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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가스 5분의 1 값… 미국 경기 회복 이끌어
● 철강·조선엔 청신호, 석유화학은 기회이자 위기 ● 에너지원 다변화-수요 중심 에너지시장 기대 ● 석유공사, 직접 투자-현지 개발사 인수도 추진 |
이미지 출처 : www.dnb.com |
“미국 제조업 살린 비아그라.” 지난 4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셰일가스(Shale Gas) 붐에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셰일가스 산업에서 2010년까지 60만 개 일자리가 생겨났고, 저렴해진 가스 값 덕분에 산업 경쟁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미 철강회사 US스틸은 셰일가스 덕분에 마이너스였던 영업이익률을 플러스로 되돌려놓았다. 셰일가스 채굴에 쓰이는 강재(鋼材)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한 데다, 제품 생산에 다량 투입되는 에너지 값이 하락한 덕분이다. 싸게 만들어 비싼 가격에 많이 파니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셰일가스란 셰일암에서 채굴되는 천연가스를 가리킨다. 셰일암은 지표 2~4km 아래 진흙이 쌓여 형성되는데, 그 구조가 매우 촘촘해 마치 담요와 같다. 셰일가스는 이 안에 흡착되어 있거나 빈 틈 사이에 갇혀 있다. 최근 방한한 허천 텍사스대 석유지구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사기 접시처럼 단단하고 치밀한 돌에 붙어 있는 가스”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세계 최대 정유회사 엑손모빌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석유화학 분야 석학이다.
이 런 셰일가스는 그동안 존재만 알려졌지, 너무 깊고 단단한 암석에 갇혀 있어 꺼내 쓸 순 없었다. 하지만 수평시추기술, 수압파쇄기법 등 기술의 발달로 최근 개발되기 시작했다. 석유나 석탄에 비해 비교적 청정할 뿐 아니라 매장량도 방대해 인류가 125년간 소비할 수 있다는 ‘꿈의 에너지’가 드디어 문명사에 편입된 것이다.
원유와 달리 전 세계에 고루 분포했다지만 현재 셰일가스는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다. 11월 초 미국 오클라호마 주 셰일가스 채굴 현장을 다녀온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와 지식경제부(지경부) 관계자들은 1950, 60년대 때 원유를 뽑아내던 옛 광구에서 원유와 셰일가스를 함께 뽑아내는 현장을 보고 왔다. 배영찬 국과위 정책자문관(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은 “새 광구를 개발하기도 하지만, 기존 광구를 재활용해 원유와 셰일가스를 활발하게 채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유전개발 전문업체인 미국 롱펠로에너지(Longfellow Energy) 말론 미첼 회장은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기존 유전’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옛 광구의 부활
미 국은 이렇게 생산된 셰일가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미국의 산업체와 가정 에서는 2011년에 2008년 대비 20% 이상의 에너지 비용 감소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올해 초 북미 지역 천연가스 가격은 MMBtu(25만kcal의 열량을 내는 가스량)당 2달러 대로 한국이나 일본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오바마 정부의 의지, 그리고 산업 전반의 높은 관심과 투자로 미국 셰일가스 생산량은 앞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천연가스 총 생산량의 23%가량인 셰일가스 비중이 2035년에는 49%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발(發) 셰일가스 붐은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국영기업 중심으로, 일본은 종합상사 중심으로 미국 셰일가스 자산 매입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석유회사들도 미국 셰일가스 자산 지분 참여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 호주 등은 자국 내에서도 셰일가스를 채굴할 계획이다. 중국은 쓰촨성 등에 19개 셰일가스 탐사 개발구를 건설해 2020년까지 총 가스 생산의 8~12%를 셰일가스에서 충당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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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보완재 기능
우리나라도 9월 지경부가 ‘셰일가스 선제적 대응을 위한 종합전략’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이에 맞춰 국과위도 에너지 관련 연구개발(R·D)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셰일가스 관련 기술 확보에 나선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들은 미국과 캐나다 셰일가스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스공사는 2017년부터 20년간 연간 350만 t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셰일가스 수입을 위해 LNG(액화천연가스) 액화플랜트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셰일가스는 액체로 만들어 선박으로 운송한다). 민간기업의 관심도 높아 보인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조 단위의 투자의향서를 받고 북미 지역 셰일가스 개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며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형태의 진출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자국 내에서만 셰일가스를 소비하고 있는 미국이 수출을 시작하고,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셰일가스를 생산하게 되면, 마침내 우리도 ‘가스 혁명’혜택을 입게 될까.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각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청신호가 켜진 분야는 철강, 조선, 플랜트 및 기자재 등 셰일가스 개발 관련 산업이다. 셰일가스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액체화하는 시설이나 세계 각국으로 운송할 LNG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산 강관(鋼管)의 최대 수출시장이고, 미국 수출제품의 상당수가 시추관 및 송유관이다. 또 LNG선은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해 LNG선 발주가 늘었는데, 2011년 51척의 신규 발주 중 44척을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이 수주했다.
