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베스트셀러 탐구]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kongbak 2012. 7. 9. 20:55

[베스트셀러 탐구]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ㆍ‘재기 발랄’한 과학책, 그 정확성은 교수들도 인정

글쓰기 학교인 심산스쿨에서 강의하는 배우 겸 작가 명로진씨는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사진)의 책을 수강생 필독서로 권하고 있다. 자본과 시장에서 독립한 ‘인디라이터’를 자처하는 그는 브라이슨을 역할모델로 삼는다. 명씨는 “빌 브라이슨은 유머 작가로 인기가 많지만 역사, 풍습, 사회사, 환경 등에 대한 지식이 만만치 않아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 브라이슨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책은 2003년 출간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원제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이 책은 영국 아마존 1위, 미국 아마존 2위를 차지하는 등 해외에서 일찌감치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한국에서도 지금까지 10만부가량이 판매됐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 21세기 북스 제공

해외 출간 당시 “과학적 글쓰기에 대한 현대의 고전”(뉴욕타임스), “우주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재능”(시애틀타임스) 등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판을 출판한 까치출판사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이후 과학분야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홍보하고 있다. 출간된 이래 기복 없이 꾸준히 팔려나가 스테디셀러가 됐다는 점도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특징이다. 예스24, 교보문고 등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과학분야 판매 순위에서는 10년째 10위권에 머물고 있다.

연령별, 성별 판매지수를 봐도 스테디셀러로서의 양상이 두드러진다. 교보문고는 이 책의 구매자가 20대 24%, 30대 28%, 40대 30% 등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남녀 구매자도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빌 브라이슨의 여행, 에세이 서적과 비교해볼 때 10대 구매자의 비율이 높다는 점도 스테디셀러의 한 요인이다. 까치 박성배 부장은 “한국에서는 과학 분야 서적의 인기가 많지 않아 출간 초기엔 잘 팔려 나가리라고 확신하지 못했지만 각종 매체, 기관, 대학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면서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책의 인기는 브라이슨의 후속작 제목에도 영향을 미쳤다. 원제가 인 브라이슨의 책은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브라이슨이 짓지 않았으며, 원제가 다른 책들도 <거의 모든…>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스파이의 역사>가 그 사례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왜 인기를 끌까. 일단 과학책으로서 오류가 없는 정확성과 전문성을 들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여행기 작가가 썼는데도 그 어떤 과학자가 쓴 것보다 핵심을 잘 파악했다”며 “전문가인 내가 봐도 틀린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대학입시의 논술이나 면접의 질문거리를 찾는 교수님들이 제일 먼저 구해 읽을 만한 책”이라고 추천했다. 아울러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는 과학책 특유의 딱딱함과 난해함이 없다. 이덕환 교수는 “같은 분량의 다른 과학책이었으면 번역에 6~7개월이 걸렸을 텐데,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500쪽을 3개월 만에 번역했다”고 말했다.

문장이 간결하고 메시지가 명확해 번역이 쉬웠고, 이 같은 문장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는 것이다. 브라이슨 특유의 유머 감각과 독특한 표현은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 좋은 양념이 됐다. 명로진씨는 “유머 작가로 알고 있던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은 뒤 개그맨이 정색하고 과학사 강의를 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며 “브라이슨의 영미식 유머는 취향을 타긴 하지만, 코드가 맞는 사람에겐 큰 웃음을 준다”고 말했다.

▲3년간 취재 … 참고문헌만 11쪽

원자들은 어떻게 생명체를 만드는가. 인간을 구성하는 것과 똑같은 원자들이 우주의 다른 곳에서는 왜 인간을 만들지 않는가. 아주 오래된 진화의 길을 거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생겨난 것은 어떤 연유인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그런 질문에 대한 빌 브라이슨의 해답이다.

호기심 많던 브라이슨은 초등학생 시절 지구의 단면을 그린 그림을 봤다. 지구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과학책을 펴들었다. 그러나 책에는 배사구조니 축성단층이니 하는 전문용어만이 가득했다. 그는 “교과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지나칠 정도로 흥미롭게 만들어서는 안되고, 정말 흥미로운 것으로부터 장거리 전화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비밀스러운 약속을 한 것 같았다”고 썼다.

성인이 된 브라이슨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안에서 예전같은 호기심을 다시 느꼈다. 바닷물은 왜 호수와 달리 짤까.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어떻게 밝혀내는지 알고 싶어졌다. 브라이슨은 3년간 전 세계의 과학자를 만나고, 현장을 답사하고, 책을 읽은 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책에 적힌 참고문헌만 11쪽에 달한다.

‘최초의 3분’ 동안 우주에 존재할 모든 물질의 98%가 생성됐다. 우주는 신비스럽고 훌륭한 가능성이 존재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그 모든 일들이 ‘샌드위치를 만들 정도의 짧은 시간’에 완성된 것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과학자의 설명을 믿는다면, 독자들은 “우주의 끝으로 가서 커튼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물을 수 있다. 그 머리는 우주에 속할까. 대답은 실망스럽게도 “우리는 절대 우주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맞도록 휘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멀리 가도 처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우주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한 브라이슨은 지구, 양자론과 상대성이론, 생명, 기후와 인류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복잡한 도표나 수식 없이도 과학사에 대한 적지 않은 지식을 쌓게 해준다.

▲신문기자 출신 작가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은 1951년 미국 아이오와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된 뒤에는 주로 영국에서 신문기자와 작가로 활동했고, 현재도 영국에 살고 있다.

브라이슨이 모국어로 쓴 책은 20권에 육박한다. 이 중 국내에 소개된 책은 16종(개정판 제외)이다. 2003년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나와 인기를 끌자, 2008년부터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산책> 등이 잇달아 나왔다. 특히 2008~2009년에 10종이 집중적으로 소개돼 한국 내 브라이슨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지금까지 <유럽산책>은 8만부,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와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은 5만부가량 팔렸다. 그의 책에는 ‘발칙한…’이란 수식어가 붙곤 하는데, 이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이 인기를 끌자 그에 편승한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은 지난달 출간된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다. 한국에서는 과학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브라이슨의 주저는 역시 여행서다.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전 세계 어느 공항의 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입력 : 2012-02-17 20:41:14수정 : 2012-02-17 20: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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