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삼심육계] 제 20계 혼수모어(混水模漁)...
乘其陰亂 利其弱而無主 隨以向晦入宴息
적이 내분으로 인하여 어지러워지면 그것을 이용하라. 그들이 약하여 주(主)고나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롭다. 주역에 수(隨)란 군자가 천지의 상을 잘 관찰하여 어둠이 깔리면 집에 들어가 편히 쉬는 괘라 하였다.
출전은 병법원기 혼편이다.
混于虛 則敵不知所擊 混于實 則敵不知所擊 混于奇正 則敵不知所變化 混于軍 混于將 則敵不知所識 而且混敵之將以잠軍混敵之軍以잠將 混敵之軍將以잠城營. 同彼正奇 一彼衣甲 飾彼裝束相貌 乘機竄入 發于腹 功于內 彼不識 我自別而彼不能別者 精于混也
비어 있는 곳에 섞여 있으면 적은 어느 곳을 공격할 것인가를 알지 못할 것이며, 차 있는 곳에 섞여 있어도 적군은 어느 곳을 공격할 것인가를 알지 못할 것이며, 기이함과 정도가 섞여 있으면 적군은 알지 못할 것이며, 군이 섞이고 장군이 섞여 있으면 적군은 표시해 놓은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적의 장수를 혼란하게 하여 군사를 얻을 수 있고, 적의 군사를 혼란케 하여 적의 장수를 취할 수 있으며, 적의 군사와 장수를 혼란케 하여 적의 성과 진영을 얻을 수 있다. 적군의 깃발과 똑같이 하고, 적군의 갑옷을 똑같이 하며 적군의 행장과 장식을 같이 하여 기회를 타서 잠입해 들어가서 적의 중심부에서 군사를 일으켜 내부를 공격하면, 적군은 식별 못하나 아군은 스스로 식별할 수 있으니 적군이 식별할 수 없는 것은 매우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당 개원연간 거란은 당 조정에 반란을 일으켜 유주 일대를 온통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돌궐에 토번에 강력한 외적에 둘러싸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고도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철수시켜야 했던 당 조정으로서는 유주를 공격해 들어오는 거란의 기병은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평정하고자
마침 거란군의 수장인 가돌간은 몇 차례 유주의 여러 성들을 공격하고도 함락시키지 못하자 당군의 허실을 살피고자 산신을 사자로 보내고 있었다. 짐짓 정중한 태도로 당 조정에 귀순하고 영원히 당을 침범하지 않겠다고 사신을 통해 전하고는 있었지만 그 속내는 과연 당군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틈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왕회는 먼저 이과절을 방문하여 그가 듣는 앞에서 가돌간의 빼어남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과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가돌간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무도하게 당에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전란의 고통에 빠지도록 했다고 하는 데서 시작해서 심지어 돌궐로부터 군사를 빌려 유주를 공격할 것이며 화친을 청한 것은 거짓이라는 내용까지 고스란히 왕회 앞에 털어놓은 것이다. 왕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과절에게 말했다.
"당의 군대는 매우 강하여 가돌간이 이번에 크게 패할 터이니, 이과절이 이번 기회에 거란의 진영에서 빠져 나와 공을 세우면 조정에서는 반드시 큰 상을 내릴 것입니다."
왕회의 격장지계에 이미 넘어간 이과절은 그의 제안에 바로 마음이 흔들려 그러마고 약속하고 말았다. 그리고 왕회가 유주로 돌아가자 바로 군사를 일으켜 가돌간의 본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가돌간의 본진은 금새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가돌간의 부장인 열예가 바로 진영을 정비하고 이과절을 공격해 그를 죽이기는 하지만, 일단 시작된 혼란은
이미 거란군의 내부에 있던 분열의 요소를 포착하여 그를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내분을 일으켜 손쉽게 거란의 강군을 몰락시킨, 물을 흐려 고기를 잡는 계책이라 할 수 있다.
