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경계하거나 두려운 처지에 놓이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심장 박동과 순환하는 혈액의 양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아드레날린 때문이다. 아드레날린은 우리 뇌의 신경 자극을 받은 부신에서 생산되며, 혈액으로 들어가 빠르게 수용체를 활성화시킨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하거나, 예상치 않은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도 혈류 속의 아드레날린 양이 급속히 증가한다. 아드레날린을 종종 ‘경계, 탈출의 호르몬’ 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위험을 경계하고 그에 대응해야 함을 알리는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아드레날린은 심장마비, 과민성 쇼크, 심한 천식, 꽃가루 병 등에 약으로 쓰이고 있으며, 안구 수술 전 안압 저하를 위한 안약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은 독성이 강해 일 회에 0.2 - 0.5 mg 정도의 소량이 처방된다. 아드레날린은 우리 몸에서 생산되는 천연물이지만, 매우 독성이 커 LD50(50%가 생존 또는 사망하는 양) 가 체중 킬로그램 당 4mg(밀리그램=천분의 일 그램) 이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아드레날린은 생명을 구해주는 유용한 약인 동시에, 심장이 약한 사람이나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천연물은 무독하거나 무해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2001년 미국, 간호사가 아드레날린을 주사하여 환자를 살해하였다
아드레날린의 독성을 악용한 사건이 2001년에 미국을 뒤흔들었다. 사건이 미국사회에 표면화되기는 1995년 7월에 야도고브스키(Stanley Jadogowski) 라는 미국 퇴역군인의 갑작스런 사망에 기인했다. 야도고브스키는 66세로 괴저병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했으며 종종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던 모양이다. 당뇨병과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흡연과 심한 음주를 멈추지 못했고 상당히 비만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장기 요양동에 입원하였다. 고통에 시달리던 야도고브스키를 두 간호사가 힘들여 진정시키고 입원실을 떠날 때, 그들은 길버트(Kristen Gilbert)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그의 입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곧이어 ‘이러지 말아요. 제발, 날 죽이려고 이래요!’ 하는 야도고브스키의 외치는 소리가 병실 밖에까지 들렸다. 이 소리를 듣고 이 두 간호사가 입원실로 다시 왔을 때는 길버트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고 야도고브스키도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아무일 없으려니 하고 두 간호사가 다시 병실을 떠난 잠시 후 결국 그는 사망하였다.
삼 년 후 그의 시체를 다시 부검해보니 체내 아드레날린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길버트가 아드레날린을 과량으로 주사했으며, 그로 인해 야도고브스키가 사망하였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결국 2001 년에 미국 법정은 길버트가 같은 방법으로 야도고브스키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 4 명을 더 살해했으며, 아마도 간호사 생활 중 50여명의 환자를 아드레날린 주사로 살해했을 것이라는 끔찍한 범죄사실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길버트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분명치 않으며, 단지 하나 아드레날린 주사가 사인으로 쉽게 포착되지 않는 점을 악용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길버트는 사생활에도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고, 귀찮게 구는 환자를 손쉽게 사망시킬 수 있었음에 착안했고, 또 응급상황을 즐겼던 정신적 질환도 일부 지니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우리 인체가 스스로 생산하는 화합물도 넘치면 치명적 독성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
독성이 있는 화합물 클로로포름, 과거에는 마취약으로도 쓰여…
이제 이야기를 합성물질의 살인적 특성으로 돌려보자.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클로로포름 (CHCl3) 의 이야기를 해보자. 화학구조적으로 말하면 클로로포름은 천연가스(기체)의 주성분인 메테인 (메탄, CH4) 의 수소원자 3 개를 염소원자로 바꾸어 놓은 꼴이며, 접착제, 농약, 기름, 고무 등의 용제로 널리 쓰인다. 또 클로로포름은 여러 가지 화학제품 제조에도 중요한 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온에서는 액체이다. 무색의 이 액체는 물보다 무겁지만 휘발성이 크다. 이 화합물은 마취약으로도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