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식물에 새겨져 있는 문화 바코드 읽기 ㅣ고정희 지음 ㅣ 나무도시
● 인류와 함께한 식물 문화 이야기 - 식물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 책은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한 식물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튤립부터 2억 7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식물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있다.
수로부인의 진달래, 마고여신의 복숭아나무, 유화부인의 버드나무, 심청의 연꽃처럼 우리의 신화와 전설에 담겨있는 식물은 물론,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는 누명을 쓰게 된 사과나무와 비너스의 눈물이 변해서 생겨난 양귀비, 게르만 족에게 거의 유일한 나무로 추앙받았던 마가목 등 서구문화권에서 주목 받았던 식물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인류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신화와 예술 작품, 이를 테면 그리스 신화와 셰익스피어의 희곡, 삼국유사와 심청전, 보티첼리와 푸생의 그림,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등에 등장하는 여러 식물들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분석은 식물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되돌아보게 하고, 문화의 원류가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또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일까, 아니 식물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 작전의 명수인 식물들의 모험담! - 튤립은 ‘미모’로, 주방식물들은 ‘쓸모’로
감자, 토마토, 후추, 옥수수, 커피는 식품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간혹 잊고 사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분명 식물이다. 그것도 보통 식물이 아니다. 인디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옥수수의 신화는 신기할 만큼 성경 속 이야기와 닮아 있고, 후추는 타이탄들의 치열한 전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심지어 인디언들이 몰살당해 미대륙이 텅 비자 다시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 ‘감자의 신’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감자의 신이 유럽의 감자를 썩게 해서 굶주린 사람들을 미대륙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는 감자썩음병이 창궐해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어, 아일랜드 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이처럼 비주얼이 출중하지 않은 주방식물들이 지구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쓸모’를 내세웠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솔깃하다.
그런가하면 ‘미모’를 앞세운 튤립은 네덜란드에 튤립 투기 열풍을 불러왔다. 마치 우리가 주거의 목적의 아니라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고 그것을 되팔고 되팔아서 엄청난 잉여가치를 형성했던 것처럼, 구근 하나 당 단 두 개의 새 구근만을 만드는 튤립의 특성이 결합되어 희귀한 튤립 구근을 되팔고 되파는 투기 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암스테르담 국제공항에서 이런 튤립을 포함해, 아도니스 정원 패키지를 판매하는 것을 바라보며 시작된 저자의 식물 단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해리포터의 마법의 세계로까지 나아간다.
● 신화와 예술 작품을 넘나드는 식물 오디세이 - 그리스 신화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거쳐 해리포터의 마법의 세계까지
게르만, 켈트 족의 후예들과 3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온 저자는 지나치리만큼 열정적인 그들의 식물에 대한 애정을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신화에서부터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후 식물과 인류 문화의 연관성을 좇는 저자의 시선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메소포타미나의 ‘길가메시 서사시’,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 푸생의 ‘플로라의 왕국’, 보티첼리의 ‘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서왕모가 등장하는 ‘산해경’, 인디언의 전설을 지나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으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오랜 객지생활에서 비롯된 우리 것에 대한 갈증이 바리데기와 도화녀, 수로부인, 유화부인 그리고 심청전에 대한 색다른 해석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 문화의 유사성과 사람들을 치유하는 식물의 힘! - 심청이 물에 빠져야만 했던 이유는?
저자는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 등장하는 유화부인 이야기가 웨일즈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케리드웬 여신의 이야기와 교묘하게 겹치고, 헌화가와 함께 전해지는 수로부인 설화에서는 지중해의 플로라 여신이 떠오른다며,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 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태초에 물과 연꽃만이 있었다는 이집트와 인도의 창조신화 또한 놀랍도록 닮아있고, 연꽃에서 솟아오르는 우리의 심청전 또한 그와 맥을 같이 한다고 지적한다.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수로부인의 헌화가와 심청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새롭고 흥미롭다. 특히 심청이 연꽃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온 까닭을 연화화생이 아니라 치유와 위로를 담당했던 신의 역할, 자연의 역할에서 찾으며, 인류를 보살펴온 식물의 넉넉한 품을 강조하는 저자의 분석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인류사에 뿌리내린 식물 이야기 [연합뉴스] 2012.07.10
1634년 네덜란드를 휩쓴 '투기 열풍'의 주인공은 보석도, 미술품도 아니었다. 구근에서 단 하나의 줄기가 곧게 올라와 단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 '튤립'. '셈퍼 아우구스투스'라는 줄무늬 튤립은 당시 집 한 채 값이었던 오천 플로린에 거래됐을 정도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순간에 튤립에 푹 빠져버린 이유는 뭘까.