적벽에서 조조가 패하고 허도로 돌아가자 형주는 말 그대로 주인이 없는 공백지로 남게 되었다. 조조의 족제(族弟)인 조비가 남아 지키고는 있었지만 이미 한 차례 기세가 꺾인 뒤였고, 무엇보다 적벽에서의 승리로 기세가 오른 오군의 공격은 무척 매서웠었다. 그러나 조비 또한 역전의 노장이라 녹록치는 않았는데...
워낙 조조의 군은 정예이고 손권의 군은 기세가 올라 있던 터라 특히 남군을 둘러싼 양군의 접전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두 강군의 치열한 싸움은 고작해야 강하와 하구 두 개의 성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 유비의 존재를 잊게 했다. 조비와 주유가 서로 싸우는 틈을 노려 유비가 남군을 함락시키기까지. 남군이 함락되고 남군에서 얻은 병부로 양양과 강릉까지 함락시키고서야 비로소 주유는 자신이 유비에게 이용당했음을, 어부지리를 주었을 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유비가 파촉을 얻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파촉의 유장은 한중의 장로의 위협에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고, 유장의 우유부단함에 파촉의 지배층은 하나의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항전할 것인가, 아니면 장로와 화친할 것인가, 조조의 힘을 빌릴 것인가, 유비의 힘을 빌릴 것인가, 유비가 입촉한 뒤로도 유비에 대해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형주를 손권으로부터 빌리고 있던 유비에게 파촉이라고 하는 든든한 근거지를 손에 넣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유비는 조조를 찾아갔다 모욕을 당하고 돌아가는 장송을 포섭하여 파촉으로 들어가는 길잡이로 삼았다. 장송은 다시 촉 안에서 법정 등의 인사들을 포섭했고, 그들은 유비가 당당히 유장의 요청으로 촉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유비가 야심을 드러내고 유장과 충돌했을 때 파촉 내의 친(親)유비 인사들은 유장을 설득하여 순순히 성을 내주고 항복할 것을 권하게 되었다. 방통을 잃기는 했지만 파촉이라는 든든한 근거지를 마련하기에는 너무나도 손쉬운 과정이었다. 모두가 파촉 진영 안에서의 혼란에 힘입은 바 컸다.
제갈량이 2차 북벌을 준비하고 있을 때 진창성에는 학소라고 하는 장수가 있어 한중에서 장안으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과연 사마의가 한중과 장안 사이의 교통의 요지를 믿고 맡길만하다 추천한 인재였던 것인지 학소는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오는 제갈량을 3천의 병력으로
제갈량이 사마의를 유인할 때도 손빈의 고사를 받아들여 오히려 퇴각하면서 밥을 해 먹은 솥을 늘리고 있었는데, 원래는 솥을 줄임으로써 병력이 줄고 있음을 보여야 했지만 이 경우에는 사마의가 병법에 밝다는 것이 솥을 늘리는 계략에 쉽게 넘어가도록 만들고 있었다. 솥을 줄이는 것이 병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꾸민 계략이었으니, 솥이 늘어나는 것은 그 역일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크게 당해 치욕의 숫자를 늘리고 말았다.
소설상의 픽션이기는 하지만 화용도의 계책 역시 혼수모어의 훌륭한 예다. 적벽에서 주유의 화공에 패한 조조가 겨우 뭍으로 도망쳐 강릉으로 퇴각하려는데, 장비와 조운의 복병에 각각 곤란을 겪었던 조조 앞에 다시 두 갈래 길이 나왔다. 한 쪽 길은 험했는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다른 한 쪽은 평탄한 길로 아무 조짐이 없었다. 이에 조조는 험하고 연기까지 피어오르는 길로 가기를 결정한다.
