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바흐

[스크랩]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kongbak 2010. 3. 4. 13:02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에 없었다"

 

 

 

2009년을 돌아보며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그나마 이만하기 다행’이 아닐까. 그간 우리가 지나온 구렁텅이를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비록 크나큰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그간 인류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교훈은 시장엔 자율 조정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적절한 규제를 하지 않으면 늘 선을 넘어서기 일쑤다. 올해만 해도 우린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왜 종종 보이지 않는 건지 다시금 알게 됐다. 그 손이 거기 없기 때문이다. 금융가들의 사리사욕 추구는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금융기관 주주들에게조차 도움이 안 된다. 집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퇴직 연금 손실을 본 은퇴자들, 구제금융을 대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지불한 납세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전체 경제 시스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위협 속에서 본래 위기에 처한 개인들을 돕기 위해 마련된 사회안전망이 은행들에게까지 구제의 손길을 뻗쳤다. 다음으론 투자은행, 보험회사, 자동차 회사, 심지어 자동차 할부금융 회사들도 줄줄이 혜택을 봤다. 정부는 부유층으로부터 돈을 거둬 빈곤층에 나눠준다는 게 우리가 가진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빈곤층과 중산층이 돈을 내 부유층에 주고 있는 판이다. 세금 부담으로 허리가 휘는 납세자들은 자기가 낸 돈이 은행의 대출 여력을 높여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금융권의 보너스와 배당금 잔치에 쓰이는 걸 목도한다.


 

구제금융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위선을 폭로했다. 빈곤층을 돕는 소소한 복지 정책에 대해선 재정 긴축을 외쳤던 사람들이 이제 (금융권에 대한) 세계 최대 규모의 복지 프로그램을 옹호하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의 투명성이 지닌 미덕을 목청 높여 찬양했던 이들은 은행들이 스스로의 대차대조표조차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애매모호한 금융 체제를 만들어냈다. 정부 역시 금융권에 준 막대한 보조금을 눈 가리고 아웅하기 위해 점점 더 투명하지 않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둘째 교훈은 시장이 마땅히 작동해야 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에 관한 것이다. 시장의 실패에는 많은 요인이 있다. 이번 경우엔 ‘대마불사’ 신화로 무장한 금융회사들의 비상식적 인센티브 시스템이 문제다. 그들은 도박을 해서 성공하면 이득을 얻는다. 만약 실패해도 납세자들이 대신 돈을 물어준다. 실패의 파장은 크다. 한 은행의 실패는 다른 은행들에 비용을 유발한다. 금융 시스템의 실패는 납세자와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물린다.


 

셋째 교훈은 케인스주의 정책이 먹힌다는 것이다. 잘 짜인 대규모 경기 부양 정책을 실시한 호주 같은 나라들은 위기에서 빨리 벗어났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를 위기로 밀어 넣은 금융 천재들이 신봉해온 오래된 정설만 붙들고있다.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세출보다 세입이 더 빨리 줄어들기 때문에 재정적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정설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든 지출을 줄이든 하루 빨리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거의 언제나 총수요를 축소시켜 경제를 더 깊은 침체로 몰아넣고 신뢰를 더욱 무너뜨린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런 정책을 고수했다가 적잖은 낭패를 본 예가 있다.

넷째 교훈은 통화금융정책을 펼 때 인플레이션 방지, 그 이상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면 중앙은행은 자국의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간과하기 쉽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조장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떠안는 비용이 싸게 먹힌다.

다섯째 교훈은 모든 종류의 혁신이 더욱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경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인센티브는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잘 조정되지 않는다면 과도한 리스크 감수, 근시안적인 행태, 왜곡된 혁신을 불러올 뿐이다. 예컨대 근래에 등장한 수많은 금융공학적 혁신들의 성과는 입증하기가 힘든 반면 그 때문에 치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은 엄청났다.

 

사실 금융공학은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집을 살 때 발생하는 대출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고 추가로 수백만 명이 그럴 위험에 처해 있다. 대신에 혁신은 무지한 사람들을 더욱 착취하는 한편 시장을 효율적이며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만들려는 규제와 회계 기준들을 교묘히 피하는 데 이용됐다.

얼마 안 가서 우리가 이번 위기로부터 과거 위기 때보다 교훈을 더 잘 배웠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안됐지만 만약 미국과 여타 선진국들이 내년에 금융 개혁에서 확실한 진전을 보이지 않는 한 우리는 또 다른 교훈들을 배워야 할 처지가 될 터다.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27세에 예일대 교수에 임용됐다. 2001년엔 정보의 비대칭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세계은행(IBRD) 부총재를 지냈고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자료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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