조경학 전문가인 고정희는 신간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나무도시 펴냄. 303쪽. 1만6천800원)'에서 인류 문명사 곳곳에 뿌리내린 식물의 존재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튤립. 16세기 처음으로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낸 튤립은 지금까지도 각국에서 "여왕의 꽃"으로 군림하고 있다. 비결은 튤립의 '도도한' 성격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
번식 속도가 엄청 느리고, 빨간 튤립의 구근을 심었는데 이듬해 엉뚱한 꽃이 필 정도로 예측불가능하며, 특이한 돌연변이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 튤립의 몸값을 끌어올렸다고 그는 설명했다.
감자, 토마토, 후추, 사탕수수처럼 엄연히 식물이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부엌에서 각광받는 "주방 식물"로 변모한 과정도 새롭게 조명된다.
저자는 서양과 동양 문화에 공존하는 식물로도 진달래, 복숭아나무, 버드나무, 연꽃을 꼽았다.
예를 들어 연꽃의 경우 여러 문화권에서 "세상을 낳은 식물"로 묘사된다는 것. 이들 식물이 서구와 동양 신화에 '겹치기 출연'하면서 인류사에 남긴 발자취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역사 속 에피소드와 생생한 사진 자료를 곁들여 식물이 묵묵히 인간의 곁을 지켜온 친구였음을 새삼 일깨운다.
보석 대신 '여왕의 꽃, 튤립을 꽂고 파티에 [광주일보] 2012.07.13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고정희 지음 〈나무도시·1만6800원〉
문제 하나. 콜럼버스는 이 향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인도를 찾아 떠났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세계 역사를 바꿨다. 15세기말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 항해에 성공할 때까지 2000년 가까이 유럽에서 최고가로 거래됐고 이 물건의 교역으로 부자가 된 중세 부유한 상인들을 ‘XX자루’라고 불렀다.
문제 둘. 독일에서는 친한 친구나 가족이 약속을 펑크냈을 때 “넌 의리없는 XXX다”라는 말을 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 편에 섰던 이탈리아는 나중에 등을 돌렸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이 채소를 빗대 지금도 의리 없는 사람을 대신할 때 쓴다.
문제 셋. 1634년 네덜란드를 휩쓴 ‘투기 열풍’의 주인공으로, 어린 아이보다 작은데도 당시 집 한 채 값에 거래됐다. 한때 ‘조물주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고도 불리었다.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서일까. 책장을 넘길수록 느껴지는 식물의 존재감. 엄청나다. 인간의 시간 관념으로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식물의 역할이 놀랍기만 하다.
조경학 전문가인 고정희씨가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를 통해 전하는 인류 문명사 곳곳에 뿌리내린 여러 식물의 의미와 가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신선하다.
그저 산이나 들에 핀 식물이나 꽃 사진, 이름 정도를 알려주거나 어느 식물이 어디에 좋고 맛이 어떻고 어디에 사용하면 좋다는 식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식물 생태, 형태, 자연사, 약리 등을 언급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식물이 인류사에 남긴 발자취까지 되짚어보는게 흥미롭다. 그래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는 인류사에 흔적을 남긴 대표적인 식물로 튤립을 들었다.
16세기 처음으로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낸 튤립은 지금까지도 각국에서 ‘여왕의 꽃’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때는 꽃의 여왕을 뛰어넘어 ‘조물주의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귀부인들이 값비싼 보석 대신, 튤립 부케를 가슴에 꽂고 파티에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튤립 부케는 보석 값과 맞먹었다고 한다.
특히 1634년 네덜란드에 광기에 가까운 튤립 투기 열풍이 불던 시절, ‘셈퍼 아우구스투스’라는 줄무늬 튤립은 구근 한 개가 집 한 채 값에 거래됐을 정도다.
저자는 이렇게 튤립 열풍이 거센 데는 별난 특성이 한몫을 했다고 분석한다. 번식 속도가 엄청 느린데다, 빨간 튤립의 구근을 심더라도 이듬해 엉뚱한 꽃이 필 정도로 예측 불가능하고 특이한 돌연변이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등 심는 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피어나는 점이 튤립의 몸값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감자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인디언들이 미 대륙에서 몰살당해 텅 비다시피하자 다시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 ‘감자의 신’이 개입했다는 일부 주장도 소개하고 있다. 유럽에 대기근이 닥친 19세기, 감자 원산지인 미국으로 수백만의 농부와 노동자가 이민을 간 사례 등을 포함하며 설명해 상당히 솔깃하다.
