,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성립된 경험과학(經驗科學)과는 대립된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방법론상 이 경험과학을 과학이라고 한다. 경험과학은 일반적으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나눈다. 한편, W.빈델반트나 H.리케르트는 자연과학은 설명적 과학(說明的科學)이고, 역사과학 또는 문화과학은 기술적 과학(記述的科學)이라 부르고 있으며, W.M.분트는 체계적 과학과 현상론적 과학 또는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물론 공학이나 의학 같은 응용과학도 과학에 속한다.
2. 방법
과학의 연구방법은 16∼17세기에 갈릴레이와 베이컨, 그리고 뉴턴에 의하여 그 기초가 확립되었다. 그 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물리학을 필두로 하여 자연과학이 전반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 방법론상의 문제들이 많이 제기되고 검토된 결과 현재와 같은 방법론으로 다듬어졌다.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A.스미스나 D.리카도에 의해서 국민경제의 과학적 연구방법이 개척되고, A.콩트에 의해서 자연과학적 방법을 모방한 실증철학(實證哲學)이 제창되었다. 이리하여 사회과학 연구에 자연과학적 방법을 도입하는 길이 활짝 열렸다.
자연과학 연구의 목적은 현상이나 법칙의 발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 발견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적 사실로부터 귀납적 방법을 쓰며, 이렇게 하여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가설(假說)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가설을 설정하면 실험이나 관찰로 직접 검증할 수 있는 명제(命題)를 찾아내는 데 편리하다.
법칙(法則)도 일단 가설로 제시될 수 있으며, 그 법칙이 확실시될 때 새로운 법칙이 발견되는 것이다. 어떤 법칙, 다시 말해서 가설에 따른 예언은 무제한으로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실현되었다고 하여 반드시 절대적 진리라고는 할 수 없다. 몇 가지 가설과 그에 관련되지 않는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하여 더 보편적인 가설 또는 법칙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설은 경험적 사실로부터 귀납됨으로써 일반화된다. 가령 원자구조의 가설을 설정하는데 태양계를 모델로 삼았던 것과 같이 가설은 어떤 모델로부터의 유추(類推)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모델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과학자의 지식이나 사고방식에 의존하며, 과학연구에 있어서 창조적 사고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모델 중에는 태양계 같은 실질적인 모델과 방정식 같은 형식적인 모델이 있으며, 실질적인 모델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추상화해서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연구대상과 어느 정도 공통된 성질을 가진 것을 모델로 삼고, 그 모델이 가지고 있는 다른 성질들이 연구대상에도 타당하다고 가정하여 가설을 세우는 것이 모델을 이용한 유추의 기본이다. 방대한 가설로부터 연역(演繹)하지 않고 실험을 설계하기 위해서 세운 근거가 매우 박약한 가설은 작업가설(作業假說)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가설과 명확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실험은 가설을 검증(檢證)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이지만, 자연계에서 복잡하게 야기되는 현상을 부분적으로 재생시켜서 관찰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실험은 분석(分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조건을 설정하고 거기서 일어난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실험이며, 따라서 실험은 우리들의 손으로 자연의 벽을 두드렸을 때 들려오는 소리를 듣자는 것이다.
자연과학에서 실험이 가능한 것은 자연현상이 재현(再現)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자연현상은 동일한 조건만 설정해 놓으면 반복해서 일어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재현 가능한 현상에 한해서만 실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생물현상은 반드시 재현 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개체나 세포들이 따로따로 변이(變異)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럴 때 변이통계를 인용하거나 어떤 조작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을 비교함으로써 실험할 수 있다. 예전에는 사회현상은 단 한 번만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하여 실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생물학에서의 실험과 비교해 볼 때 실험적 방법의 적용이 전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뉴턴 역학에서는 측정 가능한 기본개념으로서 시간 ·공간 ·질량을 설정하고, 다른 모든 개념은 이들 기본개념에서 유도된다. 숫자로 표현되는 개념은 주관성(主觀性)을 떠나서 객관적이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이해된다는 뜻에서 보편성(普遍性)을 가지고 있다. 법칙이 방정식으로 표시되고, 가설의 실험적 검증이 엄밀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보편성 때문이다. 즉, 보편성이 만족되어야 정밀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생물학에서는 모든 분야가 측정 가능한 개념으로 성립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사회과학에서는 근대 경제학이 수량적 개념을 토대로 하여 성립되었다.