"제갈량은 꾀가 많은 사람이다. 분명 내가 이 길로 갈 것을 알고 복병을 숨겨놓았을 것이니 저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내가 그리로 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물론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경우로, 관우는 처음 명을 받을 때 연기를 피우는 것이 어찌 조조를 유인하는 계책이 되는가를 반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똑똑했던 조조였던 터라 결국 연기가 올라오면 적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이야 말로 제갈량의 꾀라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제대로 걸린 셈이다. 역시 없는 것으로써 있는 것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으로써 없는 것으로 위장한 혼수모어의 계책일 것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백제의 멸망 과정에는 신라의 절묘한 첩보전이 있었다. 사실 당시 백제의 군사력은 오히려 신라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당장 사비에 주둔중인 병력은 3만 정도에 불과했어도, 대야성 등의 신라와의 전선이나 다른 호족들이 보유한 병력을 포함한다면 당군에 대해서도 한 번 해볼만한 수준이었다. 단지 그러한 병력들이 제때 도착하여 신라와 당군의 배후를 공격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었는데,
그러나 당시 사비성에는 임자를 비롯 신라에 포섭된 간첩들이 거의 우글거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또한 의자왕 즉위 초기 전제왕권의 강화를 뒷받침하던 세력이 군대부인 은고의 등장과 더불어 급격히 교체되면서 심지어 태자를 교체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이러한 간첩과 내분의 존재는 사비성으로 하여금 적절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농성하며 외부의 지원을 기다려도 될 것을 굳이 부족한 병력으로 요격에 나서서 각각 황산벌과 백마강에서 전력을 소모한 것이 그 예다. 그리고 다시 그로 인해 사비성을 포기하고 도망쳤던 의자왕은 다시 돌아와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하긴 멀리 갈 것까지야 있겠는가. 당장 구한말 일본에 농락당하던 조선의 내정이 그러했었는데. 한 편으로는 개화파인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의해 멸망했다기보다는 안에서부터 스스로 무너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안에서부터 무너지도록 조장한 것이 일본의 전략이었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 조선 안에 인맥을 만들고, 그렇게 끌어들인 조선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일본의 근대화된 모습을 통해 일본에 우호적으로 - 나아가 일본의 이익을 조선의 근대화와 같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그리고 그들에 협조적인 인사들을 점차 조선의 상층부로 침투시키고... 때로 당한 놈이 병신이기도 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다. 오죽했으면 나라의 발전을 고민하던 지식인들이 남의 나라에 나라를 팔아넘길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 초반 프랑스 전역에서도 독일군은 마치 자신들의 주공방향이 벨기에 방면인 것처럼 철저히 연합군을 기만하고 있었다. 실제 벨기에 방면에 배치된 전력 역시 상당했었고 벨기에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훌륭히 전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벨기에 방면에서 연합군이 독일군과의 싸움에 정신을 쏟고 있는 동안에도 독일군의 진정한 주력인 A집단군은 아르덴느의 숲을 통과하여 뮤즈강을 도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합군이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독일군의 기갑군 주력은 도버해협을 마주한 칼레와 오스텐테까지 진출하여 연합군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항복 뿐. 그나마 덩케르크에서의 기적이 아니었다면 영국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의욕을 잃었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그런 점에서 낫질작전에 대한 연합군의 훌륭한 설욕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시 독일 정보부는 연합군의 상륙지점으로 칼레와 노르망디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연합군은 영국내 독일 스파이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그들을 이용해 역정보를 흘리는 한편, 칼레로 상륙할 듯한 모션을 취함으로써 독일군을 철저히 기만하고 있었다. 결국 독일군은 룬트슈테트와 롬멜 등 지휘부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 배후에 기갑사단을 배치해 놓고 상륙해오는 적을 조기에 교두보에서 구축한다는 어정쩡한 전략을 세웠다가 철저히 당하고 말았다.
사실 혼수모어의 예로 말하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결국에 최소한의 노력으로 목적을 달성하자면 내부로부터, 혹은 외부로부터 혼란을 유도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이상이 없을 테니까. 예를 들어 외환위기 당시 한국경제가 온통 혼란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IMF를 앞세워 신자유주적인 질서를 강요하여 한국을 깊숙이 자본적으로 잠식해 들어왔던 외국자본들처럼 말이다. 물론 나라에 외화가 없다니까 어찌하나 동동 발을 구르던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금모으기 운동이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한편 금 팔아 한 재산 챙긴 인사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역시 물이 흐려지니 고기를 건져 올리는 계책일 터이니.