세상을 바꾼 후추 한 알도 흥미롭게 읽힌다.
크게 눈에 띄는 식물이 아닌데도, 더운 여름 육류를 저장하는데 필요했고 향도 좋아 인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는 것. 수요가 늘어나면서 값은 최고가로 뛰었고 후추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한 유럽 여러 나라의 노력이 치열했다는 얘기도 재미있다. 커피나무신이나 옥수수를 신화와 연결해 살펴본다거나 감자, 토마토, 후추, 사탕수수처럼 엄연히 식물이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부엌에서 각광받는 ‘주방 식물’로 변모한 과정을 조명하는 것도 새롭다.
서양과 동양 문화에 공존하는 식물로 꼽힌 진달래·복숭아나무·버드나무·연꽃 등에 대한 얘기, 이들 식물이 서구와 동양 신화에 ‘겹치기 출연’하면서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열풍… 한 뿌리가 집 한 채 값 ! [문화일보] 2012.07.13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 고정희 지음 / 나무도시
한·중·일 동아시아 3국에서 울금향(鬱金香)이라 불리는 튤립은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자기 존재를 드러낸 식물이다. 16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황제의 명으로 당시 오스만제국이었던 터키를 둘러본 외교관 뷔스베크는 이스탄불에 도착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꽃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당시 터키 사람들은 그 꽃을 한 송이씩 머리에 꽂고 다녔는데, 특히 남자들이 머리에 천을 두르고 그 주름 사이에 한 송이씩 꽂고 다니는 모습이 신기해 가이드에게 손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 ‘튀르판’이었다. 튀르판은 원래 터키에서 머리에 두르는 터번을 부르는 명칭이다. 뷔스베크는 후일 여행기에 “터키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장미같이 생긴 빨간 꽃을 머리에 꽂고 다니는데 그 꽃을 튀르판이라고 한다”고 썼다. 튀르판은 이후 툴리파로 불리다가 지금의 학명인 튤립이 됐다고 한다.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20세기 유럽조경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책에서 정원을 구성하는 주인공인 식물들의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16세기 중반 처음으로 유럽에 소개된 튤립은 ‘미모’를 앞세워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저자에 따르면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가장 비쌌던 줄무늬 튤립인 ‘셈퍼 아우구스투스’는 구근 한 개가 당시 집 한 채 값이었던 5000플로린에 거래됐다.
식물계의 새내기라고 할 수 있는 튤립부터 2억7000만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나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까지 사람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식물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끼친 영향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은 인류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준다. 특히 서양의 신화와 예술 작품을 넘나들며 식물과 인류문화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저자의 독특한 글쓰기와 우리 신화와 문화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흥미를 돋운다. 저자는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 등장하는 유화부인과 영국 웨일스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케리디웬 여신, 헌화가와 함께 전해지는 수로부인 설화와 지중해 플로라 여신 등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공통성을 지적하며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식물은 묵묵히 인간의 곁을 지켜온 친구 [세계일보] 2012.07.13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고정희 지음/나무도시/1만6800원
독일에서 친한 친구나 가족이 약속을 펑크냈을 때 “너는 의리 없는 토마토다”라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탈리아가 처음에 독일편에 섰다가 나중에 등을 돌렸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토마토를 많이 먹는다. 18세기 초까지 관상용이던 토마토를 식용으로 처음 사용한 민족도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이런 연유로 독일 사람들은 의리 없는 사람을 이탈리아인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16세기 중반 페르시아에서 처음 유럽에 전해진 튤립 구근은 양파처럼 프라이팬에 볶아져 식용으로 사용됐다. 그러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1634년의 투기가 유난히 극성스러웠다. ‘셈퍼 아우구스투스’라는 줄무늬 튤립이 당시 집 한 채 값이었던 5000플로린에 거래됐을 정도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조경학자인 저자는 이같이 인류 문명사 곳곳에 뿌리내린 식물의 존재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식물을 중심으로 풀어낸 인류문명사다.
게르만, 켈트족의 고대 신화는 사람이 나무에서 태어났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영원한 젊음을 약속하는 황금사과 이야기까지 신통한 식물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이집트·그리스·로마·메소포타미아·인도의 신화도 식물과 연계돼 있다. 고대국가에서 커다란 나무가 신전 역할을 맡았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우리의 신화에도 마늘과 쑥이 보이고, 1920년대 그려진 단군의 초상은 영락없는 나무신(神)의 모습이다.