우리나라 수출 제1품목인 석유화학에는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폴리에틸렌의 재료가 되는 에틸렌은 원유의 나프타 혹은 천연가스의 에탄에서 나오는데, 셰일가스 덕분에 에탄 가격이 하락하면 나프타를 주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석유화학업계가 불리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저렴한 셰일가스의 공급으로 북미 에틸렌 제조원가는 아시아와 유럽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가격 면에서 유리해진 것이다. 이에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차별화 전략을 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최현철 SK이노베이션 촉매공정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셰일가스 관련 콘퍼런스에서 “중국이 가스 기반 화학플랜트 투자를 늘리고 있어 장기적으로 국내 석유화학산업 수익성이 약화될 수 있다”며 “범용 제품 생산 비중을 줄이고 가스 공정에서 만들 수 없는 고부가가치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발전 분야에서 셰일가스가 발전연료용으로 얼마나 많이 사용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셰일가스의 영향을 고려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짠다는 방침이지만 ‘석탄 40, 원자력 30, 천연가스 20, 신재생에너지 10’인 현재의 에너지구성비가 어떻게 달라질지 구체적으로 가늠하기엔 무리가 있다. 문형식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천연가스 비중이 얼마나 확대될지는 시나리오상의 예측만 가능할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국 등 셰일가스 생산국이 에너지 안보를 이유로 셰일가스 수출을 제한할 경우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고, 또 셰일가스 국내 반입가격을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기중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액화비, 수송비까지 포함해 셰일가스의 국내 반입가격이 MMBtu당 10달러 정도 된다면 발전연료용으로 경제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석탄이나 원자력을 대체하기엔 무리가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석탄, 원자력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는 대체할 수 없지만 요즘처럼 원자력발전에 문제가 있다든지 할 때에 가스 발전을 높여 보완하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오염 우려
셰일가스 채굴과정에서 유발되는 환경오염 문제는 자칫 ‘셰일가스발 에너지 혁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변수다. 셰일가스 채굴에서 사용하는 수압파쇄 기술은 막대한 양의 물을 사용해 그에 따른 수자원 고갈 문제가 우려된다. 또 물에 섞는 유체(fracking fluid)에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지하수나 토양이 오염될 수도 있다. 이런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셰일가스의 미래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월 ‘셰일가스 개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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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적인 우려에 대해 허천 교수는 “현재 미국에서는 물을 재사용하는 기술, 유체에 섞는 화학물질을 친환경 물질로 대체하는 기술 등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8월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석유엔지니어학회(Society of Petroleum Engineers) 연례 콘퍼런스에서 연사로 나선 미 석유회사 할리버튼사 CEO가 할리버튼이 개발한 생분해성 유체를 물에 섞어 마시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에너지 자급자족하면…
여러 우려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셰일가스 붐은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호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원유 중심, 중동 중심, 공급자 중심에서 탈피해 에너지원을 다원화할 수 있고, 에너지 시장이 수요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배영찬 국과위 정책자문관은 “최대 에너지 수입국인 미국이 에너지 자급자족 수준을 높이면 그 여파가 다른 국가들에 크게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으로 가던 에너지가 다른 도착지를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시장을 겨냥해 천연가스를 개발한 캐나다와 카타르 등은 다른 수출처를 물색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천연가스를 유가에 연동한 가격제로 수입하고 있어 ‘셰일가스 할인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가스 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면 현재 가격제도가 유가가 아닌 미국 천연가스 가격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에너지 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200년 만에 미국에서 재현된 골드러시, 아니 ‘가스러시’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일까. 이 호기를 유리하게 활용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기업들 중 셰일가스가 미치는 영향과 셰일가스가 가져다주는 기회에 대해 예의주시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귀띔하며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김현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관련 기술을 갖고 있어야 더 좋은 조건으로 셰일가스를 가져올 수 있다”며 “초기에는 정부가 끌어줘야 이 분야가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허천 교수는 “셰일가스 개발 기술은 다른 자원 개발 기술과 동일선상에 있어 셰일가스 개발 기술을 확보하면 캐나다 오일샌드, 베네수엘라 초중질유 등 다른 탄화수소자원 개발에도 진출할 수 있다”며 “한국은 이미 발전한 통신 화공 나노 기술 등을 석유공학과 접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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