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화산, 발해를 묻다

kongbak 2009. 9. 22. 17:43
백두산의 화산, 발해를 묻다
진재운의 `백두산에 묻힌 발해를 찾아서’
기사 게재일 : 2008-04-18 07:00:00
 

그 날 천지가 흔들렸다. 땅은 갈라지고 집은 무너져 내렸다. 강력한 진동은 바다를 거쳐 만주벌판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백두산 정상이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 폭발로 백두산의 높이는 1000m나 가라앉았다. 화산재는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당도했다. 939년 1월의 일이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과 대제국 발해의 멸망은 어떤 관계일까.

진재운이 펴낸 ‘백두산에 묻힌 발해를 찾아서’는 그 의문을 추적한다. 물론 정통사학이 인정하는 역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발해는 여러 실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나라다. 역으로 그래서 매우 흥미롭다. 책은 부제인 ‘화산학으로 풀어 본 발해 멸망의 진실’처럼 시간의 틈에 묻혀있는 재앙의 과정을 꼼꼼하게 따라간다.

발해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졌던 나라다. 발해의 영토는 고구려의 옛 땅 대부분에 서쪽으로 요동의 턱밑, 동북쪽으로 연해주 일대, 북쪽으로 하바롭스크와 몽고 지역까지 머리를 맞댔다. 발해의 영역은 가로 천 리, 세로 삼 천리다. 통일신라의 8배였고, 고구려의 2배였다.

문화 수준도 높았다. 해동성국 발해에서는 시문학 수준이 신라와 일본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귀족들은 유교와 불교를 섬겼고, 민중들은 샤머니즘을 숭배했다. 특히 발해의 예술은 고구려의 것을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켰다.

그런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멸망한다. 1000년 전 백두산의 화산폭발은 과학적으로도 밝혀져 있다. 화산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10세기 백두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의 화산폭발이 일어났음을 증언한다. 폭발의 근거는 백두산 부근은 물론이고, 일본 아오모리 현에서도 발견된다. 땅을 조금만 파면 비교적 밝은 색을 띄는 지질이 발견되는데 일본 화산의 것과 성분이 전혀 다르다. 시대 측정 결과 천 년 전의 것으로 백두산 화산 폭발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화산폭발 중 하나로 알려진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폭발보다 무려 3배 이상의 규모를 가졌다는 백두산 화산 폭발은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거란의 역사서인 ‘요서’는 발해의 멸망 원인을 민심 이반과 내분으로 언급하고 있다. 더욱이 공식적으로 발해가 멸망한 것은 926년이다.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있기 10여 년 전이다.

진재운은 말한다. “화산학적으로 천 년 전 백두산 폭발은 증명됐다. 단지 이를 전하는 문헌이나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던지 최악의 경우 기록 자체가 없을 뿐이다. 문헌이 없다고 해서 화산의 역사가 부인될 수는 없으며 역사에 미친 충격 또한 외면돼서도 안 된다.”

발해는 이미 화산 폭발 이전에 무너졌지만 완전한 멸망은 아니었다. 926년 발해 멸망 후 지속적으로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먼저 후발해가 탄생했고, 나중에는 정안국을 세워 발해 부흥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후발해는 후당과 교역을 했을 만큼 거란의 지배력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부활의 꿈은 백두산의 화산 폭발과 함께 완전하게 무너졌다. 화산 먼지로 천지가 어둠에 잠기던 날 만주벌판에 스며있던 우리 역사도 함께 죽었다.