저자는 역사 속 에피소드를 곁들여 식물이 묵묵히 인간의 곁을 지켜온 친구임을 새삼 일깨운다. 아담과 이브가 입었던 인류 최초의 의상도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호흡하는 것도 식물 덕분이다. 인간은 식물이 죽어서 차곡차곡 쌓인 석탄층을 꺼내서 연료로 쓰고 있다. 저자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식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한국일보] 2012.07.14
고정희 지음. 1634년 네덜란드를 휩쓴 투기 열풍의 주인공 튤립, 유화부인의 버드나무, 심청의 연꽃 등 역사와 신화를 오가며 인류 문명사 곳곳에 뿌리내린 식물의 흥미로운 이야기. 나무도시ㆍ 303쪽ㆍ1만6,800원.
문명사 이면 움직인 식물 문화사 [한겨레] 2012.07.13
1634년 신흥강국 네덜란드에서는 미친 듯한 튤립꽃 투기 열풍이 번졌다. 뿌리 구근에서 단 하나의 줄기가 벋어 올라와 단 한 송이의 꽃만 피우는 이 도도한 식물의 주가가 막 치솟았다. ‘셈퍼 아우구스투스’라는 줄무늬 튤립종은 당시 집 한 채 값이던 5000 플로린에 거래되며 숱한 투자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세계 경제를 주무르던 네덜란드인들이 부동산도 아닌 튤립 사재기에 집착했던 까닭은 뭘까. 조경학자 고정희씨는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에서 튤립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지목한다. 번식 속도가 훨씬 느리고, 빨간 튤립 구근을 심었는데 이듬해엔 엉뚱한 색깔의 꽃이 필 정도로 돌연변이가 잦은 예측불허의 특성이 몸값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파미르 고원에서 페르시아, 터키를 거쳐 유럽 문화판을 휩쓴 튤립처럼 이 책은 문명사 이면을 움직인 여러 식물의 존재감을 조명한다.
감자, 후추, 사탕수수처럼 겉은 볼품없어도 인간 부엌에서 각광받는 “주방 식물”의 변모과정을 풀어내거나, 동서양 문화에 공존하는 네가지 꽃, 진달래·복숭아·버드나무·연꽃의 문화적 의미들을 다룬 대목 등도 눈길을 붙잡는다. 연꽃의 경우 이집트·인도의 창조신화와 우리 심청전 등 여러 문화권에서 “세상을 낳은 식물”로 묘사된다고 한다. 꽃무리들의 다채로운 일화를 여러 생생한 사진·도판 자료와 함께 실은 이 책은 식물이 인간 곁을 지킨 가장 오랜 친구였음을 새삼 일러준다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문화의 유사성 과연 우연일까 [서울신문] 2012.07.14
버드나무는 땅이 끝나고 물이 시작되는 지점, 쉽게 말해 물과 뭍의 경계에서 잘 자라는 나무다. 여기서 ‘물가’는 종종 다른 세계, 예컨대 삶과 죽음의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는 동서양이 비슷하다.
조경학자 고정희가 지은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나무도시 펴냄)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버드나무를 마녀들의 나무라고 부른다. 마녀들이 자신이 속한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통로로 이용한다는 뜻에서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채찍질하는 나무를 연상하면 알기 쉽다. 해리 포터 등 주인공들이 버드나무 둥치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수없이 마을을 오갔던 장면 말이다.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버드나무 관련 이야기들도 대체로 ‘서늘한’ 편이다. 하룻밤 풋사랑을 기다리다 죽은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처녀 이야기가 그렇고,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를 사랑한 버들꽃 아가씨 ‘유화 부인’ 설화도 애절하다.
특히 이규보의 서사시 동명왕편에 등장하는 유화 부인 설화는 영국 웨일스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케리드웬 여신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겹친다. 그뿐 아니다. 천안삼거리 능수버들 처녀 이야기는 보헤미아 지방의 젊은 부부 전설과 얼개가 놀랍도록 빼닮았다. 하나의 식물을 두고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는 게 단순한 우연일까.
책은 이처럼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한 식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튤립부터 2억 7000만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나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 온 식물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피고 있다. 수로 부인의 진달래와 마고 여신의 복숭아나무, 심청의 연꽃처럼 우리의 신화와 전설에 담겨 있는 식물은 물론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는 누명을 쓰게 된 사과나무와 비너스의 눈물이 변해서 생겨난 양귀비, 게르만 족에게서 거의 유일한 나무로 추앙받았던 마가목 등 서구 문화권에서 주목받았던 식물들이 책의 주인공이다.