20세기 초에 P.W.브리지먼은 과학의 개념은 측정조작의 방법에 따라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작주의를 제창하여 심리학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학분야의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A.아인슈타인이 제창한 상대성 이론이 동기가 되어, 뉴턴 역학의 모든 개념이 수치로는 표시되어 있지만 정의 그 자체는 성질에 따라서 이루어졌다는 비판이 나온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은 행성(行星)의 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과 갈릴레이의 낙체(落體)의 법칙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뉴턴의 법칙이 세워지면 갈릴레이의 법칙은 그것으로부터 이론적으로 유도되며, 그 의미가 명백해진다. 우리가 일반적인 고차원(高次元)의 법칙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옛날에는 사회현상은 재현이 불가능하므로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성립되지 않고, 따라서 자연과학이 법칙정립학(法則定立學)인 데 대하여 사회과학은 개성기술학(個性記述學)으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상(事象) 중에도 법칙성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법칙이 성립되는 것은 현상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한편, 인과성의 객관적 보증은 있을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 문제는 세계관(世界觀)의 근본적 문제로서 실재론과 경험론, 그리고 그 발전형태인 실증론과의 기본적인 대립점이다. 경험론적 입장에서는 인과성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으므로 어떤 사상의 출현을 인과관계로 설명하는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과학의 연구는 근본적으로 현상의 기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기술주의(記述主義)가 성립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과학자는 현상이나 법칙의 설명을 추구하고 있다. 이때 과학연구에서의 설명은 항상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며, 이것이 과학적 설명이라고 부르는 연유이다.
과학적 설명의 문제점의 하나는 어디까지 설명해야 진정으로 설명한 것이 되느냐에 있다. 가령, 인과관계의 연쇄는 무한히 연장될 수도 있고 분할될 수도 있다. 실상은 ‘왜’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이미 대답의 종류나 범위에 대한 기대가 있었으므로, 그것이 만족되면 일단 대답이 된다. 설명이 지적 만족(知的滿足)의 문제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 이다.
3. 철학
과학에 대한 철학적 고찰 또는 그 철학적 기초를 부여하는 학문이다. 즉, 과학적 탐구의 과정에 포함된 요소를 설명하고, 형식논리학과 실제로 통용되는 방법론·형이상학 등의 관점에서 그 요소들의 타당성을 연구하는것이다. 과학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인식론적 경향을 가지는 입장과 존재론적 경향을 가지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다.
4. 자연과학사
과학의 본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 기원을 더듬어 보는 것이 좋다. 원래 과학은 그 원시적 단계에서는 다만 기술에 불과하였으며, 그 기술이 모체가 되어 과학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과학과 기술은 연계적(連繫的) 관계에 놓여 있으며, 생활을 위한 기술적 지식이 축적되어 체계화됨에 따라 법칙체계가 성립되었다. 옛날 유목생활과 농경생활에서 달력을 만들 필요를 느낀 수메르인(人)이 천문학의 기반이 된 점성술(占星術)을 발달시켰고, 이집트인은 나일강의 범람에 따른 농경지 구획정리를 위해서 기하학을 발달시켰다.
이 밖에 화학 지식의 온상이 된 연금술(鍊金術), 기적과도 연관된 의술 등이 발달되었다. 즉, 오늘날 유럽 문화의 근원은 BC 7000년경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연안과 나일강 유역에서 이미 꽃피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이 순수한 실증적 지식체계로서 확립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의 탄생을 BC 7세기 그리스의 탈레스 등 밀레토스(이오니아)학파부터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자연철학을 뜻하는 것이다. BC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경험적 자연 연구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플라톤이 제창한 ‘이데아’에 대하여 ‘뷰시스’, 즉 자연을 주장하였다. 그의 뷰시스는 생동적인 전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관념적인 요소가 다분히 섞여 있었지만, 생물학에서 실증적 연구를 창시한 것과 천문학에서 점성술적 요소를 배제한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BC 330년경 이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세계의 상공업의 중심지였으며, 수준 높은 그리스 과학을 꽃피웠던 곳이다. 그 시대에 가장 독창적인 천문학자 ·수학자 ·역학자(曆學者)였던 아르키메데스와 기하학자인 유클리드 등 많은 저명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중세기는 보통 과학의 암흑시대라고 불리며, 점성술과 연금술이 횡행하던 때였다. 물론 이 시대에도 과학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실험연구의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연금술은 화학 지식을 축적해 가고 있었다. 특히 이슬람 문화는 고대 그리스 과학의 전통을 이어받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으로 발전시켜서 전유럽에 전파시켰다. 16∼17세기는 과학사상 과학혁명(科學革命)의 시대라 불리고 있다. 즉, 근대과학의 탄생과 더불어 그 발전의 기초가 확립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의 속박으로부터 과학을 해방시키고 자율정신(自律精神)을 의식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권위에 항거하여 과학혁명을 일으키게 한 것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베살리우스의 인체해부학(人體解剖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코페르니쿠스는 가설이 계산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근대과학의 좌표를 시사하였다. 지동설은 티코 브라에의 정확한 관측 자료를 근거로 한 케플러의 행성운동의 3법칙과 갈릴레이의 태양 및 행성의 망원경 관측을 거쳐서 뉴턴의 천체역학에 이르러 확고부동한 학설이 되었다.
