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人

[스크랩] 뿌리 깊은 `서열 의식`, 한국의 고질병

kongbak 2014. 1. 11. 16:00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북한 당국은 금강산의 관문에 거창하게도 '천하제일 명산'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금강산이 아름답다는 거야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천하에서 제일가는 명산'이라는 문구는 어떨까? 관광지에 으레 있게 마련인 수식어라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실제로 정부 당국만이 아니라 주민도 금강산에 대한 (아울러 자신들의 체제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대단하다. 세계 다른 곳의 산을 가본 경험이 별로 없는 그들이 어떻게 금강산을 세계 최고의 산이라고 단정하는 걸까?


레고로 만든 중국의 전통 가옥-문화는 다름의 차원에 존재할 뿐, 겨룸의 대상은 아니다.

기억상실, 사랑을 부정하다
원래 '천하제일'이라는 수식어는 중화 문명권의 특유한 표현 가운데 하나다. 역사적으로 일찍부터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졌고 정치를 중심으로 삼는 수직적?동심원적 질서가 지배했던 중화 세계에서는 뭐든지 서열을 따지고 '최고'를 가려내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지금도 '천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학교, 관청, 기업에 만연한 서열주의도 중화주의의 흔적이다). 이런 발상이 문화의 영역에까지 투영된 결과가 북한의 금강산 플래카드라고 봐야 할 것이다.


17세기 초에 생겨난 만주족의 치파오.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의상이 되었다.

섬기던 한족이 약해지자 패닉에 빠진 조선 지배층
사실 중국도 아닌 한반도 사회에 중화주의적 발상이 자리 잡은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 시작은 17세기 중반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면서부터다.
흔히 한반도 왕조들은 전통적으로 중국에 사대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더 좁히면 사대의 대상은 중국의 한족 왕조로 제한된다. 중원을 북방의 '오랑캐' 민족이 장악하던 시기에는 중국에 사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해진 한족 왕조를 여전히 섬기다가 곤욕을 치르곤 했다. 그랬으니 중국이 몽땅 오랑캐의 수중에 들어갔을 때 조선의 지배층이 얼마나 당황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심한 패닉은 정신이상을 낳는다. 조선의 지배층은 중국에서 중화가 사라졌으니 이제 조선이 중화의 본산이라고 믿는 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것이 바로 소중화주의다. 온 세상이 오랑캐 판이 되어버렸고 유일한 문명국은 조선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위기감과 시대착오적 관점이 소중화주의의 괴물을 낳은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다. 문화적으로 중국에 예속된 자세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노선으로 돌아선 게 그런 예다. 학문에서는 유학을 실용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으로 정립해보겠다는 실학 운동이 그런 토양에서 싹텄다. 미술에서는 중국의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자연을 담은 진경('진짜 경치') 산수화가 등장했고, 음악에서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1인극 형식인 판소리가 정립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변동이 큰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보면 아쉽게도 그 주체화 노선은 주체적인 것만이 아니다.

명나라 황제의 제삿밥까지 챙긴 조선
소중화주의의 병리적인 현상을 잘 보여주는 예는 예송논쟁이다. 17세기 중반부터 조선의 지배층은 유학의 모든 예법을 조선에서 정해야 한다고 믿었다(이때부터는 심지어 멸망한 명나라 황제의 제삿밥까지 조선 왕실에서 챙긴다). 논쟁의 발단은 1659년 조선의 17대 왕인 효종이 죽으면서 시작된다. 초점은 효종의 계모(아버지 인조의 계비)인 조 대비가 상복을 입는 복상(服喪)의 기간이다.
효종은 형인 소현세자가 죽은 탓에 차남으로 왕위에 올랐다. <주자가례> 에 따르면 장남이 죽었을 때 부모는 3년 상을 치러야 하고, 차남이 죽으면 복상 기간이 1년이다. 하지만 효종은 집안의 차남이자 일국의 왕이었으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효종이 차남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서인 세력은 자의대비가 1년간 복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왕의 신분을 강조하는 남인은 3년을 주장한다.
이 사건은 당시 '여당'이었던 서인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15년 뒤에 같은 사건에 대한 판단이 정반대로 뒤집힌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효종의 아내인 인선왕후가 죽었는데, 역시 조 대비의 복상 기간이 쟁점이다. 서인은 인선왕후가 둘째 며느리이므로 복상 기간이 9개월이라고 주장했고, 남인은 1년이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인이 정치적으로 우세했으므로 지난번과 반대로 남인의 주장이 관철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투쟁은 그 자체로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명분이나 구실을 매개체로 한다. 그러므로 서인과 남인의 권력 투쟁이 예법에 관한 논쟁의 양상을 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문은 왜 하필 그때 예법이 권력투쟁의 명분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조선은 처음부터 유학 국가였는데도 왜 17세기 중반에야 새삼스럽게 예법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걸까?
그 원인은 중국이 오랑캐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화의 메이저리그가 사라졌다면 마이너리그가 진짜가 된다. 중화세계가 조선으로 옮겨왔으므로 이제부터 모든 예법을 조선에서 다듬어야 하고 새로 필요한 것은 새로 만들어야 한다. 결국, 서인과 남인이 사뭇 비장한 자세로 예법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이유는 조선이 지구 위에 유일하게 남은 문명국가라는 허황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사물놀이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이지만, '최고'라는 찬사는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헛된 자만심은 세계인과 교류를 막는 장애물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한 소중화주의는 오늘날까지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금강산 플래카드와 같은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주의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금강산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면 누구나 입을 다물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그런 오판이 정책(예컨대 관광 정책)의 측면에까지 반영되면 오히려 피해를 낳을 수 있다. "무릇 산은 금강산처럼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있어야 진짜 산이다." 물론 이것도 훌륭한 미학이지만 이런 관점에만 집착하면 스타인벡이 묘사한 로키 산맥의 험준한 아름다움, 생텍쥐페리의 눈에 비친 사하라의 황량한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게 된다.
김치가 세계화될 수 있는 상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김치를 맛보면 감동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경주를 관광한 서양인이 '뷰티풀'을 외친다고 해서, 사물놀이패의 뉴욕 공연에서 미국 관객들이 '원더풀'을 외친다고 해서 액면 그대로 믿었다간 '풀(fool 바보)'이 되기에 십상이다. 한때 서구의 문화제국주의가 악명을 떨쳤지만, 그에 대한 대응책이 소아병적인 문화중화주의여서는 안 된다. 문화란 본래 상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이나 우열을 말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객관적으로(때로는 타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아는 관점이 필요하다. <<남경태의 종횡무진사 >>
출처 : 삼수12
글쓴이 : 행천(杏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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