저자는 헌화가와 함께 전해지는 수로 부인 설화에서 지중해의 플로라 여신이 떠오른다며 식물을 뿌리로 한 인류 문화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태초에 물과 연꽃만이 있었다는 이집트와 인도의 창조신화 또한 놀랍도록 닮아 있고 연꽃에서 솟아오르는 우리의 심청전 또한 재생설화란 측면에서 그와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심청이 연꽃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온 까닭을 치유와 위로를 담당했던 신과 자연의 역할에서 찾으며 인류를 보살펴 온 식물의 넉넉한 품을 강조하는 저자의 분석이 인상적이다. 1만 6800원.
인류사에 뿌리내린 식물들의 초상화 [동아일보] 2012.07.14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고정희 지음/303쪽·1만6800원·나무도시
2억7000만 년 전 지구상에 나타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부터 16세기 식용작물에서 화훼작물로 재탄생한 튤립까지 우리 곁을 지켜온 식물들과 인류의 상호작용을 소개한 책. 진달래와 수로부인 등 우리 설화 속 식물은 물론이고 선악과라는 ‘누명’을 쓴 사과나무, 비너스의 눈물이 변해서 생겨났다고 여겨진 양귀비 등을 폭넓게 살펴본다. 조경 디자이너 출신인 저자는 “식물과 만날 때마다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식물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 같다”고 말한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고정희) [부산일보] 2012.07.14
튤립, 진달래, 버드나무, 은행나무 등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식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읽어냈다. 나무도시/1만 6천800원
우리가 몰랐던 식물, 이런 의미가… [영남일보] 2012.07.14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한 식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은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튤립에서부터 2억7천만년 전 지구상에 나타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식물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책에는 수로부인의 진달래, 마고여신의 복숭아나무, 심청의 연꽃 등 우리의 신화와 전설에 담겨있는 식물은 물론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란 누명을 쓰게 된 사과나무, 비너스의 눈물이 변해 생겨난 양귀비, 게르만족에게 거의 유일한 나무로 추앙받았던 마가목 등 서구 문화권에서 주목받았던 식물이 다양하게 다뤄진다.
독일의 대학에서 ‘20세기 유럽조경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베를린 자유도시개발 엔지니어링과 삼성에버랜드 등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조경분야의 정보와 지식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현재 독일에 머물며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책은 인류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수많은 신화와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식물의 의미와 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식물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되돌아보게 하고, 문화의 원류가 무엇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한다.
17세기 네덜란드선 이 튤립 한뿌리 고급주택 한채 값 [국제신문] 2012.07.14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고정희 지음/나무도시/1만6800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의 투기 열풍이 불었다. 투기의 대상은 튤립.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주거 목적이 아니라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되팔아 엄청난 차익을 남기는 방식과 다를 바 없었다.
'셈퍼 아우구스투스'라는 줄무늬 튤립은 구근 한 개가 암스테르담의 정원 딸린 고급주택 한 채 값과 맞먹는 가격으로 거래됐을 정도였다.
유럽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았을 정도로 풍족해지자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빨간 튤립의 구근을 심었다. 이듬해 엉뚱한 꽃이 필 정도로 예측할 수 없고 특이한 돌연변이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튤립의 특성이 맞물리며 일어난 결과였다.
튤립이 미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감자, 토마토, 후추, 옥수수, 커피 같은 주방식물은 '쓸모'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후추는 더운 여름에 육류를 저장하는데 사용된 덕에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물론 특유의 향도 한몫했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값은 최고가로 뛰었고 후추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한 유럽 여러 나라의 노력이 치열했다.
이밖에 옥수수를 신화와 연결해 살펴본다거나 감자, 토마토, 후추, 사탕수수처럼 엄연히 식물이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부엌에서 각광받는 '주방 식물'로 변모한 과정을 조명하며 잘 알지 못했던 식물의 모습을 들춰본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는 이처럼 사람들 곁을 지켜온 식물들이 인류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흔한 식물관련 서적처럼 식물의 생태나 효능 등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식물이 인류사에 남긴 발자취를 되짚어 보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득 실었다.
그리스 신화부터 셰익스피어 희곡, 삼국유사와 심청전,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까지 인류 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신화와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식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분석은 식물에 대한 선입견을 되돌아보게 하고 문화의 원류를 깨닫게 한다.
식물과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책의 끝에 저자가 밝힌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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