이밖에도 적대국 사이에서의 삐라 등을 동원한 선전전이나, 기업간의 언론플레이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얼마전 있었던 한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언론플레이의 결과로 도리어 연예인이 나쁜 놈이 되었고 오히려 일방적으로 그를 강압했던 노인은 선의의 피해자가 되었던 경우도 그런 예다. 선거 때면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린다거나, 간첩이 미디어를 장식한다거나 하는 것도 같은 경우이고, 독재자가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스포츠와 스크린, 섹스의 3S정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의 예라 할 것이다. 때로는 거짓으로, 때로는 진실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고, 그로써 그 사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 모든 것이 혼수모어인 것이다.
말하자면 혼수모어란 천렵의 계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울에서 천렵할 때 어떻게 하는가? 한 쪽에서 그물 잡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물을 휘저으며 고기를 몰지? 같은 것이다. 물이 탁해지면 고기는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물살이 흔들리게 되면 고기는 놀라 한 쪽으로 달아나게 된다. 그리고 그 앞에 그물을 갖다대고 있으면 고기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알아서 그물로 뛰어들어 잡히게 된다. 남은 것은 된장 풀고 고추장 풀어 냠냠 맛있는 매운탕을 끓이는 것 뿐.
물론 앞서도 말했듯 스스로 물을 흐릴 필요까지도 없다. 비가 많이 오고 물이 넘치면 강은 혼탁해지고 그러면 물고기들은 맑은 공기를 찾아 몰려다니게 된다. 저수지 근처의 개울에서 낚시하는 타이밍이 바로 이때인데, 저수지에서 넘어온 물고기들이 거의 작은 개울에 물 반 고기 반이 된다. 낚시를 던져도 좋고, 그물질을 해도 좋고, 한 번은 그물이 너무 무거워서 제방에서 아래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스스로 흐리려 들지 않아도 흐려져서 고기들이 몰려다니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것, 이 또한 혼수모어의 계책이다.
다만 문제는 이 혼수모어라는 것이 상대를 혼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자칫 이게 꼬이다 보면 자기 자신이 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드웨이 해전 당시의 일본군의 전략이 그것인데, 조공의 함대로써 알류산 열도를 공격하여 미군의 신경을 그리로 유도하고, 그 사이 주력함대는 미드웨이에 병력을 상륙시켜 점령한다... 물론 계획상은 좋았다. 그러자면 모든 것이 기계처럼 맞아떨어져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전장의 변수가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암호마저 해독당한 상태에서는 그러한 꼼수는 도리어 각개격파를 당하는 결과만 빚어낼 뿐이었다. 실제 그런 복잡한 작전계획에 의해 항모와 한참 떨어져 뒤따라오던 야마토 등의 전함들은 항공모함 함대가 괴멸되었다는 소식을 그저 듣고 회항해야 했었으니... 당장 적 항모함대의 격멸과 미드웨이의 점령 둘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구모 자신조차 헷갈린 탓에 일본 해군은 그나마 있는 밑천마저 미드웨이에서 탈탈 털어버리고 말았다.
2007년에도 어느 나라의 노모씨라는 대통령께서 혼수모어 해 보겠다고 대연정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원래는 한나라당 안에서 분열을 유도하고자 한 발언이었는데, 그러나 너무 고단수의 수를 쓴 탓인지 오히려 그 지지층과 여당이 분열해 버리고 말았다. 대연정 제안하고 권력을 나누자면 그것 때문에 한나라당 안에서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인데, 그러기에는 한나라당 자신의
아무튼 혼수모어의 요체를 말하자면 혼란일 것이다. 상대의 안으로부터 혼란시키고 그로써 올바른 판단과 대처를 못하도록 하는 것, 그럼으로써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그 틈을 노려 이익을 구하는 것, 때로 붕어보다도 못한 것이 사람이고 보면 의외로 개울에서 피라미 잡기보다 더 잘 낚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상대를 붕어이하로 취급하고 만드는 인간모멸의 극치가 바로 병법삼십육계의 제 20계 혼수모어라 할 것이다. 당하는 놈이 *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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