갈릴레이는 낙체(洛體)와 진자(振子)의 역학적 연구를 통해서 자연과학 연구방법의 기본을 제시하고, 특히 실험의 의의를 명확히 하였다. 그는 물체의 운동이 ‘왜’ 일어나는가를 묻지 않고, 관찰을 통해서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알려고 하였다. 갈릴레이의 역학체계를 완성한 것이 뉴턴 역학이다. 뉴턴 역학은 또 자연계의 인과성(因果性)에 관한 관념을 공고히 하고 있다.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는 자연과학에서 가장 귀중한 고전(古典)이다.
물리학은 그 후 한동안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동물 ·식물 ·광물을 기술하는 학문은 자연사(自然史)로 불렸다. W.길버트와 뉴턴, C.호이겐스 등은 빛과 자기(磁氣)를 연구했으며, R.보일은 원소의 개념을 실험을 통하여 정의함으로써 연금술을 탈피하고 화학의 본질을 제시했고, W.하비는 혈액순환의 원리를 연구함으로써 L.데카르트의 생명기계론을 재촉함과 동시에 실험생리학(實驗生理學)의 길을 열어 놓았다. 18세기에 들어와서 뉴턴은 역학의 수학적 전개와 관련해서 미분학(微分學)의 발견의 우선 문제로 G.W.라이프니츠와 심각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D.베르누이, L.오일러, J.라그랑지, P.라플라스 등 저명한 수학자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근대화학의 기초는 플로지스톤설(說)을 타파하는 것으로서 시작되었다. 즉, J.블랙, H.캐번디시, J.프리스틀리 등이 산소 ·수소 등 많은 새로운 원소를 발견한 데 이어 A.라부아지에가 플로지스톤설을 부인하고 원소의 개념을 명백히 했을 뿐 아니라 질량불변(質量不變)의 법칙을 제시함으로써 근대화학의 토대가 확립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칸트와 라플라스가 천체(天體)의 기원에 관한 성운설(星雲說)을 제창하였으며,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생물진화 사상은 19세기 초에 J.라마르크의 진화론을 탄생시켰다. 이 진화론의 발전에는 자연현상의 인과성에 관한 관념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지표(地表)의 역사에 관한 J.허튼의 학설은 후에 C.라이엘의 지질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급속도로 진행되어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 현저한 발전을 하게 하였다.
19세기 초에 J.돌턴은 원자가설(原子假說)을 제창했고, A.아보가드로는 분자가설을 제기하였다. 원자의 사상은 고대부터 있었으나 측정 가능한 원자량의 개념이 명확해지고, 자연현상이나 법칙의 설명 원리로서 확립됨에 따라 비로소 가설로서 성립되었다. 1860년대에 D.멘델레예프는 원소의 주기율을 발견하고, 미지의 원소를 예언하는 동시에 원자 자체에 어떤 구조가 있어서 분할이 불가능한 입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한편, 18세기 말부터 빛 ·전기 ·열 등의 현상을 널리 연구하게 되어, T.영은 빛이 횡파(橫波)라는 것을 밝혔고, 열은 증기기관의 발명 이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어 왔으나, K.마이어와 H.헬름홀츠가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제시한 후, 열의 본질문제에 관한 기체분자운동론이 물리현상의 통계적 방법의 필연성을 제시함으로써 과학론에 새로운 문제를 던졌다. 전자기(電磁氣)의 연구는 M.패러데이가 추진시켰으며 J.맥스웰은 빛의 전자기파설을 제창하였다. 빛의 매체(媒體)로서 생각하여 온 에테르가 부정됨으로써 뉴턴 역학을 기초로 한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발견되어 1900년에 M.플랑크의 양자론(量子論)이, 1905년에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제시되었고, 19세기 말의 전자(電子)의 발견과 퀴리부인의 방사성원소의 발견을 근거로 하여 N.보어와 E.러더퍼드는 원자구조를 밝힘으로써 물리학의 면목을 새로이하였다.
그 후 E.슈뢰딩거의 파동역학(波動力學), W.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量子力學)이 발표되고 또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제창함으로써 자연계의 인과성에 관한 관념을 뒤집어 놓았다. 그 후 현재까지 소립자론(素粒子論) 또는 물성론(物性論) 등 많은 발전이 있었고,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연구도 계속되어 왔다. 생물학에서는 1830년대에 세포설이 확립되고, 그 후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이 발표되었으며,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L.파스퇴르, R.코흐 등이 미생물학을 개척하여 실험과학으로서의 생물학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유전학은 20세기에 현저하게 발전했으며, 특히 T.모건에 의한 유전자설(遺傳子說)의 확립은 유전자가 DNA분자라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핵산(核酸)과 단백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분자생물학이 탄생하였다.
5. 자연과학과 사회
자연과학과 사회와의 관계는 상대적이며, 사상면에서의 상호작용과 생산기술면에서의 상호작용의 두 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근세 과학사상은 과학의 이상에 대하여 그 실험기술적인 면조차 외적인 것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자연철학이 쇠퇴하고 과학의 실증성이 제창되면서부터 과학의 기술성은 도리어 과학의 내면에 속하게 되었다. 실용주의 내지 조작주의의 과학사상은 특히 실험관찰 조작의 기술성에 중점을, 논리실증주의는 논리적 ·수학적 추리의 기술성에 역점을 두고 과학이론을 생각해왔다.
이 점은 현대 물리학자들에게 건전한 실재관으로서 암시되고 있다. 그들의 자연관에서는 모두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자연에 대한 경건한 정신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기적인 자연의 단계에서 유기적인 생명의 단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뉴턴 역학의 체계는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의 토대가 되었고, 19세기 생리학의 발달은 후에 양자물리학의 귀결을 생명현상이나 의식의 문제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낳게 하였다. 슈뢰딩거는 미시물리학(微視物理學)의 통계적 법칙성으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H.드프리스의 돌연변이설을 들어 유전자 속의 양자의 변동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보어나 D.요르단은 생명의 본질과 그 물리화학적 분석이 양립되지 않는 관계를 양자물리학의 상보성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관과 객관을 분리할 수 없는 것과 인과적 결정성과 자유의사가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관점으로 보아 하이젠베르크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니힐리즘도 공감을 준다.
생물학의 연구와 생명과는 이렇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자본주의의 발전기에서 자유경쟁 이념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 동시에 사회면에서 사상적인 영향을 주었다. 현대과학은 기술을 통하여 인간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 그 자체의 발전이 인간의 사고방식에 변혁을 요구하기까지 이르고 있고 새로운 과학혁명의 시대에 돌입하였다. 핵무기와 인공위성(人工衛星) 등의 출현은 현대과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으나, 그런 과학의 발달이 한편으로 인류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 갈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것은 결국 인간을 유혹했던 뱀의 전신(轉身)이고, 따라서 자기 자신을 유혹한 인간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각, 즉 어떤 의미에서는 니체적인 운명애(運命愛) 없이는 현대과학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을 깊이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핵무기와 인류의 행복과의 관계 또는 과학기술과 윤리와의 관계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발달의 불균형 또는 부조화에 귀착되는 문제이다. 즉, 자연과학의 급진적인 발달에 대한 사회과학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문제만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자연과학은 자연철학 이래 종교와 항상 대립되어 왔다. 가령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가톨릭교뿐만 아니라 루터의 신교(新敎)로부터도 맹렬한 공격을 받았고, 갈릴레이는 이단자로서 심판을 받았다. 다윈의 진화론도 성공회(聖公會)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을 위한 과학’으로 인간의 무한한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러한 과학정신(科學精神)의 순수함은 인간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주어 세속적인 생활을 초월한 종교적인 구제의 길을 열어 줄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인간생활에 종교적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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